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을 알면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어요"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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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복 선생 /사진: 안지영

"OO이 없었다면 팔만대장경도, 고구려 고분벽화도 지금처럼 원형 보관이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서 OO에 해당하는 말은? 바로 '옻칠'이다. 팔만대장경이나 고구려 고분벽화는 1천 년이 훨씬 넘은 작품들인데 '옻칠' 덕분에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되었다. 현대미술에서 사용하는 물감이 고작 50년을 못 넘기는데, 옻칠로 만든 작품은 1천 년을 넘어, 1만 년에 가까운 생명력을 유지한다.

얼마 전까지도 옻은 우리 생활에 많이 쓰였다. 여름에는 옻을 넣어 백숙을 해 먹었고, 누나 시집갈 땐 옻칠을 한 자개 장롱을 해 가기도 했다. 그뿐인가? 호롱불도 없이 캄캄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밤을 우리는 '칠흑 같은 밤'이라고도 불렀다. 다 옻과 관계된 말이다.

우리의 관심에서 옻이 서서히 물러갈 때, 조선의 옻칠 기술 하나로 일본 장인들과 겨뤄 1조 원이 넘는 프로젝트를 따낸 옻 전문가가 있다. 칠예 작가 전용복 선생, 작가의 삶은 옻을 떠나 말하기 힘들다. 제자들과 인사동 라메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칠예 작가 전용복 선생. 그의 옻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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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전용복 /사진: 안지영

- 47년 동안 옻의 세계에서 푹 빠져 살았는데 도대체 옻이 무엇이고 옻이라는 것에 어떤 매력이 있어서 오랫동안 외길 인생을 걸어온 것인가요?

옻은 우리가 흔히 아는 자개장이나 보석함에 많이 사용되지만 고려 팔만대장경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사용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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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에 상처를 내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물질이 나오는데 그것이 옻이다. /출처: 전용복옻칠예미술관

옻은 옻나무에서 뽑아낸 천연 도료로 놀랍게도 자연에 친절한 소재입니다. 도장재로 만 년을 견디는 게 있을까요?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일본 홋카이도에서 발견된 옻칠 공예품을 9,300년 전에 만들었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만 년을 버티게 하는 물질이 옻입니다.

옻은 옻나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옻에 상처를 입히면 나무는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치료제를 생성하는데 그것이 옻입니다. 고무는 흠집을 내면 내장된 고무가 나오지만, 옻은 흠집을 내면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생성되는 물질입니다.

생산되는 것도 중국, 일본, 한국 정도입니다. 동남아시아의 옻은 고무질이 많아서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20년 정도된 옻나무에서 6월에서 10월 약 100일 동안만 생산됩니다. 양도 많지도 않아요. 물컵의 3분의 1 정도입니다. 아마도 고대에 사냥을 하다가 나무의 흠에서 까맣게 보이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이리저리 활용하다가 발견한 물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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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에서 옻을 걸르면 '막걸리 색'이 된다. /출처: 전용복옻칠예미술관

원액은 막걸리 같은 색깔입니다. 이것을 열로 가열시키면 투명해지고 이 속에 컬러를 넣어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 수 있죠. 그 색깔의 화려함과 다양성은 유화가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옻으로 하는 예술은 현대 미술에서도 계속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옻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투명한 물질에 철을 넣으면 칠흑색이 됩니다. '칠흑 같은 밤'이 옻칠에서 나온 말입니다.

- 옻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옻으로 가구를 만드는 회사의 디자인 실장을 하다가 옻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옻의 특성을 알면 누구나 빠져들게 됩니다. 지구상 물질 도장제가 1만 년이 되는 것이 없어요. 옻은 인체에 굉장히 유익합니다. 옻에는 엄청난 살균력이 있어서 항암제로도 쓰입니다.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무궁무진해요. 자개 등과 어울리기도 하고 다양한 색감을 연출하기도 하죠. 심지어 먹기도 하지 않나요? 이런 아름다운 물질이 옻인데, 예술가가 미쳐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 세월이 47년입니다.

- 작가님과 관련하여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메구로가조엔(目黒雅叙園, 현 가조엔도쿄호텔) 프로젝트'인데 이것에 대해서 한 말 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붕어빵, 연탄 배달 안 해본 것이 없어요. 마침 가구 디자인 실장을 하면서 옻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메구로 가조엔 프로젝트'를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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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복 작가가 복원한 '메구로가조엔'의 내부 모습 /출처: 전용복옻칠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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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복 작가가 복원한 '메구로 가조엔'의 내부 모습 /출처:전용복옻칠예미술관

메구로 가조엔은 만화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일본 옻칠의 자부심이요, 중요 문화재입니다. 지금도 호텔로 쓰이지만 과거에는 대연회장과 국빈을 대접하는 영빈관으로 쓰인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조선 옻칠 장인들이 건너가서 우리의 기술로 세계적 명소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무려 복도의 길이가 350m나 되고 면적이 3만 평이나 되는 곳입니다. 자개와 옻으로 만든 작품들이 빼곡하죠.

1988년에 철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재건축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철거보다는 아예 그 영업장이나 연회장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했죠. 거기에 생을 걸어보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 나이가 33세였는데 그때 서둘러 대학에 들어가 일본어를 공부하고, 방학 때에 일본 현장에 가서 연구를 했습니다. 복원하는 방법을 혼자서 공부하고 또 연구하고 했어요. 그러니까 길이 보이더군요.

일본에는 옻칠 장인이 5만 명인데, 3천 명이 이 프로젝트에 응모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의 특성은 선조들에게 받은 기술은 있어도 너무 지엽적이라 한 분야밖에 모른다는 단점이 있어요. 가령 일본 47개 현에서 옻칠 기법이 다 다른데 그들은 자기 고장의 기술 밖에 모른다는 것이죠. 나는 우리나라의 옻칠 기법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방학 때마다 일본 현장에 가서 나름대로 연구한 비법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봐서 그들을 제치고, 조선의 옻칠 장인인 제가 1천만 엔(1조 원)이나 되는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엄청 고생했습니다. 100여 명의 기술자들을 데리고 가서 밤낮없이 일했죠.

일본은 '옻칠의 나라'입니다. 'JAPAN'은 일본을 가리키지만, 그것의 소문자인 'japan'은 '옻칠'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그렇게 옻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우리나라 장인에게 그 큰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 일본입니다. 저는 그 기회를 실력으로 얻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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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야마 칠예박물관 /출처: 전용복옻칠예미술관

- 일본에서 귀화하라는 것을 거부하고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와테현 모리오카 시에 내 작품 천여 점을 전시한 '이와야마(岩山) 칠예박물관'에서 8년 동안 일했어요. 그 지역 관할 관리가 제의했어요. 미술관에 재정 지원을 해야 하는데, 당신이 한국인이라서 지원하기 어려우니 귀화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단칼에 거절하고 2011년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이화여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데 소개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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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로 복원한 엘리베이터 내부모습 /사진: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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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으로 만든 작은 뮤지엄 엘리베이터 /출처: 전용복옻칠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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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으로 만든 시계 /출처: 전용복옻칠예미술관

'메구로 가조엔' 프로젝트를 할 때, 머리에 스친 것이 '스몰 뮤지엄'이라는 개념이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면 눈 돌릴 데도 없잖아요.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을 작은 예술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엘리베이터는 소방법에 따라 불에 타는 나무로는 만들 수가 없죠. 모두 철판인데 도자기 위에 옻칠한 것처럼 이것을 열로 붙이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고온 강화를 하면 절대 옻이 안 떨어지는 원리를 사용했죠.

그래서 34기 엘리베이터를 우리나라의 나전과 옻칠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철판에 자개를 붙이고 옻칠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철 위에 270도까지 열을 가하면 옻이 철판에 완벽하게 붙습니다. 이걸 응용해서 우리나라에도 엘리베이터 2,500대에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부산에 61층 쌍둥이 빌딩 엘리베이터도 전부 제가 작업을 했습니다.

- 옻칠의 활용도와 현대미술로의 확장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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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전용복 /출처: 전용복옻칠예미술관

옻이라는 물질을 알면 사람들은 감동하게 됩니다. 어떻게 나무에 상처를 내면 치유하는 것이 나오고 미술의 오브제가 될까요? 참 신기합니다. 옻은 항암제로도 쓰이고, 또 많이 먹기도 하지 않나요. 먹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신기하고 행복합니다. 나는 옻으로 세계에 공헌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서양 문화에 얼마나 많은 신세를 졌을까요. 우리도 세계에 이바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는 옻에 주목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이 제일 모릅니다.

지금은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도 합니다. 용인에 있는 '전용복옻칠예미술관'에서 제자들과 작업도 많이 하고 국내외에서 전시도 많이 합니다. 옻의 실용성을 떠나 현대미술의 세계로 옻의 우수성을 계속 확장해 가고 싶습니다.

전용복과 그 제자들이 마련한 《옻칠, 특별한 동행》전은 7월 16일 수요일부터 7월 21일 월요일까지 인사동 소재 갤러리 라메르 1층 1, 2, 3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전시 입장 및 관람은 무료다. 자세한 문의는 02)730-5454 또는 www.gallerylamer.com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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