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 영화 포스터
드디어 여름이다.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름이 왔음을 체감하니 좋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은 끈적끈적해지고 시원한 음료가 간절해진다.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달달달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는 오히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나를 평안하게 하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다. 어쩌면 에어컨을 들이지 않고 선풍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점점 에어컨을 좋아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해야겠다. 열대야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열대야가 이번 여름에는 며칠이 될지…. 제발 열흘은 넘지 않기를 바란다.
여름에 마시면 좋은 차들이 있다. 몸의 열을 식혀주는 차들이다. 백차, 녹차가 대표적인 여름의 차들이다. 에어컨이 있는 공간이라면 따뜻하게 마시고 선풍기가 있는 공간이라면 냉침해서 시원하게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요즘 전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말차(抹茶)가 있다. 아직 올해는 차나무를 차광 재배(遮光栽培, 햇빛을 차단해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하여 어린싹으로 만든 말차를 구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 다도에서는 입동(入冬)이 되면 풍로를 쓰다가 화로를 개시하는데 이 시기를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며 올해 딴 ‘새 찻잎’을 이 날부터 사용하기 시작한다.
아직은 작년에 만든 말차를 마시는 시기다. 이참에 꺼내서 잘하지도 못하는 격불(擊拂, 말차를 만들기 위해 차선을 빠르게 움직여 거품을 내는 것)을 해본다. 찻잎 전체를 온전히 마실 수 있는 말차. 우리가 주로 마시는, 뜨거운 물에 찻잎을 우린 후 걸러서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으로는 찻잎의 물질 중 물에 녹는 일부 수용성 성분만을 마신다. 하지만 말차는 찻잎을 갈아 찻잎의 전부를 마신다. 이 말을 입 안에서 되뇌어 볼수록 가슴이 웅장해진다. 왜 그럴까?
찻잎을 거르지 않고 거품을 내어 분말째로 마시는 방법을 점다법(點茶法)이라고 하는데, 중국 송대와 우리나라 고려 시대에 널리 쓰이던 방식이다. 일본에 말차가 전래된 것은 가마쿠라 막부 초기인 1191년으로 세 나라 중 가장 나중이었지만,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말차가 산차(散茶) 형태의 찻잎에 서서히 밀려난 반면 일본의 다도 문화는 지금까지도 말차를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의 다도 문화가 잘 그려진 영화가 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모리시타 노리코가 24년 동안 다도를 배우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간 에세이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크게 감동하지 못했다. 보다가 조금씩 졸기도 하고 끝까지 보는 것이 지루하게 여겨졌다. 영화 속 주인공 노리코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을 어릴 적에 보았을 때는 지루하게만 여겨지다가 성인이 된 후에는 ‘이 영화에 감동하지 않는다면 인생에 의미가 없다’고 말했는데 내가 딱 그렇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지금, 영화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있었다. 그 사이 내게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내가 더 성장했거나 깨달은 것은 아니었고 원작인 모리시타 노리코의 에세이를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다도 문화에 대한 책을 한 권 읽었다는 것이다. 다도 문화가 영화로만 봤을 때는 수수께끼 같았는데 원작을 읽고서는 다도 문화의 용어라든지 다도 문화의 배경 등을 알게 되니까 영화 〈일일시호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에세이에서 느낄 수 없었던, 영화만이 보여주는 장면에 감탄하기도 했다.
영화만이 보여주는 장면에 제일 감탄했던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장면은 바로 다도 선생님인 다케다 선생님이 손님들이 다 돌아간 후 홀로 커피를 핸드드립하는 장면이다. 나도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차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 그 장면 하나로 다케다 선생님이 차보다는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차보다는 커피가 더 잘 어울리는 음료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에 깊이 잠기고 싶을 때, 고독을 벗 삼고 싶을 때는 꼭 그렇지는 않지만 커피가 잘 어울린다. 차를 마시는 일은 의외로 혼자보다는 ‘여럿이’가 어울린다. 찻주전자에 담긴 차를 찻잔에 나눠 마시는 행위 자체가 함께 마신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다도 문화를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노리코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주인이 손님을 정성껏 대접할 수 있게 데마에(点前, てまえ,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일련의 절차와 동작)를 수련한다. 함께 즐기기 위한 문화인 것이다.
일본 다기구 /사진: 이은영
일본의 다도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건 언어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의 다도는 손을 움직여서 몸을 움직여서 느끼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에서 아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 1937-2014)의 설명이 마음에 든다.
“다도는 조용한 예술이다. 언어를 개입시켜 토론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얻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원래 말이 많은 세계는 아니다. 다도는 다실에서 차를 달이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그 흐름 속에서 손과 도구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대화 형태를 띠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비해 말수가 매우 적은, 말이 없는 세계다.”
영화에서 노리코와 미치코가 다도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가르치는 다도의 형식의 의미를 물을 때마다 다케다 선생님도 그러신다.
“의미는 몰라도 되고 아무튼 그렇게 해요.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다도가 그런 거예요. 차는 형식이 먼저예요. 처음에 형태를 잡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 거죠.”
다도의 봉건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해서 처음에 노리코는 반발심도 들었다. 때가 되었을 때 노리코는 선생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은 의미를 깨달아간다. 아, 나도 매주 토요일에 다도 수업을 받으러 가고 싶다. 노리코처럼 다케다 선생님한테 세심하지 못하다고 핀잔을 듣겠지만 나는 거기서 어떤 의미를 깨달아 갈지 궁금하다.
영화 스틸 컷
무언, 침묵이라고 하지만 다도에도 언어가 있다. 주인이 손님들을 향하여 던지는 주제가 도코노마(床の間, とこのま)를 통해서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실의 위쪽 바닥 한층 높게 마루가 깔려 있는 도코노마에는 벽에 족자를 걸고 계절에 맞는 꽃을 꽂아 둔 화병을 놓는다. 손님들이 다실에 입장하여 가정 먼저 도코노마를 보고 앉는다. 주인은 족자를 통해서 자신이 전하고 싶은 생각을 전하고 화병을 통해 우리가 어떤 계절을 지금 살고 있는지 전한다. 영화 속 주인공 노리코도 ‘폭포(瀑浦), 달마도, 비를 듣다(聽雨)’라는 족자를 통해 선생님의 뜻을 이해하고 온전히 그 족자의 세계에 푹 잠기는 순간들이 있다.
차 문화를 접하면서도 느꼈지만 일본의 다도 문화는 계절을 품고 있는 게 좋았다. 도코노마의 화병, 다실에서 바라보이는 정원, 그리고 화과자. 사실 더 계절을 담고 있는 차 도구들이 있지만 생략하겠다. 그러나 계절뿐만이 아니라 절기, 십이지도 품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유한한 시간 속에 살고 있음을 감각하는 것, 그래서 영화 제목처럼 매일, 매 순간이 소중해서 더 없이 좋은 날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새해의 첫 다회에서 다완을 보며 올해가 어떤 십이지에 속하는 지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새해 첫 다회에서는 그 해의 띠인 동물이 그려진 다완을 사용한다. 그러고선 넣어두었다가 12년 후에 다시 꺼내서 사용한다. 한 사람의 평생에 서너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12년 전 그 다완을 접하는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떠한지, 12년 후 나는 어떨지 시간을 가늠해 보며 과거, 현재, 미래가 지금 그 곳에 잠시 머무르는 그 순간, 찰나이지만 영원한 순간, 나는 언제 그 순간을 경험하는가?
이 영화에서 처음 다사(茶事, ちゃ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다회(茶会, さかい)와 달리 다사는 가이세키(懐石, かいせき) 요리를 먹는다. 오직 한 잔의 말차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그 전에 식사를 해서 미리 배를 채워 두기 위한 요리를 먹다니, 사실 이건 내가 그리고 있는 미래의 다도 문화였는데. 물론 형식에는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말이다.
차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페어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백반과 차를 페어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다. 일본에는 이미 그런 문화가 다도 문화를 정립한 센노 리큐(千利休, 1522-1591) 시대부터, 대략 500년 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야 이 사실을 알다니, 나에게 차의 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다케다 선생님은 다사 시간에 이런 말을 한다.
“이제껏 배운 건 다사(お茶事,おちゃじ)를 위해서였어요. 다사는 차의 완성입니다. 주인이건 손님이건 생애 한 번 뿐인 만남이라 여기고 정성껏 해야 하죠. 여러분도 정성껏 임하세요. 같은 사람들이 여러번 차를 마셔도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생애 단 한번이다’ 생각하고 임해 주세요.”
이 말을 듣고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일기일회(一期一會), 일본의 다도 문화를 체계화한 센노 리큐가 살았던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1568 -1 603), 언제 할복 명령을 받을지 모르는 야만적인 시대 속과는 다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도 이별이 있다.
영화 속에서 노리코도 갑작스럽게 아버지와 이별을 한다. 노리코가 독립 후 가족끼리 함께 모여 식사를 함께 했던 지가 까마득한데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것도 벚꽃이 만발할 때. 노리코에겐 벚꽃이 슬픈 추억이 되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어떻게 하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자신을 탓하게 된다. 정성스러운 마음을 다해도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너무 슬프로 괴로울 때 그 정성스러움이 조금은 면죄부를 줄 지도 모른다.
영화 스틸 컷
카메라는 노리코가 다회에 올 때 현관에 놓인 신발을 자주 비춘다. '우치미즈(打ち水)'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치미즈는 현관에 물을 뿌리는 행위라고 한다. 더위 해소와 심미적 효과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계절과 상관없이 우치미즈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것은 심미적 효과를 위해서가 주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을 뿌린 바닥에 햇빛이 반사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속세의 번잡함을 씻어내고, 이는 다실로 향하는 길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단장하는 행위로 이어지도록 돕는 행위였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현관에 물을 뿌리고 빗질을 하는 마음을 생각해 본다. 내 주변의 사람들, 가족,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내가 다회의 주인이 되어 정성스럽게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은 그다지 없었다. 대체로 손님이 되어 그 정성스러운 환대를 받기만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그 정성스러운 마음들을 정성스럽게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환대해 본 경험이 많지 않으니 당연하다. 환대하고 환대받는 이 두 태도가 정성스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고가도록 환대하는 마음을 더 키워보아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다짐해 본다. 어서 차를 대접해 보자.
[이은영의 작품 속 차 이야기 ⑦] 매일 매일 좋은 날 - 영화〈日日是好日〉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