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선의 문화유산 산책 ⑤] 여인들의 시기 속에서도

by 데일리아트

백제의 미소 -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

인바위 산신령과 여인들의 시기, 그리고 백제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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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84호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 /사진: 이한복 궁궐길라잡이

위 사진을 보자! 산신령을 가운데 두고 본처와 첩이 서로 시기하는 모습이라고 민가에서 전해진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독자들이 보기에 오른쪽의 젊은 부인이 손으로 턱을 괴고 건방지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용용 죽겠지' 하고 약을 올린다. 보관을 쓰고 있는 왼쪽의 부인이 화가 나서 짱돌(보주)을 들이미는 모습이다. 그러나 가운데 산신령은 손을 들어 '하지마!' 하고 말리지만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1959년 4월 1500년간 용현리 산속 '인(印)바위'에 있던 삼존상이 세상에 드러날때, 마을 사람이 삼존상을 보고 전해준 재미있는 이야기다. 삼존상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는 백제 후기 중국과 해상 교통을 통하여 불교 문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서산보원사지'와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이하 '삼존상')이 서로 가까운 곳에 있다. ‘보원사’는 창건 연대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 1,000여 명이 머물렀던 큰 백제식의 사찰이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국보 제84호 삼존상은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마애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 찾아가서 마주친 삼존상은 얼굴 가득히 온화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가득 띠고 있었다. 우리 이웃 아저씨의 형상, 인간미가 넘쳐 나오는 표정을 보여 매우 친근감이 생긴다. 용현계곡 '인바위'의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삼존상은 2.8m 높이로 현세불 석가여래입상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협시보살을 두었다. 석가여래입상을 기준으로 왼쪽, 머리에 관(冠)을 쓰고 만면의 미소를 띠고 있는 입상은 과거불을 의미하는 ‘제화갈라보살’이다. 관세음보살로 추측된다. 오른쪽은 미래불인 '미륵보살'로 연화대 위에 앉아 한쪽 다리를 무릎 위에 포개 얹고 손가락을 얼굴에 댄, 명상에 잠긴 모습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찰에는 전각 안에 주불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부처를 거느린 삼존불의 형태로 봉안되어 있다. 사찰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가운데 배치하고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만행(수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 협시보살로서 봉안된다. 하지만, 서산삼존상은 매우 독특하여 좌우 협시불로 관음보살과 미륵보살을 두는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어, 당시 백제미술의 독창적인 형식을 알 수 있다.

삼존불은 얼굴 표정이나 입상의 모습이 보는 각도나 빛이 비치고 있는 방향, 날씨, 해의 유무 등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르다. 갈 때마다 웃는 모습이나 형태가 바뀌어 보인다. 때문에 이 삼존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맑은 날 해가 지기 직전이나 해가 뜨고 난 직후가 좋다. 계절적으로 동짓날 무렵이 부처님 미소를 느끼기에 매우 좋다고 한다. 현재는 불상 바로 앞마당까지 흙이 채워져 있어 인자한 모습을 가까이에서는 잘 느낄 수 없다. 본디 석가불의 눈은 약간 아래로 향해 있어서 골짜기 아래에서 올려 보아야 부처님의 눈과 쉽게 컨택할 수 있어 깨달음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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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은 금동이나 나무 돌 등 여러 가지 재질로 만들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과 나무로 제작된 일본 고류지(광릉사)의 '반가사유상' 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예술적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고 아름다와 두 작품 다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조각작품으로서 작품 가치도 뛰어나지만. 작품 속에 종교적 혼을 부여한 점은 그 유명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과도 차별화 된다.

한자로 쓰여진 문화유산의 이름은 한문를 배우지 않은 신세대들에게는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한자의 의미와 일정한 규칙과 절차에 따라서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면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은 소재지(지역, 사찰) + 재질 + 존상 명칭 + 존상 격 + 형식 + 자세 순으로 명명되었다. 즉, '서산 용현리'에 위치한 '마애(摩崖 갈 마, 벼랑 애)', 벼랑이나 절벽에 있는 돌을 갈고 다듬어 세 분의 부처님 형상을 새겨 조성했다는 의미다. '여래(如來)'는 열반에 다다른 사람이라는 의미, '보살(菩薩)'은 ‘보리살타’의 줄임말로 '깨달음을 이룬 존재'며 절에서는 여성 신도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수인(手印)은 불보살상을 조성할 때 존상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취하는 손가락의 모양이라고 한다. 사진 속의 여래입상은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주는 친숙한 형태의 수인인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현장을 답사하다 보면 지명의 유래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지명의 유래를 찾아 보면 그 지역의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명 가운데에는 고대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 되는 과정에서 생긴 지명들이 있다. '법성(法聖)'이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법성포, 법곳동, 법동 등을 들어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한 국가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 372년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가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고구려에 도착했고, 신라는 527년(법흥왕 14년) 이차돈(異次頓)의 순교 사건을 계기로 불교를 공인했다. 백제는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A.D 384년에 최초로 불법(佛法)의 성스러운 장소 영광 법성포로 들여왔다.

우리나라의 국가 유산 가운데 불교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일부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종교 신념과 연관지어 문화유산에 접근한다면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문화유산은 파괴하기도 쉽지만 보존 및 보전하기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한때 삼존불은 자연재해를 최소화하고 풍화와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전각을 설치하였다. 그렇지만 생각과 달리 결로와 파릇파릇한 곰팡이가 발생하여 오히려 훼손의 여지가 발생하기도 하여 2016년 전각을 제거하했다. 그 흔적이 아직도 주위에 남아 있다.

2001년 3월 9일, 세계 최대 규모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을 탈레반 군사정권이 불상이 우상숭배 등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폭탄을 퍼부어 산산 조각냈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관람료를 징수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문화유산 보존과 지속 가능한 관리는 관광뿐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무시할 수 없는 연결 고리다.

서산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이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마애불은 입구에 숲과 시냇물이 좋고걷기 쉬운 평편한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다. 또 주위에는 유명 맛집도 많다. 가까운 곳에 있는 예산군 봉산면 〈석조사면불상〉, 태안군 백화산에 있는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을 함께 관람하는 것도 좋다.

문화유산을 관람할 때는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 보거나 현장의 문화유산 해설판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갖춘 그 지역의 전문해설사에게 설명을 듣는 것이 제일이다. 미리 예약을 하거나 입구에서 전문해설사를 찾아 설명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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