[정환선의 문화유산 산책 ④] '동귈도'

by 데일리아트

동궐도속의 관관청과 공원춘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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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 속의 과거시험을 관리하였던 관광청(觀光廳)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눈요기만 하여도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동궐도〉라는 그림 속에 그려진 예전의 전각들을 찾아 대비해 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이나 국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자세하게 그림이나 글로서 남겼다. 기록화의 백미로는 현재 국보로 지정 되어 있는 '〈동궐도(東闕圖)〉다. 조선 순조 때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그림 속에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관광청(觀光廳)'이 인정전 동쪽 북 행각에 그려져 있다.

관광(觀光)이라는 말은 어학사전에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경, 풍물 따위를 구경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쓰여있지만, 현대에서는 통상적으로 관광여행(a tour)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주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일을 이르던 말이었다. 이로 보아 관광청은 과거시험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던 부서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예조에서 담당하였으며 과거시험을 치르는 시험장의 설치와 관리는 ‘전설사’에서 맡아 실행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꿈은 자신의 유일한 신분 상승이자 출세를 위하여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전통 혼례에서도 종 9품의 관복을 결혼 예복으로 착용하였을 정도다. 조선이 양반 중심의 사회이고 양반에게는 부의 축적과 수많은 특전이 부여되었다. 가문의 흥망성쇠가 여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의 과거제도는 우수한 국가의 인재를 능력 중심으로 선발하는 시스템이다. 조선의 과거(科擧)는 정규적으로 3년마다 실시하는 ‘식년시’와 국가의 경사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실시하는 ‘별시’가 있었다. 매년 제주 목사가 진상해 온 특산물인 감귤이 진상되어올 때 보는 시험도 있었다. 성균관의 명륜당(明倫堂)에서 유생들에게 감귤을 나누어준 뒤 시제(試題)로 시험한 황감과(黃柑科)가 있었다. 1864년에는 흥선대원군이 전주 이씨만을 골라서 공정하지 않은 과거를 보게 한 “종친과(宗親科)” 등도 있었다. 조선의 빈번한 과거시험은 한정된 관직의 숫자에 비해 합격자를 과잉 배출하여 관료로서의 임용 자체가 어려워지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유발했다.

과거시험 응시 자격은 법제상으로는 양인 이상이면 가능했다. 과거시험의 단계는 소과 초·복시, 대과 초·복시, 마지막 관문으로 대과 전시로 5단계가 있었다. 대과는 33명으로 순위를 정하는 단계였다. 최고령 급제자는 고종 24년 1887년 83세 ‘박문규’로 합격과 동시에 정3품 당상관 병조 참지에 임명되는 예우를 받았다.

고종(1894년)에 과거제도가 폐지되는 마지막 과거시험의 장원급제자는 ‘박영효’였다. 조선의 불세출의 과거시험 천재로는 아홉 차례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을 얻은 율곡(栗谷) 이이(李珥)다. 선생은 9번의 장원급제를 하였는데 5단계의 과거시험에서 4번 장원급제 후 별시에도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비들이 과거에 입격(入格)하면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를 선발하는 소과에 합격한 이에게는 합격자의 직위와 성명, 응시 분야와 합격 순위를 흰 종이에 기입하였기 때문에 ‘백패(白牌)’를 문과 합격증은 위의 내용과 같은 기재 내용을 붉은 종이에 써서 ‘홍패(紅牌)’라고 했다. 관리로 임명되면 이조나 병조에서 문·무 관원을 임명할 때 사령장(辭令狀=告身)을 내리게 되는데 4품 이상의 관원에게 발급한 인사 문서를 교지(敎旨), 5품 이하의 관원에게 발급한 인사 문서를 '교첩(敎牒)'이라고 했다.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개인이 시험 보기 전에 관에서 사용 허락을 받은 답안지용 종이 시지(試紙)를 준비하여야 하였다. 과거를 치르고 난 후 합격한 시지를 시권(試卷)이라하는데 당사자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과거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는 “낙폭지”라고 하며 호조에서 전국 관청을 통해 걷어 들여서 다양하게 이용하였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 오봉도’를 전면 해체하여 수리 복원하였다. 이때 서화를 지지하고 병풍 형태로 꾸미는 “장황(裝潢)”을 하기 위해 뒷면에 붙이는 종이 즉 배접지로 시권(試券)을 사용하여 보존 처리 작업을 끝냈다. 또한 매우 추운 국경의 군사들 옷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일상에서는 여럿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말로 쓰이는 '압권(壓卷)'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다른 책 혹은 문서를 누른다는 의미로 임금님에게 시험성적 순위를 보고할 적에 가장 잘 쓴 답안지가 맨 위로 오도록 하여 가장 잘 쓴 답안지가 다른 답안지들을 누르고 있어서다.

창덕궁의 과거 시험장은 인정전 앞마당 조정(朝廷), 후원의 춘당대, 농산정, 존덕정 등 여러 장소에서 펼쳐졌다. 농산정에서는 과거에서 외운 경서를 암송시킨 후 등락 점수를 매기는 ‘응강(應講)'을 실시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대과의 마지막 단계는 복시에 합격한 사람이 임금 앞에서 보던 과거 ‘전시(殿試)’다. 이때 왕은 직접 정치에 대한 계책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서술하게 하는 '책문(策問)'을 했다. 이에 대하여 올리는 답안을 '대책(對策)'이라 했다. 문과에 합격하면 등급에 따라 종6품에서 정9품에 이르는 관품을 받고 관직에 임명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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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춘당대와 영화당의 여름 /사진: 궁궐길라잡이 이한복

후원의 춘당대는 원래 영화당 앞쪽 마당에서 창경궁 영역까지였지만 지금은 담으로 막혀 있다. 이곳에서 임금이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친림 비정규적으로 열었던 문·무과 과거시험이 춘당대시(春塘臺試)였다. 전각 ‘영화당’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시험장 본부 또는 군사 열무(閱武)를 하는 곳으로도 사용하였다. 정조 임금은 후원의 열 가지 경치를 이르는 상림십경(上林十景)중 9경으로 이곳에서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보는 장면인 ‘영화시사(暎花試士)’를 꼽았다. 이곳은 소설 『춘향전』속의 주인공 ‘이몽룡’이 장원급제를 하였던 곳이다. 소설 속의 ‘춘당대시’에서 임금이 내린 책문은 '춘당춘색고금동(春堂春色古今同)' 즉, '봄 연못의 봄빛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에 몽룡은 이에 대하여 일필휘지(一筆揮之) 제일 먼저 '대책'을 제출 상시관의 절찬을 받아 장원급제후 암행어사를 제수받고 남원으로 내려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여 무고를 당해 감옥에 갇혀서 그를 간절히 기다리던 열녀 춘향을 구해내어 해피엔딩 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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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춘효도 /출처:안산시 김홍도 미술관

조선의 과거시험을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생생한 과거 시험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과거 시험장을 그린 미술작품으로 안산시가 소장하고 있는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다. 이 그림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작품을 구매하여 가져간 뒤 오랜 기간 그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2020년에 국내로 돌아왔다. ‘공원’은 과거 시험장을 ‘춘효’는 봄날 새벽이라는 의미로 단원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봄날 새벽의 과거 시험장에서 일만 마리의 개미가 싸움을 벌인다”고 풍자하면서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그림에서는 대리시험을 치러주는 ‘거벽’ 글을 써주는 ‘사수’가 보이며 수험생은 아무것도 안 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그 당시 팀을 이루어 부정 시험의 극치를 보여주는 과거 시험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의 관리를 등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정한 시험을 시행해서 선발하는 “과거”와 재주를 시험하여 사람을 뽑는 '취재'가 있었고, 가문과 혈통을 중시하여 조상의 음덕(蔭德)에 힘입어 관료로 등용하는 '음서(=문음)', 3품 이상의 관료들이 개인의 덕행이나 학문적·정치적 능력을 기준으로 관리를 추천하는 방식의 “천거”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관리 등용 방식으로 음서와 자질과 능력을 중시한 과거였고 시대가 내려올수록 음서보다는 과거의 비중이 커졌다.

과거시험에서 붓끝이나 콧속에 작은 컨닝페이퍼인 협서(挾書)를 가져오는 행위, 자리 선점으로 다툼이 일어나는 등등의 다양한 컨닝은 결코 올바른 행위는 아니다. 광해군은 인정전 마당에서 무질서와 오염물질로 악취가 난무하고 부정행위가 당연시되는 환경 속에서 치르는 과거 시험장의 광경에 대하여 격노하면서 이를 시정하라고 한 내용이 기록되어 전하여질 정도였다. 관리로 나아가기 위한 과거시험뿐만 아니라 모든 시험은 공정성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동궐도 속에 그려진 전각 관광청은 기본적인 가칠 단청으로 주칠을 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행각 안에서는 백성들과 조선을 위한 유능하고 바른 인성을 갖춘 관료를 선발하기 위해 과거 시험관리에 힘을 기울였던 관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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