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근의 미술과 술 ⑫] 박수근과 경주 교동법주

by 데일리아트

가장 한국적인 현대회화를 그린 박수근(1914-1965), 그의 그림에 대해 자세히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이름을 알 것이다.

그는 평생 가난에 시달렸고 자신의 화실조차 가지지 못했으며, 개인전은 꿈도 꾸지 못한 화가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고전이 열렸고, 작품들은 고가로 팔리기 시작했다. 박수근의 작품은 오늘날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가장 비싼 작품값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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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빨래터, 1950년대 후반, Oil on Canvas, 37X72cm

신라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생전에 경주를 자주 찾았다. 경주 남산의 석탑과 불상에 심취했던 그는 화강암의 질감을 구사해 입체감을 부조하는 그만의 포르타주 기법과 마티에르 화법을 만들어 냈다.

박수근은 술을 좋아했다. 박수근이 술을 많이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인맥, 학맥에 의해 움직이는 미술계에 좌절했기 때문이다. 그의 과음은 건강악화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51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경주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유명한 술이 있었으니 '경주 교동법주'다. 만석꾼으로 유명한 경주 최씨집안의 가양주로 원래 궁중의 술이었는데 조선 숙종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의 참봉을 지낸 최국선(1631-1682)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 경주로 돌아와 빚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이후 350년 넘게 가문 대대로 빚어오고 있다. 현재 교동법주 기능보유자인 최경은 최국선의 10세 손이며 1986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86-다' 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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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경주 최부자집 (우) 경주 교동법주

경주 최부자집은 '육연(六然)'· '육훈(六訓)'의 가훈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9대 진사, 12대 만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주최부자의 6연(然, 자신을 지키는 교훈)은
1. (자처초연: 自處超然) 몸가짐을 초연하게 하라.
2. (대인애연: 對人靄然) 다른 사람에게 온화하게 대하라.
3. (무사징연: 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하라.
4. (유사감연: 有事斬然) 일이 있을 때는 단호하게 대처하라.
5. (득의담연: 得意澹然) 뜻을 이뤘을 때 담담하게 행동하라.
6. (실의초연: 失意泰然) 실패하더라도 태연하게 행동하라.

6훈(訓, 가르침)은

1. 과거를 보되 진사(進士) 이상 하지마라.
2. 재산을 만석(萬石) 이상 모으지마라.
3.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마라.
4. 과객을 후(厚)하게 대접하라.
5. 사방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대접하라.
6.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게 대접하라.

집안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1884-1970)은 그의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제공했고 해방후에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 재산을 대구대학교 (현 영남대학교)를 설립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직접 실천했다.

경주 최부자집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하우스 오브 초이'에서는 '대몽재 1779 약주'와 '대몽재 1779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1779는 최부자집이 경주 교동에 자리 잡은 시기인 1779년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이 술을 맛보면 맛과 향과 함께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에서 양반의 술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것을 느낄 수가 있다. 새로운 경주 술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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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재 1779 약주와 막걸리

술을 좋아했던 박수근이 경주에 갈 때 마다 교동법주를 마시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대몽재를 맛봤다면 또 다른 그의 작품세계가 열리지 않았을까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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