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든 조각가 ③] - 정창이 작가

by 데일리아트

정창이 작가는 다양한 재료를 다루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구들장, 돌, 유리 같은 서로 다른 재료들이 만나 하나의 장면을 만들듯, 그의 작업은 상처와 회복,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따뜻하게 조명한다. 각 재료가 지닌 물성과 특성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엮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아내고, 새로운 주제를 사유하여 구체적인 형상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은 깊은 집중력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오래된 건축물을 기록하고, 지역의 삶을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에는 조각을 넘어선 시간과 기억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정창이 작가의 작업 철학과 재료에 대한 태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까지 함께 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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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재료로 큰 스케일의 작업을 해왔는데, 그런 작업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궁금하다. 작업실을 간단히 소개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제 작업실은 인천시 중구 개항로 105-2에 위치한 ‘잇다스튜디오’입니다. 이 공간은 저에게 단순히 손을 움직이는 장소가 아닌, 감각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철과 돌, 나무와 유리, 그리고 구들장이 함께 숨 쉬는 이 공간은 시간의 퇴적이 얇게 내려앉은 곳이기도 합니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재료들이 먼저 말을 겁니다. 저는 그 말없는 언어를 듣고, 그들의 결을 따라 손을 움직입니다. 잇다스튜디오는 도시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품고 있어, 균형을 고민하는 저의 작업과 맞닿아 있습니다. 매일이 질문이고, 그 질문에 손으로 답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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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전경

구들장, 돌,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각 재료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저는 재료를 ‘만납니다’. 재료를 선택했다기보다, 오랜 시간 쌓인 것들과의 인연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구들장은 제천 지역의 오래된 주거문화와 연결된 기억의 단편이었습니다. 따뜻했던 온기, 눌린 재의 결, 오래된 삶의 감촉이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돌은 무게를 통해 말하고, 유리는 빛을 통해 말을 겁니다. 나무는 생의 흔적을 품고 있고, 금속은 냉정한 인공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 모든 재료들과 조용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 고유의 침묵과 저항을 존중하려 합니다. 물성이 곧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왜곡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작가는 서로 다른 물성을 결합시키는 방법,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이종결합'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했다. 이종결합으로 만든 작품 〈어머니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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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마음, 2024, 판넬위 한지,유리_78.5×59×10cm

'이종결합' 이라는 주제 아래 한국의 온돌문화와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그 깊은 감성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이 작업의 핵심은 '진자리'와 '마른자리'라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이 두 개념은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진자리'는 온돌의 윗목을 의미하며, 이는 아이가 태어나는 자리이자 생명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반면 '마른자리'는 아랫목을 뜻하며, 생명의 끝,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두 자리는 어머니가 밤낮으로 아이를 돌보며 진자리와 마른자리를 바꿔주던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곧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과 헌신을 나타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노래 가사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이 잘 드러납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에서 시작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라는 구절은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과 사랑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구들장과 유리, 돌과 같은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들을 결합하는 실험은 어머니의 마음과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이종결합'을 통해 생명과 재생의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치유, 관계의 형성을 탐구하며, 자연의 본질을 존중하고자 하는 저의 예술적 철학을 반영했습니다. 작품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주제로 한 저의 예술 세계를 집약한 결과물입니다. 자연의 숭고함과 어머니의 사랑을 새롭게 조명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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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2023, Sah wooden(산불피해목)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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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2019,구들장, 가변설치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이종결합'에서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저는 ‘균형’과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숨 쉴 수 있으려면,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이종결합은 조화의 문제가 아니라 공존의 문제입니다. 충돌을 피하기보다는, 충돌 이후의 장면을 상상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재료가 너무 강하게 말하면, 다른 재료는 침묵하게 되니까요. 그 조율을 위해 저는 재료 앞에서 늘 겸손하려고 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다루려면 많은 공구가 필요할 것 같다. 작업실에서 가장 아끼는 공구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에게 최고의 도구는 ‘손’입니다. 기계는 재료를 절단하고 깎을 수 있지만, 재료의 감정을 이해하고 무게를 느끼는 건 결국 손입니다. 손은 기억을 담습니다. 오랜 시간 나무를 만지다 보면, 결의 방향을 읽을 수 있게 되고, 돌을 오래 다루다 보면 언제쯤 깨질지를 알게 됩니다. 손끝의 떨림은 저에게 조형 이전의 언어이며, 감각의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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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각가 가장 아끼는 공구는 '손'이다.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아이디어는 어떤 방식으로 떠올리고, 실제로 작업에 들어갈 때는 어떤 순서로 진행하나?

아이디어는 일상의 틈 사이에서 스며듭니다. 산책 중 만난 나무의 결, 낡은 건물의 균열, 바람결에 날아간 작은 잎조차 작업의 단초가 됩니다. 스케치보다 먼저 감각이 반응하고, 개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입니다. 저는 주제를 정하기보다는 감각에 따라 흐름을 따릅니다. 그 뒤에야 재료를 찾고, 형태를 탐색하고, 배치와 조합을 거쳐 마지막으로 조형 언어로 굳힙니다. 어떤 때는 완성보다 그 앞단계의 침묵이 더 오래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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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는 사진

작가의 작업에는 자연적인 소재와 친환경적인 시선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산불 피해 프로젝트에서도 그 철학이 잘 드러났다.당산동 선유공원에서 작업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 부탁한다.

산불 프로젝트는 단순히 재난의 기록이 아니라, ‘상실 이후의 감정’을 다룬 작업입니다. 재는 사라짐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불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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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피해 동해 숲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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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탄 나무를 적재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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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현장에서 피해목을 운반하는 정창이 작가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연기반 해법으로서 산림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산불과 가뭄 등으로 인한 산림 파괴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산불은 인명피해, 재산피해 외에도 숲을 파괴함으로써 생물다양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며, 파괴된 숲의 재생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에 서울시 및 산림청과 함께 당산동 선유도공원에서 2023년 24일간(9월 1일~24일) 《LET'S FOREST 2023, 서울》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산불피해목으로 산불지역의 현장을 재현하고 불에 탄 나무를 적재한 작품을 전시하여 예술성과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예술은 상처를 봉합하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바라보게 하는 일입니다. 저의 작업은 그저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보며, 우리가 놓친 감정과 책임을 되묻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함께 바라보고,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오래된 건축물이나 지역의 흔적을 자주 다루는데, 작가에게 ‘시간’이나 ‘기억’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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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축물 앞에 서면 저는 조용히 손을 얹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낡은 공간이라 부르고, 건축가는 구조로 읽겠지만 저에겐 그것이 재료로 다가옵니다. 시간이 침묵처럼 스며든, 감정의 덩어리죠. 금이 간 기둥, 부서진 지붕, 들뜬 벽지조차 모두 하나의 조형 언어로 제게 말을 겁니다. 그 건물 안에는 누군가의 삶이 손때가 기다림이 켜켜이 쌓여 있죠. 그래서 저는 그것을 조각처럼 다룹니다. 건축물이기 전에 그것은 저에게 조각입니다.

기억은 그 시간의 무늬입니다. 저는 사라지는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그 사라짐 안에 숨은 온기를 붙잡고자 합니다. 바래고 부서진 것들 속에서 저는 늘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들의 삶, 그들의 감정, 그들의 이야기. 그것이 결국 조형이 향하는 본질이 아닐까요.

조각가로서, 혹은 한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가치는 무엇인가?

'정직함'과 '겸손'입니다. 재료 앞에서 정직하고, 삶 앞에서 겸손하려 합니다. 눈에 띄는 조형보다, 오래 머무는 감정을 만들고 싶습니다. 화려한 표현보다는 묵직한 여운을. 명확한 설명보다는 조용한 울림을. 예술이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면, 조각 역시 그런 삶의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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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을 설치하고 있는 정창이 작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관객과 나누고 싶은 감정이나 생각은 무엇인가?

저는 관객과 감정을 나누기보다는, ‘감각의 틈’을 건네고 싶습니다. 어떤 이는 그 틈에서 오래된 기억을 꺼내고, 어떤 이는 아직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마주하겠죠. 제 작업은 강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말없는 채움에 가까운 존재이길 바랍니다. 조용히, 그러나 오래 머무는 조각. 마음 깊은 곳을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처럼.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재료나 주제가 있다면 들려줄 수 있나? 향후 계획도 궁금하다.

최근에는 '소금'과 '금속'의 결합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생명의 기원이자 치유의 상징이고, 금속은 시간과 저항의 물질입니다. 이 상반된 재료들이 만나면 어떤 감정이 생길지, 그것을 조형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또한, 지역성과 생태를 주제로 한 야외 설치 작업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감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조형작업과 특정 장소 설치, 다양한 자연물과 건축물을 통해 조각 덩어리의 매체 범주를 끊임없이 '이종결합'으로 확장해오고 있습니다.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을 탐험하고 아카이빙하는 일은 개인적인 조형 행위를 넘어 공공성과 공동체의 이념을 포용하며 결국엔 ‘덩어리 그 자체’에 대한 사유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산불 피해목을 조형 재료로 삼고 그 안에 남은 잿빛 생명의 언어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작가 약력

2022년 ~ 현재 배다리 잇다스페이스 작은미술관 아트디렉터

2014년 ~ 현재 잇다스페이스 소속작가 및 아트디렉터

2022년 ~ 2023년 현재 예원예술대학교 미술조형학부 융합디자인과 교수

2008년 ~ 2014년 (주) 만들고 설립 및 개인 작업실 운영

전 시

2025년 2025 미술관프로젝트 STO 한국 현대미술, 정읍, 정읍 생활문화센터, 단체전

2025년 2025 미술관프로젝트 STO 한국 현대미술, 여수,여수미술관 / 고흥, 미르마루갤러리, 단체전

2025년 2025 미술관프로젝트 STO 한국 현대미술, 거제,거제해금강테마박물관&유경미술관, 단체전

2025년 ‘시간의 결, 자연의 숨’, 광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글라스폴리곤, 2인전

2025년 2025 미술관프로젝트 STO 한국 현대미술, 서울, 금보성아트센터, 단체전

2025년 2025 미술관프로젝트 STO 한국 현대미술, 인천, 잇다스페이스 작은미술관, 단체전

2024년 B커뮤니케이션 단체전, 대구, 단체전

2024년 ‘이종결합 - 어머니의 마음’ 서울, 아트필드갤러리, 초대개인전

2024년 ‘인천 호텔아트페어 2024’

2024년 ‘이종결합’ B커뮤니케이션, 초대개인전

2023년 ‘이구예나 with 인천’ 단체전

2023년 ‘개항장의 창작자들’ 단체전

2022년 ‘코리아 아트 페어’ 참가

2021년 KMJ 아트 갤러리 개관 단체전

2021년 休34展, 잇다스페이스, 인천

2020년 잇다스페이스 4인 기획전 [벽으로 스며든 바다. 소금창고. 100년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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