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그타임(ragtime)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을 넘어 유럽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왼손으로는 규칙적인 박자를 연주하며 오른손으로는 엇박자(off beat)와 당김음(syncopation)을 강조하여 경쾌한 선율과 리듬을 뿜어내는 래그타임 피아노 연주의 매력은 대중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래그타임이 유행하던 당시는 미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장 노동자의 수요가 늘어나 이민자가 유입되었으며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 등 북부 도시로의 남부 흑인이 대이동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다양한 계층과 인종이 한 데 모여 새로운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래그타임과 관련된 다양한 춤인 투스텝, 케이크워크, 애니멀 댄스 등은 원래 흑인과 하층민의 문화였으나, 점차 백인 중산층과 상류층까지 확산해 유행하며 흑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미국의 주류 문화와 융합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한편에서는 래그타임과 전혀 상반된 느낌과 정서를 가진 음악이 흑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블루스(blues)다. 래그타임이 도시의 화려함과 활력을 상징했다면, 블루스는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겪었던 고단한 삶과 차별, 그리고 상실과 희망이 교차하는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블루스의 리듬과 선율 위에 깊은 슬픔과 절망을 노래하고 거기서 삶을 버텨내는 힘과 희망을 찾았다. 따라서 블루스는 흑인들의 숨결, 영혼, 그리고 자화상과도 같았다. 흑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서 그 누구보다 고된 삶을 살았던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는 "블루스는 무엇이든 치유해 주는 약이다. 블루스를 연주하고 나면 아픔이 사라진다."라고 말했다.
블루스는 어떻게 생겨났나?
1865년 노예 해방 이후에도 미국 남부 흑인들은 여전히 인권 유린과 경제적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법적으로는 자유를 얻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야 했으며 인종차별과 사회적 배제는 계속됐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유를 얻어 이동이 용이했던 흑인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미시시피 델타, 텍사스 등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유랑 음악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농장, 마을, 거리, 술집 등 다양한 장소를 떠돌며 연주했고 그것으로 삶을 영위했다. ‘블루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W. C. 핸디는 그의 자서전 『Father of the Blues』(1941)을 통해 1903년경 미시시피 투트와일러(Tutwiler) 기차역에서 블루스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김정식, W. C. Handy(1873~1958)
핸디는 “키가 크고 마른 흑인이 내 곁에서 기타를 퉁기기 시작했다. 그의 옷은 누더기였고, 신발에서는 발가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시대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는 하와이언 기타리스트들이 강철 막대를 쓰듯 칼날을 기타 줄에 눌러 연주했다.”라고 쓰고 있다. 핸디는 이 만남을 “The weirdest music I ever heard.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기이한 음악)”라는 말로 표현했다. 핸디는 그가 처음 접한 블루스의 독특하고 낯선 음색, 그리고 깊은 슬픔과 정서를 통해 블루스의 본질을 깨닫고, 이후 구전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블루스 곡을 채입하고 전파하는데 평생을 바치게 된다.
블루스는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에서 일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들이 부르던 노동요(work song)와 필드 할러(field holler), 그리고 흑인영가(negro spirituals)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동요가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며, 작업의 효율을 높이고 협동을 도모하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구조를 가졌다면, 필드 할러는 주로 혼자 부르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외침이었으며, 개인의 슬픔과 소망,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재즈 연주의 기본 방식인 콜 앤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 쉽고 흥겨운 리듬을 반복하는 리프(riff) 연주, 그리고 집단 즉흥 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 등은 전통적인 노동요의 영향이 크다. 한편, 즉흥성과 감정 표현 같은 주관적 연주 방식은 필드 할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흑인영가는 아프리카 음악 전통과 유럽 찬송가가 결합해 정서적 깊이와 영적 메시지를 바탕으로 재즈의 정신적 측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흑인영가의 영적·정서적 메시지는 훗날 프리재즈, 아방가르드 재즈 등 실험적 재즈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김정식, Wynton Mashallis(b,1961)
흔히 음악을 세계의 공통언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블루스야말로 세계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트럼펫 연주자 윈튼 마샬리스는 저서 『재즈 선언』에서 터키를 방문했을 때 겪은, 블루스에 관한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어느 날 현지 뮤지션이 그 나라의 민속악기를 가지고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곡을 함께 연주할지 의논했지만 좀처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자신이 “블루스는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그 로컬 뮤지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함께 즐겁게 연주해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고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마샬리스는 재즈와 블루스가 가진 개방성, 포용성, 즉흥성이야말로 음악의 본질적 가치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 몇 가지가 있다.
블루스의 보편성과 포용력
첫 번째, 블루스는 세계 유행 음악의 뿌리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록, 팝 음악은 모두 블루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힙합, R&B, 일렉트로닉 등 세계 각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중음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두 번째, 블루스는 음악적인 면에서 세계 각국의 민요와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민속음악에서 5음계인 ’펜타토닉 스케일‘이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우리로 하여금 블루스를 친숙하게 느끼는 이유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우리 민요의 ‘궁-상-각-치-우’는 서양음악의 ‘도-레-미-솔-라’에 해당한다.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은 ‘솔’부터 시작하는 ‘치-우-궁-상-각’ 순서이다. 이렇게 같은 음계지만 음정의 순서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선법(모드, mode)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블루스 음계와 비슷한 모드는 ‘라’부터 시작하는 ‘우-궁-상-각-치’이다. 이 음계는 ‘라-도-레-미-솔’로 단조 음계와 유사하여, 슬프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 듣는 블루스 음악에 친숙함을 느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공감대이다. 백인에게 오랜 시간 핍박받으며 생긴 저마다의 상처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 민요의 한(恨)이 떠오르는데, 동병상련의 느낌 때문일까?
우리의 전통 가요 제목 중에 ‘명동 블루스’, ‘대전 블루스’ 등 ‘블루스’를 붙인 노래 제목이 많다. 또 국내 도서 목록에서 ‘블루스’를 검색하면 ‘우리들의 블루스’, ‘백수 블루스’, ‘꿈의 블루스’ 등 수백 권의 책이 검색된다. 무슨 무슨 ‘블루스’라는 단어는 아마도 ‘.... 의 노래’, ‘....... 의 애환’ 정도의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우리네 서민, 약자의 정서에 깊이 깔린 ‘넋두리’ 정도가 블루스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민요나 구전가요에 나타나는 넋두리와 해학은 블루스를 생각나게 한다. 이러한 음계와 감정의 보편성은 유행 음악의 뿌리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처음 만난 연주자끼리 ‘블루스’를 매개체로 잼세션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블루스가 유행하다
블루스가 최초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08년, ‘안토니오 마지오’의 ‘I Got the Blues’가 악보로 출판되면서부터였다. 이어서 1912년에 ‘하트 완드(Hart Wand)’의 ‘Dallas Blues’와 ‘W.C. 핸디’의 그 유명한 ‘The Memphis Blues’ 악보가 각각 발표되며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는 뉴올리언스에서 래그타임과 행진곡이 뒤섞이며 초기 재즈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던 시기이다. 그래서일까? 1914년 7월, 최초로 녹음된 블루스 음악인 W.C. 핸디 작곡의 ‘The Memphis Blues’를 들어보면 위에서 심각하게 언급한 블루스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밝은 느낌의 래그타임, 포크 음악, 혹은 군대 행진곡이 어우러진 느낌을 받는다.
W. C. Handy의 'St. Louis Blues' 악보 표지 /사진: 김정식
연주는 모든 멤버가 백인으로 구성된 빅터 밀리터리 밴드(Victor Military Band)가 했다. 이 또한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백인 주도의 음반 산업계에서 흑인은 녹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는 찰리 패튼(Charley Patton), 선 하우스(Son House),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등장해 미래의 화려한 록 음악으로 향해가는 독보적인 블루스 전통을 확립하고 있었다.
김정식, Robert Johnson(1911~1938)
특히 각 금관악기가 저마다 뚜렷한 음색과 역할을 가지며, 동시에 서로 경쟁하듯 연주하는 집단 즉흥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는 여러 사람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어울리는 흑인 공동체의 생활 방식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재즈의 아버지로 통하는 루이 암스트롱도 자신의 저서 『Satchmo: My Life in New Orleans』에서 “거리에서 브라스 밴드가 연주할 때마다, 마치 도시 전체가 음악으로 살아나는 것 같았고, 사람들의 감정과 기쁨이 그 소리 속에 쏟아져 들어가는 듯했다.”라고 적고 있다. 유럽식 군악대의 악기 편성과 행진곡 리듬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타고난 리듬과 즉흥성, 그리고 블루스 감성이 결합하여 재즈라는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뉴올리언스라는 지역적 요건이 그 모든 브라스 밴드로 하여금 래그타임과 블루스 외, 프랑스, 스페인, 아프리카, 카리브해의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흡수하며 재즈를 탄생시켰다.
Louis Armstrong Plays W. C. Handy 앨범 커버 (1954년 발매) /사진: 김정식
[김정식의 재즈 에세이] 재즈의 뿌리, 래그타임과 블루스가 만나다!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