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만주족 말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둥베이(東北)평원 중앙, 헤이룽강 최대의 지류인 쑹화강(松花江) 변에 위치해 있다. 19세기 무렵까지는 몇 채의 어민 가구가 사는 한촌(寒村)에 지나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철도기지가 된 이래 상업, 교통도시로서 발전했다.
우리나라 사람 그 어느 누구에게 중국의 도시 '하얼빈'을 아냐고 물어봐도 모두들 안중근 의사를 얘기할 것이다. 안중근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의장대 뒤에서 뛰어 나오며 권총 3발을 쏘아 이토 히로부미에게 명중시키는 장면을 그린 박영선화백의 민족기록화가 있다.
박영선, 이등박문총살(안중근), 1976, 290.9x197cm /출처: 독립기념관
박정희 정부는 민족의 가치를 강조하고 근대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당대의 저명한 화가들을 지원하여 '민족기록화'를 제작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지나 구한말, 일제강점기, 이후 근현대의 주요한 사건이나 성과, 문화재 등을 주제로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1967년 4월 민주공화당 의장이던 김종필은 민족기록화를 그려보자고 화단에 제안했다. 그때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1,000호(5.3×2.9m), 500호(3.3×2.5m) 크기의 초대형 캔버스에 한민족 주요 역사의 장면을 그려 넣자는 기획이었다. 작품의 스케일과 참여 작가의 규모가 당대 최초, 최대였다. 중진·원로작가 이종상, 오승윤, 손수, 박서보 등 55명이 제작에 참여했다.
그때 한국의 화단은 그런 대형 작품을 제작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유화물감도, 캔버스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종필이 일본에 사람을 보내 3t 트럭 분량의 미술재료를 사서 배로 싣고 와 화단에 무료로 나눠줬다. 당시 우리 화가들로는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것들이었다.
민족기록화는 ‘군사정권 정당화의 도구’라는 비판과 함께, ‘작가들이 자율적인 정신이 결여된 채 본래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사실주의 스타일로 그리다 보니 조형적 완성도도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으며 진지한 미술 비평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역사학자들은 고증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정권에 압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참여 작가들의 회고를 보면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물질적 환경이 제공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반가웠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많은 비판 속에 민주화 이후 민족기록화는 교과서나 역사책에 작가 이름은 언급되지 않은 채 삽화로만 전해져오고 있을 뿐이다.
박영선 화백은 〈이등박문을 총살하는 안중근 의사〉(1976), 〈현충사〉 (1973), 〈인천판우 유리〉(1975), 〈5월 16일의 새벽〉 (시기 미상) 등을 남겼다.
박영선 화백 (1910-1994)은 서양화가로 일제시대 친일의 논란도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가운데 미술 부문에 포함되었다. 해방후 여러 미술대학의 교수를 지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역임, 1969년 3·1문화상, 1982년 국민훈장 문화장을 받았다.
주로 누드화를 포함하여 여성을 소재로 한 인물화를 즐겨 그렸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 외에도 빙등축제, 성 소피아 성당 등이 유명하고 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하얼빈 맥주(哈尔滨 啤酒)가 유명하다.
하얼빈 맥주는 폴란드계 러시아인인 얀 브루블레프스키(jan wróblewski) 가 1900년에 만든 중국 최초의 맥주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따라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만주철도 건설을 위해 만주로 이주했고 만주의 중심지인 하얼빈시에 대규모 러시아 정착촌을 세웠다. 그 러시아 이주민들을 위해 하얼빈 맥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소유주가 여러번 바뀌다가 2004년에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엔하이저부시 (Anheuser-Busch, AB인베브)에 소유권이 넘어가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OB맥주가 2015년부터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또다른 중국 맥주인 칭다오 맥주 (青島啤酒)는 19세기 말 독일이 산둥반도를 조차한 이후 1903년 독일인과 영국인에 의해 설립된 합자회사가 그 기원이다.
1차 대전 후 일본의 소유가 되었으며, 1945년 중국국민당 소유가 되었다가 1949년 국영칭다오맥주공장이 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추세에 따라 1990년대 초반 앤하이저부시와 합작한 칭다오맥주유한공사가 되었다. 이후 AB InBev와 아사히맥주를 거쳐 2017년 이후로 완전한 중국 자본 소유의 회사다.
한국에는 비어케이가 수입중에 있으며 중국수입맥주 중 부동의 1위였지만 2023년 오줌맥주 파문 이후 그 판매량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중국의 4대 맥주 (왼쪽부터) 하얼빈 맥주, 칭다오 맥주, 설화 맥주, 옌징 맥주
세계 1위 판매량을 자랑하지만 의외로 세계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은 설화맥주(雪花啤酒 SNOW Beer)도 유명한 중국의 맥주다. 1936년 중국 선양에서 시작한 설화맥주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중 하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설화수'와의 상표권 문제로 수입되지 못하다 2022년에 그 문제가 정리되어 수입이 되었지만 인기를 끌지 못한다.
이후 2025년 4월에 하이네켄 코리아가 설화맥주를 한국에서 독점 유통하기로 하였다. 설화맥주는 MONS Beer로도 불리고, 또 검색이 되기도 하는데 SNOW를 세로로 쓰다보니 MONS로 읽는 사람들이 생겨서다.
중국 4대 맥주중 마지막 하나는 옌징맥주(燕京啤酒)이다. 옌징은 베이징의 옛이름이다. 중국내 판매량은 설화와 칭다오에 이어 3위지만 베이징에서만큼은 점유율이 50%를 훨씬 넘는다. 1980년 중국 베이징에서 설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북경맥주코리아가 수입중이다.
날이 더워져 맥주를 많이 찾게되는 계절이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전세계 맥주들이 다양하게 들어와 있다. 이중 중국의 4대맥주를 앞에두고 비교시음해보는 것도 재미날 듯 하다.
[신종근의 미술과 술 ⑧] 민족기록화와 중국의 4대맥주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