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크기가 다를 뿐 지금까지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다지 보지 못했으니 질문은 잘못되었다. 그럼, 인생의 꽃이라고 물어보아야 할까?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나에게는 그런 꽃이 있다. 요즘 이 꽃이 절정이다. 붉거나 연분홍이다. 사실 장미가 피면 가슴에 난 구멍으로 바람이 분다. 내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장미가 탐스럽게 피던 계절에 엄마는 떠났고 그 자리에 장미만 흐드러지게 남았다. 지나고 보니 엄마는 참 꽃을 좋아했었다. 그때는 그걸 잘 알아채지 못하고 꽃다발을 받을 생각만 했지 줄 생각은 못했다. ‘미안해’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 죄책감, 엄마가 너그럽지 않았다면 엄마가 뱉은 숨을 내가 다시 들이마시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대만 소설 로빙화
대만 소설 『로빙화』에서도 어린 천재 고아명은 떠났지만 ‘로빙화’는 남았다. 지키지 못했던 자들은 로빙화를 보며 오래오래 고아명을 기억할 것이다.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허망함, 그 슬픔이 이 소설을 통해 온전히 내게 전해진다.
‘로빙화’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꽃이다. 대만에서는 과거 차밭에 심어 거름으로 사용하는 꽃이었다. 로빙화는 한 번씩 피고 지면서 차밭을 기름지게 만든다. 소설 속 아명의 이른 죽음과 죽음 이후 빛을 보는 그의 재능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가 로빙화로 상징되었다. 아명처럼 천재도 아니고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하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소설 『로빙화』 속 남매 ‘차매와 아명’처럼 그들의 재능을 발견해 주고 관심과 사랑을 준 선생님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엄마는 학교에 다니다 그만두었다. 그때는 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어야 했는데 학교에 제때 내지 못해서 늘 혼이 났다고 했다. 창피하기도 하고 혼이 나기도 싫어서 학교를 가지 않았는데 어느 한 사람 학교 가라고 떠민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가난한 부모님은 먹고 사는 게 고달파서 자식 교육에는 신경을 쓸 수 없었고 오히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조막만한 손이더라도 일손이 느니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매와 아명의 아버지도 일손이 부족하면 학교에 가지 않고 농사일을 거들게 했다. 현실에 갇혀 아이의 장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이 슬펐다.
차 농사를 지어 현실에서 입을 것과 먹거리를 마련하고 살아가는 일 또한 너무나 중요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교육을 놓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두 가지다 놓치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부유한 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보다 더 재능은 타고났지만, 세상의 권력과 돈, 편견에 갇혀 아명의 재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교육 현실에 곽운천 선생님의 답답함과 무기력함도 전해온다.
“곽운천의 눈에 고아명이 답답한 환경의 족쇄를 차고 싹을 틔워 보지도 못한 채 가난한 농부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고아명은 왜 임지홍 같은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일까? 하늘은 천재를 만들어 놓고 왜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곽운천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비애를 느꼈다.”(157쪽)
엄마가 교육을 끝까지 받고 엄마가 그 가운데서 꿈을 가졌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다. 꿈조차 꾸지 못하게 했던 그리고 고아명의 꿈과 생명을 앗아간 어른들의 무지, 교육시스템, 사회구조, 가난이라는 그 시대의 병충해가 원망스럽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음을 내가 자라면서, 우리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면서 경험한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교육의 문제, 새롭게 생겨난 교육의 문제 속에서, 곽운천 선생님의 말씀대로 아이의 꿈과 상상력을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개성이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힘껏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한 아이의 성장을 품기 위한 범위가 가정이 아니라 속한 사회를 뜻하는 말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의 교육도 그렇지만 차 농사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로빙화』를 읽으며 했다. 훌륭한 한 잔의 차가 되기 위해서도 차 농부 한 사람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고.
『로빙화』에서 고아명과 경쟁하는 아이 임지홍이 있다. 임지홍은 차 공장을 소유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데 이 아버지, 임장수는 향의원에 출마할 만큼 자본이 있고 마을에서 입지를 마련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차밭에서 소작으로 일하고 찻잎을 납품하는 농부의 밭에 병충해가 들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이제 향 의원에 출마해서 한 표가 아쉬울 때가 되어서야 고아명의 아버지 고석송에게 농약을 살 돈을 빌려주고 농약을 칠 수 있는 분무기를 빌려준다. 지금의 대만 차 산업과는 다른 묘사여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만은 정부와 농업기관, 차 회사, 차 생산자들이 꾸준히 협력하여 새로운 품종 개발, 병해충 관리, 가공 기술을 개발했다. 결과적으로 대만을 대표하는 차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생각하는 임장수는 현실이라면 계속 차 공장을 운영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차 밭을 가꾸는 농부 /출처 핀터레스트
대만도 일제 식민지를 보내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미국의 도움을 받아 비료를 생산했다는 사실을 대만 드라마 <차금(茶金>)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소설 『로빙화』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시중에 비료가 유통되기 시작했을 텐데 가난한 농부는 이 비료를 사서 뿌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로빙화’였을 것이다. ‘로빙화’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여 땅을 기름지게 만들므로 다른 식물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자연과 조화로운 방식으로 차밭을 가꾸는 것이 지금 시대에서는 이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선택했을 때는 씁쓸하지 않겠는가?
차의 풍미를 결정하는데 적절한 병충해는 오히려 뜻하지 않은 선물을 준다. 동방미인(東方美人)이라 불리는 우롱차는 소록엽선이라는 해충이 먹은 찻잎을 가공한 것으로 오히려 독특한 맛과 향이 난다. 벌레 먹은 찻잎을 모아 차를 만들어서 높은 가격에 팔았다는 말이 허풍으로 여겨져서 팽풍차(膨風茶)로 불렸다고 한다. 이렇게 불리다 1970년대 이후 대만 차 협회가 동방미인으로 브랜딩해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차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명의 아버지 차밭에는 이 소록엽선이라는 해충이 든 것이 아니었고 찻잎으로 만들기에는 해충의 피해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새로운 행운을 잡을 기회를 줄 수는 있었다. 농약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벌레이지 않은가? 농약을 살만한 돈을 빌려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행운보다 더 큰 마법이 있다고 믿는다.
차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손을 거친다. 지금까지는 차를 마실 때 차 농부의 삶과 애환을 그다지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차 한 잔에 담긴 그 고유한 맛과 향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차 농부의 첫 손길을 놓치지 않고 싶다. 나를 키운 첫 번째 손, 우리 엄마. 그 손길이 미치던 때가 그립다. 그리고 나를 키웠던 마을을 떠올려본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좋지는 않았지만, 마을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이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강에 빠졌을 때 지나가던 아저씨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낯선 이가 딸 삼겠다고 리아카에 싣고 나를 데려갈 때 동네 이웃이 붙잡지 않았다면.... 아찔하다. 세상에 그 어느 한 사람 잃는 일 없이, 소외되는 일 없이 따스하게 매만져지고 그 고유한 빛이 반짝반짝했으면 좋겠다.
[이은영의 작품 속 차 이야기 ⑥] 차 농부의 '손'과 울 엄마의 '손'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