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내가 사랑하는 예술품 ④] 한성희 기자

by 데일리아트

현장미술사가 한성희의 컬렉션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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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 붉은 산수(Between Red-021), 2021, 27×22cm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 1699-1770)는 조선시대 대표적 서화고동 수장가로 알려져 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지식인이었으나 벼슬보다 골동품 수집에 취미를 가져 일생을 서화고동을 수집하며 자기만의 멋을 가지고 살았다. 자신이 수집한 작품들을 지인들과 교류하며 감상기회를 제공했다. 총 267점에 대하여 화제와 화평을 수록 ‘조선시대 회화사 도록’이라 일컫는 『석농화원』을 저술한 석농 김광국과도 교류했다. 상고당 김광수는 자신의 묘지명을 직접 작성하고 친구인 원교 이광사에게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화려한 문벌에서 태어나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허황되고 괴상한 것을 추구하며, 기괴한 것을 좋아함이 고질병이 되어, 옛 그릇, 서화, 붓, 벼루, 먹 등등을 배우지 않아도 훤히 알아 진위를 구별하는데 털끝만큼의 착오가 없네. 가난하여 혹 연기가 끊어지고 네 벽이 비어도 금석문과 서적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지며 기이한 물건이 손에 닿기만 하면 주머니를 터니 벗들은 등 돌리며 손가락질하고 부모와 식구들은 꾸짖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록한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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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당 김광수가 자신의 삶을 기록한 묘지석 (글씨 원교 이광사) /사진: 한성희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상고당 김광수의 묘지명을 흥미 있게 보았다. 글도 재미있고, 컬렉션이 벽(癖)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내가 미술사에 입문하여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그런데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적정한 가격이 얼마인지도 난제였지만 내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전시회를 통해서나 옥션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작품을 구매하는 것을 보면 궁금했다. 왜 그 작품이 구입하고 싶은 거지? 또는 맘에 든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 정도 가격이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난 여전히 작품은 사고 싶었지만 확신이 없으니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작품을 공동으로 투자하고 구입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구입한 그림은 작품을 돌려가며 한점씩 집에 걸었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적정 가격을 모임에 지불하고 개인소장 할 수 있었다. 이 모임의 최종 목적은 공동으로 작품(과반수 이상 동의한 작품)을 구매하여 각자의 집에 작품을 한 점씩 소장하는 것이다. 모임에서 좋은 작품을 공유하기 위해 옥션 투어도 하고, 전시회, 갤러리 등을 수시로 찾아다니며 작품에 대한 안목을 넓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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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코엑스에서 진행한 아트쇼에 출품된 오세열 작가 작품, 이 작품과 유사한 작품을 처음으로 작은 방에 설치하고 감상하며 컬렉션의 즐거움을 누렸다. /사진: 한성희

드디어 나도 집에 작품을 걸어놓고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오세열 작가의 숫자가 전면에 그려진 작품이었다. 진한 핑크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숫자를 캔버스 가득 써넣은 10호 크기의 낙서 같은 그림이다. 작은 방에 작품을 걸어놓고 들락거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한 번씩 쳐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작품을 소유하면 자기만의 갤러리를 갖는다는 것을. 작품 속 숫자는 내 삶의 숫자들과 겹치며 열린 결말들을 제안한다. 왜 1에서 10까지 써 있는 거야? 혹은 나에게 의미 있는 숫자를 내 나름의 규칙으로 조합하기도 했다. 그림에 시선이 머물 때 복잡한 생각들을 덜어내기도 하고, 진한 핑크 색상에서 기분이 업되기도 하고, 꾹꾹 눌러쓴 글씨 위에서 작가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1년 정도 걸려있던 작품은 그림모임의 결정으로 다른 사람이 소장하게 되었다. 모임 규정에서 구매가격의 10프로 정도 이익이 나면 언제든지 누구나 제안하여 작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작은 방에 걸려있던 작품이 떼어지자 그 공간은 불모지가 되었다. 화사했던 방이 평범한 방이 된 것이다. 이후 오세열 작가의 전시된 작품을 만나면 반갑고 그립다. 작품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첫 번째 작품이었다.

이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나에게 만들며 소장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아졌다. 좋은 전시는 놓치지 않고 보는 편이다. 작품을 컬렉션 하려면 우선 좋은 작품을 많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 색상, 구성, 스타일, 컬렉션의 방향 등이 생겨난다. 그런 안목이 형성되면 아트페어나 옥션, 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구매하여 일상의 삶 속에서 즐기면 그 보다 더 좋은 호사는 없다. 물론 소장한 작품의 가격이 상승한다면 작품은 더 소중해 보이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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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고 예쁜 작품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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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고 예쁜 작품들 (2), 카와세 하수이,우에노 키요미즈 설경, 눈내리는 풍경에 반해서 구입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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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고 예쁜 작품들 (3) 가야도기, 고려청자, 현대 백자 등과 양대원 작가의 '나는 독재자'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약 30여 점이다. 모두 다 나름의 이유로 나에게 왔다.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고, 이야기가 있고,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 작품은 어디에 두어도 자리 값을 한다. 그 중에 한 작품이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시리즈다. 3호의 작은 사이즈 작품으로 내가 좋아하는 매화꽃이 정자에 드리워져 있다. 탄탄한 구도와 붉은 색의 기운이 어우러져 어느 공간, 어떤 소품과도 잘 매칭된다. 통영 출신인 이세현 작가는 바다가 주요 모티프로 등장한다. 바다에 떠 있는 섬과 개발로 사라져가는 풍경들이 뒤섞여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특히 붉은 색 만을 사용 우리의 산하를 그려 ‘붉은 산수’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 작가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영국 첼시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졸업전시회 때 스위스 컬렉터에 눈에 띄어 유럽에서 먼저 조명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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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박물관 마을에서 나의 소장품을 가지고 2021년 전시한 '봄바람 콧바람'전 전시 포스터

여러 작품을 소장하며 기뻤던 순간은 내가 컬렉션한 작품을 가지고 돈의문박물관마을 에서 〈봄바람 콧바람〉기획전시를 진행했을 때다. 소장한 작품을 한옥 한 채에 배치하고 관람자들에게 소개할 때 뿌듯함과 공유하는 기쁨을 누렸다. 방향성 있는 컬렉션은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한점씩 소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고, 그런 방향속에서 글쓰기, 한국근현대 미술사 강의, 답사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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