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 전, 나는 주로 식물과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자연은 조용한 위로였고, 나의 붓끝은 그 고요한 질서에 따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낯선 땅에 발을 딛은 이후, 내 그림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머무는 이들이 흔히 그렇듯, 나 역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앞에 오래 머물렀다. 한국에선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방인으로, 프랑스에선 아시아인으로 불리는 내 정체는 늘 공중에 뜬 듯 어딘가 미끄러져 있었다. 그 부유감 속에서 나는, 인물의 얼굴을 마주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그렸던 인물화 들이다.
화장, 치장, 변장, 그리고 성형까지. 변화무쌍한 얼굴에 나는 깊이 매료되었다. 과거의 얼굴이 ‘진짜’일까? 아니면 지금의 얼굴이? 이름을 바꾸면, 과거의 이름과 현재의 이름 중 진짜는 무엇인가? 국적마저 바꾼다면, 그 순간 나는 누구로 존재하는가? 진짜와 가짜, 본질과 위장에 대한 집착이 한동안 나를 붙들었다. 그렇게 나는 ‘마스크’를 그리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 속 ‘나’와 내가 인식하는 ‘나’ 사이의 간극, 그 이중성은 나의 화폭 위에서 가면이 되었다.
모든 존재는 양면을 지닌다. 선과 악, 앞과 뒤, 기쁨과 슬픔, 드러남과 감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나를 대체하진 않는다. 선한 나도, 비뚤어진 나도 모두 나다. 나는 결국 나이며, 그 다면성 속에서 나는 진실에 가까워진다. 드러나는 것과 감추는 것 사이에서 나는 왜 그토록 갈등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렸던 다양한 인물화 ⓒ홍일화
내가 그렸던 다양한 인물화 ⓒ홍일화
사회의 시선은 때때로 날카롭고 무례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 시선과는 무관하게 ‘나는 나’라는 진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세상은 수많은 조언을 안긴다. 하지만 그들은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말로 던진 조언은 흔히 잊히고,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작가는 자신만의 소신을 품고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흔들리더라도, 갈등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고집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믿는다. 작가란,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의 답이 아닌, 자신의 질문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살아가는 태도.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의 방황과 고통을 껴안고 예술로 길을 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길이다. 변화하고, 낯선 것을 접하고, 여행하며,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일.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를, 그리고 나의 예술을 완성해나간다.
[나의 인생 나의 작품: 화가 홍일화 ②] 나는 누구인가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