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화가 이향남의 예술 기행 ⑤] '황토색' 신밧드

by 데일리아트

아라비아 반도 동쪽 끝에 약간은 생소한 오만이 위치해 있다. 오만에 대한 인식의 시작은 어린 시절에는 양탄자만 타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었고, 청소년 시절에는 도서관에서 『신밧드의 모험』 이라는 동화책을 접한 후 현실과 판타지에 대한 경계가 사라지면서다. 그 책에서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궁금증도 유발시키는 에피소드들을 접하면서, 오만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7대양을 여행하며 바닷길을 이용해 세계를 누빈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갖게 해줬고 흥미진진했으며, 과연 나에게 오만의 방문 기회가 올까 할 정도로 먼 나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한 궁금증이 쌓인 오만을 향해 나는 신나는 발걸음을 한다. 오만은 건조한 사막이나 돌산 지형이 많아 이색적인 풍광을 자랑하며, 개발이 덜 되어 자연과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다. 자연과 유적지들을 걸으며, 그러한 색 뒤에 숨겨진 자연과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상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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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 샴의 그랜드 캐니언

오만은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덜 알려진 나라다. 과거 어느 나라 못지않은 찬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바닷길을 이용해 세계를 누빈 이슬람 군주국이다. 일찍이 개방정책으로 전 세계와 교류를 하여서인지 다른 중동 국가들보다 자유롭고 온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고대부터 해양강국이던 오만은 마르코 폴로나 콜럼버스보다 300년이나 앞선 8세기에 이미 7대양을 항해한 나라이다.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만의 유향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예수를 경배한 뒤 바친 세 가지 예물 중 하나일 정도로 매우 귀하고 값비싼 향료이다. 질 좋은 유향의 대량 생산지로 인류 최초의 ‘향료길’ 이 시작된 나라이며, 이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나라이다. 최근 우리나라와는 2002 월드컵 축구와 인연이 있으며, 2004년의 축구 패배로 오만 쇼크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K뷰티의 인기를 업고 화장품이 그 어느 품목보다 고공의 수출 성장을 하고 있다.

국토의 9할이 돌산과 사막인 척박한 땅 오만. 하자르 산맥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오만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제벨 샴 (Jebel Shams)’ 으로 향한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유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중동지역에서 가장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이다. 건드리면 돌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헐렁한 바위벽이 농축되어 형성된 이곳은 세계 최대의 캐니언으로 칭송받는다.

태양의 산이라는 뜻의 제벨 샴은 등산 명소로도 유명하다. 높은 돌산을 걸으며 만나는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태양과, 언뜻언뜻 스치는 바람결과, 들숨날숨 때 느끼는 공기와 지질층의 색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는 다르다. 나미비아의 피시리버 캐니언과도 유사하나 다르다. 이곳은 사암으로 거대한 산맥으로 이루어진 돌산 캐니언이다. 발아래 멀리 겹겹이 쌓인 산맥들이 보여주는 완만한 선들과, 희뿌연 황토색의 원근감은 오만 만의 수묵화 같다. 이 풍광들은 여기만의 특징이요, 느낌이고, 아름다움이다.

나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돌산의 종일 트레킹을, 돌산 속에 파묻힌 호텔에서 하루 밤 피로를 푼다. 자연색을 닮은 옅은 황토색의 호텔 건물은 거무스름한 황토색의 돌산과 어우러져 고상하고 세련된 느낌의 편안함을 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맘의 관저이자 방어 요새였던 옛 수도인 니즈와. 니즈와 성과 주변의 옅은 황토색 건축물들, 그리고 요새인 바흐라 성의 회색빛이 도는 황토색 건축물도, 돌산과의 조화로, 눈은 편하고 마음은 차분해 진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찬란한 일출은 맞은 편 돌산을 붉게 물들이고, 발아래 겹겹의 산들은 완만한 능선의 광대한 스케일로, 이곳에서의 아침은 고요 그 자체이다. 마음도 정신도 평온한 감사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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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 샴의 고요한 일출

오늘은 제벨 샴의 정상을 향한 본격적인 트레킹을 이어간다. 여기는 오만의 등뼈이며 해발 3075m의 가장 높은 돌산이다. 이곳은 검고 붉으며 누르스름한 색을 지닌 바위 산 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지형을 뽐낸다. 걷다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제벨 아크다르 산맥을 볼 수 있다. 산을 오르는 초입에는 드문드문 허름한 집들이 보이고, 이집 저집 염소들이 모여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염소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놀던 코 흘리게 아이들이 나와 마주치자,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이방인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를 굴린다. 염소들의 새까만 동그란 눈과 아이들의 크고 반짝이는 검은 눈이, 한껏 의심의 눈초리로 반짝임을 더 한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멋진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편편한 장소들이 있다. 발아래 절벽인 곳에 서서 산을 바라보노라면, 풍광은 시점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고, 그 시점에 머무르면서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을 느낀다. 온통 무채색인 돌산은 파란 하늘과 걸어가는 나만으로도, 많은 무언의 대화가 오간다. 어떠한 인공물이나 휴게소가 없는, 오직 태고 적 돌산만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곳곳의 작은 동굴이나 바위가 움푹 파인 곳에는, 옛 사람들이 음식을 해먹은 듯한 시커먼 바위의 그을림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올라갈수록 협곡은 좁아져 맞은편 산들이 가까이 보인다. 나를 중심으로 앞에 펼쳐진 풍광들은 원근감으로 인하여 더욱 광활하게 보인다. 뙤약볕을 받은 돌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그늘이 주는 선선함으로, 상상 속의 구상과 추상이 한 화폭 안에서 어우러지며, 풍성한 기운이 나오는 듯하다.

왼쪽으로는 부서 질 듯한 절벽의 돌산이 따라오고, 오른쪽 협곡 너머로는 단층이 켜켜이 쌓인 산맥의 허리가 이어진다. 구불구불 주물러 놓은 듯한 지질의 검은 돌무더기 산은 아이슬란드 화산의 흔적인 라우가르베키르와 아주 흡사하다. 화성에 온 듯한 풍경으로 눈은 호강을 한다. 그러나 물도 떨어지고 뙤약볕에 지친, 땀에 젖은 몸은 무겁기만 하다.간절하게 옹달샘이라도 나타나길 학수고대 할 때 쯤 청량하게 들려오는 염소 울음소리에 몸이 번쩍 반응한다. 아~ 염소들이 이 깊숙한 곳에 있는 걸 보니 물이 있겠구나 싶다.

가던 길이 막혔나 싶을 때, 앞산에 초록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기만 해도 반가운 풍경으로 눈이 시원하다. 드디어 반가운 장소에 도착한다. 돌산을 머리에 이고 움푹 파인 안쪽에 넓은 연못과 바위들이 앉을 곳을 제공한다. 그늘은 땀을 식혀주고 어느새 여러 마리의 염소들은 망설임 없이 다가와, 얼굴을 들이대고 친근감을 보인다. 구슬 굴러가듯 청량한 목소리로 계속 존재감을 나타내는 염소들이 마냥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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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 샴의 깊은 산 속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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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 샴 연못 가의 양들이 한가롭다

그늘 안으로 들어온 연못을 가운데 두고, 바윗덩어리에 앉아 시원한 맞바람과 정적이 만들어내는 풀벌레 소리들의 하모니를 듣는다. 이런 오후의 휴식이 편안하고 달콤하다. 신밧드의 모험처럼 시작된 이 산의 트레킹은, 오래전부터 갈망하던 체험이어서인지 색다른 풍광과 색, 작열하는 태양, 미묘한 느낌의 공기 등으로 더욱 흥미롭다.

하산 길은 산들바람이 파고드니, 기운이 다시 솟고 상쾌함으로 발길은 가볍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장관을 보면서 걸으니, 눈은 바쁘고 콧노래엔 흥이 더한다. 올라갈 때 놓친 풍광들이 새롭게 보인다. 페트라 정상에서 하지 못한, 소리 질러 외치고 싶던 말을 여기서 맘껏 외친다. 호흡은 편해지고 뻥 뚫린 가슴은 시원하고 가볍다. 어느새 산세가 완만해지고 드문드문 키 작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출발했던 지점이 코앞이다. 여기서 꾸불꾸불한 흙길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여, 산 중턱 절벽에 위치한 산악 마을 미스파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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