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by 데일리아트

한국에서 일본미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서양미술을 보기 위해 유럽으로, 미국으로 다니면서도 정작 일본 근대기 이래 수많은 서양화 명작을 중심으로 수집된 컬렉션들이 지방의 현(県) 소재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포진되어 있음을 알기는 어렵다. 일본미술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저러한 역사적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어느새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상호 교류전을 개최한다. 6월 17일부터 8월 1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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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시 포스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 40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22건이 선보인다. 도쿄국립박물관 전시품 중 38건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며 이 중에는 중요문화재 7건도 포함되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 《일본미술 명품》 전 이래 가장 내실 있는 전시다. 내년 2월에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국미술의 보석상자》 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전은 ‘꾸밈의 열정’, ‘절제의 추구’, ‘찰나의 감동’, ‘삶의 유희’라는 키워드로 나누어 일본미술의 외적 아름다움과 작품에 담긴 내면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일본미술의 요체(要諦)를 맛볼 수 있는 기회다.

마키에(蒔絵, 칠기 표면에 옻칠로 그림이나 무늬 등을 그리고 그 위에 금, 은 등을 뿌려서 기면에 정착시키는 일본 특유의 공예) 기법으로 벚꽃무늬를 정교하게 묘사한 칠기 상자는 우아함과 화려함을 비할 데가 없다. 에도 시대(1603-1868) 상류층의 문화 활동이었던 구미코(組香, 여러 향을 맡고 알아맞히는 놀이) 도구를 보관하는 상자라 하니, 검은 바탕에 송이송이 피어난 황금빛 벚꽃의 아름다움이 시각과 함께 후각도 동시에 일깨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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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무늬 향 놀이 도구 보관 상자, 에도 시대 19세기, 나무에 칠, 마키에, 16.6×18.3×20.3cm, 도쿄국립박물관 /사진: 최은규

영락없이 고소데(小袖, 일본 전통 의상에서 소맷부리가 좁은 옷)로 보이는 이불도 있다. 솜을 채워 넣은 옷 모양 이불은 눈이 번쩍 뜨이게 화사하다. 봉황, 학, 거북, 대나무, 소나무, 매화 등 전통적 길상의 상징을 수놓아 신방에 장식하는 마음. 짝을 찾은 자녀의 앞날이 이불처럼 따습기를 바라는, 어디에서나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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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모양 이불, 에도시대, 19세기, 비단에 자수, 146.0×140.0cm, 도쿄국립박물관 /사진: 최은규

이러한 화려한 꾸밈의 다른 쪽에는 절제미를 추구하는 와비사비(侘寂,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가 있다. 16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다도가 본격 유행하면서 간결한 미의식에 어울리는 소박한 다기를 소중히 여겼다. 16세기에 일본에 건너가 ‘고려 다완’으로 불렸던 한반도 제작의 막사발, 그 중에서도 ‘이도 다완(井戶茶碗)’은 그 자연스럽고 은은한 미감으로 애용된 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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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 이도’라 불린 아오이도 찻잔, 조선 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사진: 최은규

일본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던 에도 시대에는 도시 상공인들의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각종 여가 활동, 장식 문화 등으로 나타난다. 그 시대인들의 다양한 여가 문화, 다채로운 무늬의 옷차림 등을 전통 금병풍을 통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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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내유락도병풍(邸內遊樂圖屛風), 에도 시대 17세기 전반, 6곡 1쌍, 종이에 금지, 채색, 각 78.5×268.2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최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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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내유락도병풍’ 부분. 카드놀이 중인 사람들 /사진: 최은규

살림살이의 여유가 이를 누리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슷한 시기 임란(壬亂), 호란(胡亂)을 겪은 조선에서는 농업 생산성 증대와 상공업 진흥으로 얻은 경제적 여유가 사치 풍조로 이어지자 이에 대한 금지령이 여러 차례 내려진 바 있다. 특히 18세기 말 정조는 고급 중국 제품 애호 경향을 비판하면서 연행 무역(燕行貿易, 조선 후기 청나라 연경을 왕래하던 사신 행차를 통해 이루어졌던 무역)에서 사치품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한 청화백자 제작,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등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던 가체(加髢, 일종의 가발로 지위가 높은 여성과 기생들이 사용함) 사용도 금지했다.

에도 막부(幕府)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사치를 단속하기 위해 검약령(儉約令)을 내린다. 절제를 요구하는 정책으로 인해 더 이상 화려한 의복을 입을 수 없게 되자 도시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단정하고 간결한 옷차림이 유행하고, 잔무늬나 줄무늬로 된 옷을 많이 입게 된다.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대책으로 새로운 패션이 창출된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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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고소데, 에도 시대 19세기, 면, 144.0×124.0cm, 도쿄국립박물관 /사진: 최은규

‘아와레(あわれ,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정취를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는 한 단어로 옮기기 어려운 일본인의 세심한 감정을 보여준다. 한국어의 ‘정(情)’이나 ‘한(恨)’을 한 마디로 옮기기 어렵듯이 아와레가 그렇다. 11세기 초 헤이안 시대에 무라사키 시키부(紫武部, 생몰년 미상)가 쓴 고전소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는 아와레라는 표현이 무려 1,000회 가까이 나올 정도로 아와레라는 애틋한 정서가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라 시대(710-794)의 시인 야마노우에 오쿠라(山上憶良, 660-773년경)는 고대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서 가을의 일곱 가지 풀꽃(싸리꽃, 억새꽃, 칡꽃, 패랭이꽃, 마타리꽃, 등골나물, 도라지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로 읊었다. 이러한 미의식은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품에도 스며들어 있다. 만물이 시들고 말라 가는 가을 한때, 유한한 인간의 삶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풀꽃에 이입하여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운 정취를 담아낸다.

가을풀무늬를 그린 고소데는 일본 장식 화풍의 대가 오가타 코린(尾形光琳, 1658~1716)의 작품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린파(琳派, 일본 전통 회화의 한 유파로 장식성과 세련된 구성이 특징임)라는 명칭이 생겼을 정도로 뛰어난 화가다. 금지(金地)를 배경으로 군청색, 녹청색으로 그려진 제비붓꽃이 리듬감 있게 배치된 <연자화도병풍>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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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코린, 연자화도병풍(燕子花図屏風), 에도 시대 18세기, 6곡1쌍, 지본금지 채색, 일본 네즈미술관, 국보

에도 시대 당시 유복한 상인 집안 여성들 사이에서는 유명 화가가 직접 그린 고소데가 유행했다고 한다. 이 고소데는 코린이 그린 몇 점의 작품 중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작품이다. 비단 바탕 위에 도라지꽃, 억새, 싸리, 들국화가 세련된 색감으로 그려져 가을 들판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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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코린, 가을풀무늬 고소데, 에도 시대 18세기, 비단, 147.2×130.2cm, 도쿄국립박물관, 일본 중요문화재 /사진: 최은규

가을의 풀꽃은 병풍에도 담겨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시각화한다. 금빛 바탕 위에 억새, 마타리꽃, 도라지꽃, 들국화, 등골나물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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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기요시, 가을풀을 그린 병풍, 에도 시대 19세기, 6곡1쌍, 종이에 금지, 채색, 각 156.0×346.0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최은규

아와레라는 미감을 드러내는 소재로 일본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이러한 풀꽃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꽃들이다. 소년과 소녀가 가을걷이하는 들판에서 꺾었던 들꽃들. 소녀가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양산 받듯이 했던 마타리꽃을 비롯해, 도라지꽃, 싸리꽃, 들국화, 칡꽃 등을 꺾으며 산을 향해 달리던 장면에서 나온다. 한국인들에게 소박하고 풋풋한 정감을 전해주던 그 풀꽃들은 금빛 병풍 위에 탐미적일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흰점 위에 노란색을 덧칠해 농담까지 표현하여 입체감을 살린 마타리꽃은 흡사 손에 잡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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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풀을 그린 병풍’ 부분 /사진: 최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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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풀을 그린 병풍’ 부분. 마타리꽃 /사진: 최은규

한국인과 일본인은 생활의 풍요로움이 즐거움과 과시로 이어지는 인간적 심리를 함께하는가 하면 동일한 대상을 보는 눈과 마음의 거리가 서로 떨어져 있기도 하다. 미술 작품을 통해 비교적 알려진 장식과 절제뿐만 아니라 작품 안에 담긴 아와레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를 다시 되짚어 본다. 또 다른 수교 60년을 향해 가는 시간이다. 일본미술이라는 문을 열고 그 나라를 향해 한 걸음 내딛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움에는 국경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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