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독립영화 배우] 아버지로, 장수로, 영화 제작

by 데일리아트

스크린의 가장 최전방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존재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배우일 것이다. 그들에 의해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지금, 주목받아야 할 영화 배우들을 소개한다. ‘발굴! 독립 영화배우’는 단지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 자신만의 색을 지닌 배우들의 진짜 이야기를 조명하는 기획이다.

첫 순서는 2017년 개봉한 〈아들에게 가는 길〉에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성락 역)를 연기한 배우 서성광이다.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감독을 맡은 최위안 감독은 2014년 서울영상위원회로부터 독립영화 제작지원금을 받은 후에도 1억여 원 남짓의 추가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도 '장애인 영화를 누가 보겠느냐'는 사회적 편견과 냉대에 가로막혀, 2년이 지난 후에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농인의 아버지를 맡은 배우 서성광도 영화 제작만큼 고되고 힘든 사연이 있었다. 배우 서성광은 독립영화 배우라기 보다는 예전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맞선남 역으로 주가를 올렸던 배우다. 배우가 연기한 영화와 드라마 제작 이야기와 함께 서성광 배우의 연기 철학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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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예정 드라마에서 '깡패'역의 서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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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가는 길 출처: 영화 스틸 컷

- 〈 아들에게 가는 길〉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고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저희 아버지는 저에게 지금까지 별 말씀 없이 살아가십니다. 공부하라는 말 딱 한 번, 회초리 한 번 드신 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타입입니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아버지도 저희 아버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표현은 잘 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바라보지만 스스로 깨닫고 무언가를 해 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습니다.

- 처음 카메라 앞에 섰던 순간이 기억나는지? 데뷔작이었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맞선남 역할이 배우로서 어떤 시작이었는지 궁금하다.

공채 합격을 하고 연수 기간에 그 시절 인기리에 방송되던 사극 촬영장에 견학을 갔습니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저에게 대본 중 한 대사를 시키셨습니다.

“너희들을 오늘부터 실습 훈육을 할 수 있는 수민루로 옮길 것이다. 모두 그 쪽으로 모이도록 하라.”

궁궐 의원이 의녀 준비생들에게 하는 대사였습니다. 저는 대사를 했고 캐스팅이 되었습니다. 21년이 지나도 아직 그 첫 대사는 기억이 납니다. “너는 내일 아침 7시까지 여기 와서 촬영해!” 대장금의 이병훈 감독님이셨습니다. 다음날 저는 수원행성에서 의원 옷을 입고 코에 수염을 붙이고 의원이 되었습니다. 극중 의녀들이 아니라 제가 연기자로서 실습 훈육을 받게 된 첫 촬영이었습니다. 연수기간이라 출연료는 못 받았습니다.

〈 내 이름은 김삼순〉의 맞선남 역은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1회 출연이었는데 오디션을 3번 봤습니다. 방송국 공채탤런트인데도 다른 연기자들과 같이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한 회 출연을 하고 방송이 나간 다음날 아침에 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현장 소품 스탭의 전화였습니다. “형, 지금 인터넷에 들어가 봐. 형이 실시간 검색 1위야!”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정말 맞선남이 실시간 검색 1위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제가 잘한 게 아니었습니다. 드라마가 소위 대박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대사가 더 늘어나서 2회 더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이름은 김삼순〉은 제가 공식 배우로 데뷔한 첫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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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명량〉에서 맡았던 이억기 장수 역은 역사적인 무게감이 남달랐을 텐데, 그 역할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고민한 건 무엇이었나?

공식적인 첫 상업영화 출연이었습니다. 캐스팅 디렉터가 3부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라 출연 하면 다음 작품에서도 캐스팅될 수 있다고 해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이억기 장군은 전사 당시 나이가 35세로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였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옥포, 당포, 안골포 등의 해전에서 적선을 대파하고 제해권을 잡는데 성공한 인물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옥살이를 하는 동안 통제사 원균 휘하에서 지시대로 좌익군을 지휘하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습니다. 패배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익사했다고 전해집니다.

<명량> 촬영 당시 제 나이도 35세였습니다. 그 나이에 그런 중책을 맡고 나라를 지키는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군에 대한 기록을 빼놓지 않고 공부해서 촬영장에 갔습니다. 그 전에 〈무신〉이라는 사극 드라마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촬영장의 분위기는 익숙했습니다. 분장실을 갔는데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의 나이가 많았습니다. “장군이 왜 이렇게 젊어?” 한 출연자가 말씀해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저도 모르게 아는 척을 해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습니다.

“제 나이가 35살인데 이억기 장군 전사 당시 나이와 같습니다.” 그 때는 제가 어렸습니다.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분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억기 장군 생전 모습이 아니라 전사 후 이순신 장군의 꿈에 나타나서 위험한 상황을 알려주는 씬이라 망자의 모습이 되어야 했습니다. 모든 출연자가 상처와 피투성이의 분장을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억기 장군은 기록에 스스로 물에 몸을 던져 익사했으므로 상처가 많이 있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분장사에게까지 잘난 척하는 배우로 보일까봐 일단 그냥 해 주는 대로 맡겼습니다. 분장이 다 끝나고 김한민 감독님에게 확인을 받기위해 현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김한민 감독님을 빤히 보고 있었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저를 쳐다보세요?” 감독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김한민 감독님을 시험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한참을 보시더니 분장하시는 분을 부르셨습니다. “이억기 장군은 얼굴에 피 칠갑은 지우고 물에 부풀어 있는 느낌으로 해주세요.” 역시 감독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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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김수로' 출연 당시 서성광 배우

- 조연이나 단역이라는 위치에서도 인물에 대한 책임감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작지만 강한 역할’에 접근하는 서성광 배우의 자세가 궁금하다.

저는 단역, 조연, 주연을 모두 해본 사람입니다. 모든 역할은 거기에 알맞은 연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수로’라는 사극에서는 ‘용비’라는 가야시대의 장수 역을 해야 했습니다.

첫 촬영 전에 미리 김해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김수로 왕릉을 방문해서 기운을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가야시대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해에는 가야박물관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당시 장군들이 사용한 칼과 갑옷, 말 안장, 그 밖의 무기들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유물들을 바라보며 그 기운을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김해의 산과 들에서 검을 빼서 검술을 합니다. 제가 배운 검술은 십팔반무예의 검술입니다. 가야시대에는 어떤 검술을 썼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검을 빼들고 그 지역에 남아있는 기운을 느끼며 검을 휘둘러 봅니다. 저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는 변화할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법칙을 믿습니다. 1500년이 흘렀지만 그 시절 에너지는 그곳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연을 할 때보다 비중이 작지만 강한 역할에 접근할 때가 더 어렵고 준비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에는 보통 주연배우와 주요 인물에 대한 서사는 이미 잘 만들어져 있지만 비중이 적은 역할들에 대한 묘사는 그들보다 덜 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뻔한 이미지로 연기하기보다는 나름의 서사를 만들고 장면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대사도 준비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혹시나 하고 흘려봅니다. 어떤 감독님들은 그 아이디어를 녹여내는 분들이 있고 다른 감독님들은 준비된 것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나리오를 집필한 작가와 연출을 맡은 감독보다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그 캐릭터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허락해 주면 생각지도 못한 멋진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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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될 '비를 그리다'의 영화 포스터

- 독립영화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지, 그리고 그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비를 그리다〉라는 독립장편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저는 '경운기'라는 캐릭터로 출연했으며 후반작업도 함께한 작품입니다. 독립영화제작의 진한 풍미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김형기 감독은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일 해왔고 현재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분입니다. 〈비를 그리다〉는 공식적으로 김형기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입니다.

〈비를 그리다〉는 경상남도 창녕에서 한 달 정도 숙식을 하며 촬영했습니다. 그 곳에 있던 여관은 그 지역 아파트 공사를 위해서 인부들이 많던 시절 세워진 숙박 업체였습니다. 논과 밭 한가운데 세워진 여관은 마치 〈비를 그리다〉팀을 기다려온 영화 세트장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주변의 산과 들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김형기 감독과 촬영, 조명을 맡은 박효훈 감독, 프로듀서 겸 음악 감독을 맡은 안현민 감독 외에 소수의 스텝들과 배우들이 직접 동시 녹음기를 켜고 붐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와 조명 등의 촬영 장비를 옮기고 소품을 준비하며 촬영한 작품입니다. 자신의 촬영 씬이 없을 때는 배우들이 직접 스탭이 되었습니다. 촬영을 마치면 모두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다음 날 촬영 준비를 했던 끈끈한 현장이었습니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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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를 그리다'의 한 장면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는 시절입니다. 〈비를 그리다〉는 잔잔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앞으로 배우로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서성광이라는 이름이 어떤 얼굴로 기억되길 바라나?

액션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다음 장면에서 뭐가 튀어 나올지 알 수 없는 '기대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배우 서성광과 인터뷰를 하면서 배우에 대한 기자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스크린, 혹은 TV에서 화려하게만 보이는 모습과 달리 철저하게 자신을 갈고 닦는 모습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시를 쓰는 시인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배우는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든 작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 서성광이 만드는 독립영화는 어떨지 궁금했다. 이런 배우가 있어서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 흠뻑 빠지게 된다. 배우 서성광의 연기 변신과 제작자로서의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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