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독립영화 감독 ⑥] '시선'이라는 매력

by 데일리아트

단편영화로 유튜브 조회수 200만을 기록한 이윤선 감독. 그가 연출한 〈나의 선한 친구에게〉는 단순한 사물의 이야기를 넘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많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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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한 친구에게 스틸 컷 /출처: youtube 채녈 영화film_이윤선Yunseon Lee / 나의 선한 친구에게


단편영화로 유튜브 200만 뷰를 달성한 소감이 궁금하다


영화를 올릴 당시, '내 단편영화가 영화제라는 틀을 벗어나 더 많은 사람에게 닿으려면? 그리고 수익 창출로까지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단편영화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 시즌의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유튜브에 자신의 옛 작품을 올려주면 볼 수 있다는 점이 늘 좋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제 작품을 유튜브에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완벽한 해답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조회수가 1,000을 넘었을 땐, 1,000명으로 꽉 찬 극장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상상조차 어려운 숫자가 됐지만요. 200만이라는 수치가 단순한 숫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오프라인의 감각을 상상해 보면 꽤 재미있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선한 친구에게>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DDuc-5YrSZs


<나의 선한 친구에게>는 어떤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나?



* 이 답변에는 작품의 주요 전개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국 분들이 특히 많이 봐주시더라고요. 댓글도 그렇고요. 대사가 거의 없고, '선풍기'라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 덕분에 공감이 쉬웠던 것 같아요.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미지인데, 시선을 살짝만 틀어냈다는 점이 신선했던 것 같고요.


한 영화제 관객의 코멘트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 “이 영화는 반전을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통해 완성되는 영화”라는 말씀이었어요. 만들면서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저도 놀라고 또 감사했던 기억입니다.


언어를 넘는 이미지가 강조된 작품이기 때문에, 말보다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의 재미와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윤선 감독의 '의인화' 단편 시리즈 소개


이윤선 감독은 일상 속 사물에 생명을 부여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감정과 기억을 되새기게 만드는 '의인화' 시리즈를 연출해 왔다.


〈나의 선한 친구에게〉 – 선풍기의 의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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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youtube 채녈 영화film_이윤선Yunseon Lee 나의 선한 친구에게


선풍기를 의인화해, 버려진 사물들과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애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에요. 사물과의 감성적 교감을 통해 과거의 시간과 다루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만들죠.


저도 어릴 적 선풍기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멍하니 앉아 있거나, 옷을 덮어씌우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일상을 살면서 사물 하나를 오래 바라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선풍기 앞에서는 그런 시간이 허락되잖아요. 그 점이 흥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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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youtube 채녈 영화film_이윤선Yunseon Lee 나의 선한 친구에게





〈나의 차가운 딸〉 – 냉장고의 의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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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youtube 채녈 영화film_이윤선Yunseon Lee 나의 차가운 딸


냉장고를 의인화해,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상처를 통해 인간관계의 폭력성을 보여주려 했어요. 물질의 낭비와 소비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무심코 대하는 일상적 대상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죠.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우리 집 냉장고가 항상 음식으로 꽉 차 있어서였어요. 더 큰 냉장고로 바꿨는데도 여전히 넘쳐나는 걸 보면서, ‘이건 냉장고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의 차가운 딸>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BUcuDNWRGAo




〈우리의 자세〉 – 식탁보와 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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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youtube 채녈 영화film_이윤선Yunseon Lee 우리의 자세


식탁보와 방석을 의인화한 영화예요. 식탁보는 자신을 거쳐 가는 사람들과, 늘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방석이 지겨워요. 어느 날 커플이 와서 바람 문제로 싸우게 되고, 그들을 둘러싼 관계의 균열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마주하는 이야기예요.


"네가 왜 엉덩이만 세고 있는지 알아? 사람들이 그 자세밖에 몰라서 그래"




<우리의 자세>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ageWjqpH31o





영화 속에서 사물을 의인화하는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사람 '이 아닌 '시선'의 매력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서문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사람이 아닌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라는 문장을 접한 게 큰 영향을 줬어요. 정확한 문장은 기억 안 나지만요. 일상적인 순간도, 인간이 아닌 시선으로 보면 재밌어지고, 그걸 '시선'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라는 매체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움직임'에도 관심이 많아요. 스톱 모션이나 그림자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고, 움직이지 않던 것이 움직일 때 느껴지는 생명성과 감동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최근엔 권병준, 최우람, 아니카 이의 작품을 보며 다시금 '움직임'에 반했죠. 그래서 자꾸 움직이게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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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youtube 채녈 영화film_이윤선Yunseon Lee 우리의 자세


사람을 사랑해서, 사람을 피했던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됐어요. 그동안 '사람'을 다루는 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사람에게 상처받고 상처 주는 것이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도 사람을 중심에 두는 걸 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 조연출로 참여한 작품에서, 너무 마음 가는 캐릭터들을 만나고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행복했어요. 리딩할 때마다 울고, 촬영이 끝날 때도 울었죠. 그때 연출님께 말했어요.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못 다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용기가 나요.” 앞으로는 사람을 중심에 둔 이야기에도 도전해 보려고 해요.





의인화된 사물, 어떻게 캐릭터로 구현했나?


‘사물을 어디까지 교류하게 할 것인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특별히 성격을 설정한다기보단, 배우들이 가진 이미지와 에너지에 의존해서 캐릭터를 구성했죠.


심선아 배우 – 선풍기 역


심선아 배우는 햇살 같으면서 어린아이 같고, 강인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거든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많이 메꿔주셨어요. 오디션에 온 배우들께 전부 "선풍기는 어떻게 앉아 있을 것 같아요?" 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대부분은 무릎을 꿇고 딱딱하게 앉아계셨거든요? 근데 유일하게 양다리를 쫙 펼치고 등에 힘을 풀고 귀엽게 저를 바라봐주셨어요. 그때, " 와! 함께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제목이 '나의 선한 친구'였던 걸 '나의 선한 친구에게'로 빠르게 바꾸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요.


임주은 배우 – 냉장고 역


임주은 배우는 단단한 돌멩이 같으면서도 내면에 쌓인 억울함을 잘 표현해주셔서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원래 깡마른 배우를 캐스팅해서 음식을 욱여넣는 장면과 대비되는 모습을 만들고 싶었는데, 임주은 배우의 독특한 눈빛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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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출처: youtube 채녈 영화film_이윤선Yunseon Lee 나의 차가운 딸


조예린 배우 – 방석 역 / 지혜민 배우 – 식탁보 역


조예린 배우는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눈빛이 신기했어요. 약간은 뚝딱거리는 몸의 움직임도 독특했고요. 지혜민 배우는 특유의 시니컬함과 무뚝뚝하면서도 장난기 있는 이중적인 이미지가 매력적인 분이셨어요. 그래서 호기심과 시니컬함을 메인으로 잡고 방석과 식탁보를 꾸렸던 것 같아요.


말과 행동이 제한된 캐릭터들을 살리기 위해선 배우의 첫인상과 몸짓이 매우 중요했어요. 그게 곧 사물의 감정과 성격으로 확장됐던 것 같아요. 어떤 이미지를 가진 배우와 함께하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결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같이 하고픈 배우를 찾는 데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신 배우들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가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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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 감독 /출처: 이윤선


유쾌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선, 그리고 사물과 인간 사이에서 발견해 내는 감정의 온도. 이윤선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윤선 감독의 다음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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