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그림
남산골 한옥마을에 놓여진 장독대
김윤겸, 금오계첩 중남산골에 있던 천우각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아름다운 정취를 말할 때 목멱산(남산)을 빼놓을 수 없다. 경복궁의 진산인 남산은 너무도 아름다워 푸른 학이 노니는 동네였다. 그래서 남산의 북쪽은 청학동이라 했다. 지금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렇게 좋은 곳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헌병대사령부'가 들어섰다. 일제는 군인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헌병대 아래 경찰을 배속해서 '헌병경찰제'라는 유례없는 통치 방식을 만들어냈다. 헌병경찰제는 군대인 헌병과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경찰을 동일 계통의 명령체계 속에 둔 일본의 무력 통치 제도다. 중앙과 지방의 헌병 수장이 경찰의 총수를 겸했다. 헌병대 사령관이 경찰을 지휘하는 경무총감을 겸임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순진한 우리나라의 백성들을 무력으로 감시하고 통제의 수단으로 삼았다.
조선헌병대 사령부 /출처: 이재영
일제가 떠난 이곳은 1962년 수도 서울의 방위를 책임진다는 수도방위 사령부가 자리를 대신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5.16군사 쿠데타에 참여한 부대를 모아놓아 정권을 지키기 위한 기관이었다. 얼마전까지 정문에 '조선헌병대사령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198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도방위사령부 재임시에는 입구에 '남산 충정사'라는 절을 군 법당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존속한다.
이런 흑역사가 있던 곳이 한옥마을로 바뀌었다. 1989년 '남산 제모습 찾기'의 일환으로 한옥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1998년 4월 18일에 문을 열었다.
남산골한옥마을에는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과 대한제국 시종원경 윤덕영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 등의 한옥을 옮겨 짓거나 새로 지었다. 윤택영과 윤덕영은 형제로, 나라가 위난에 처할 때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제에 팔아넘긴 장본인이다.
조선 수도 한양 500년을 노래한 <한양가>에는 윤택영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합방 이후 한양 보소 / 만고역적 윤택영이 부원군 명색되고 / 임금에 옥새 빼사 일본통감 갖다주고…”
이런 사람들의 집이 좋긴 좋았나 보다. 큰 기와집이 서울에 흔치 않을 때 윤택영은 자신의 딸(순정효황후)이 순종의 계비가 되자 흥청망청 살다가 빚을 져서 결국 빚쟁이에게 쫓겨 나라를 떠나야 했다. 순정효황후는 남편 순종이 옥새를 일본에 넘기려 하자 이를 훔쳐 달아났다. 이를 보고 따라온 큰아버지 윤덕영은 조카 순정효황후를 겁박하여 옥새를 빼앗아 다시 일본에 넘긴다.
이곳은 피서지를 겸한 놀이터로 유명했던 곳인 만큼 경관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혔다. 조선헌병대사령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 잡으면서 훼손되었고, 이후 1998년에 이르러 서울 시내에 산재해 있던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 5채를 이곳에 옮겨와 한옥마을로 조성하면서, 선조들의 생활 모습을 재조명할 수 있는 전통문화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때 지형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 식생인 나무를 심고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하였으며 연못과 정자도 복원하여 선조들이 멋과 남산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손자들은 나의 상념을 눈치채지 못하고 전통 한옥을 유심히 둘러보면서 조선 시대 선조들이 살았던 모습을 관찰하고 전통 정원, 국악당, 서울 천년 타임캡슐 광장, 전망대 등 뛰어난 주변 경관에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청학지 /사진: 이재영
청학지에 노니는 비단잉어를 주원이가 그렸다.
“이게 무슨 놀이예요?”
“재미있다. 히히”
손자들이 화살을 항아리에 던져 넣는 전통놀이의 하나인 투호를 직접 체험하며 즐거워했다. 투호는 윷놀이나 제기차기 등과 함께 우리 민족이 즐겼던 민속놀이의 하나로, 남녀노소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다.
이곳에는 일반인에게는 역사적 사건을 떠나 전통 한옥을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다. 도심 속에서 한적한 둘레길을 걷는 기쁨은 상상 이상이다. 순환길을 따라 정문에서 한옥마을을 지나 서울 천년 타임캡슐 광장, 실개천과 둘레길, 전망대를 거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는 볼거리도 많을 뿐만 아니라, 경관이 뛰어나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 서울 천년 타임캡슐은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 뒤 600년이 되던 1994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시민들의 생활 모습을 대표하는 물품 600점을 매장했다. 서울 정도 1,000년을 맞이할 때 개봉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것들이 후손에게는 문화재가 된다. 1994년부터 계산해서 400년 후인 2394년 11월 29일이 타임캡슐 개봉 예정일이다.
남산골한옥마을에는 국악당도 있다. /사진: 이재영
과연 타임캡슐 안에 있던 물품은 먼 미래인 400년 뒤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손자들도 궁금했지만 나 또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는 매년 봄과 가을에 이루어지는 전통 혼례 행사이다. 선남선녀들에게 각광받는 전통 혼례는 일반 결혼식과 다른 고유의 문화로 신랑, 신부 양가의 의식 절차가 특히 눈길을 끈다. 야외 공연장에서는 가끔 줄타기나 사물놀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3, 4번 출구를 나와 5분 거리에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고 입장료는 무료다.
[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32] 우리의 흑역사가 있던 곳이 '남산골 한옥마을'로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