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본 성서 이야기'는 예술 작품을 통해 성서의 교훈을 조망하는 칼럼입니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작품을 깊이 있게 사유합니다. 글을 연재하는 강은미 교수는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대학 시절, 인사동 골목의 작은 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신인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를 받곤 했다. 그중 한 작가의 도록에 적힌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의지한다. 나 또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지만, 나의 작품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
왜 작가는 작품에 자신을 의지할까? 작품이 온전하지 않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예술이 삶을 성찰하게 한다면, 신인 작가의 그 문장은 이미 예술의 목적을 이룬 셈이다. 예술가가 작품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삶은 치열한 인간 존재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구약성서 『전도서』는 인간 존재의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를 겪고난 후 인생 말년에 썼다. 그는 삶을 이렇게 정의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여기서 말하는 '헛됨(헤벨, hevel)’은 히브리어로 '안개', '수증기처럼 잡히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지혜, 쾌락, 부, 명예 조차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지혜자도 우매자도 결국은 같은 일을 당하리라.” (전도서 2:14)
이런 통찰을 예술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가 좋아하는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 아닐까? 그는 가난하고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육체적 연약함은 그에게 깊은 두려움을 남겼다. 그는 이미지, 소비, 유명세로 치장된 세계로 나아갔고 그의 삶은 화려했다. 그러나 화려함 이면에는 외로움, 인간관계의 결핍, 외모 콤플렉스, 성 정체성에 대한 억압,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클로디아 캘브가 쓴『앤디 워홀은 저장 강박증이었다』라는 책은 그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불안증세에 시달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수증 하나조차 버리지 못하고 수많은 사물을 쌓아두는 삶이었다. 클로디아 캘브는 "그것은 불안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저장한 일종의 '삶의 전시'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일상 물건, 편지, 청구서, 신문, 팬레터, 식당 영수증, 사용한 티백, 심지어는 음식물까지도 버리지 않고 철저하게 보관했다. 이 물건들은 대부분 타임 캡슐(Time Capsules)"이라는 이름으로 수천 개의 박스에 정리되어 있고, 이 중 610개는 현재 앤디 워홀 미술관(Andy Warhol Museum)에 보관되어 있다. 그의 불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런 불안은 스스로를 “감정 없는 기계”라고 정의하게 했다. 실크스크린을 통해 대량 복제된 작품은 이러한 자신의 삶을 대변한다. 그중 1962년에 발표한 〈캠벨 수프 깡통(Campbell's Soup Cans)〉을 보자.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팝아트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Andy Warhol, Campbell's Soup Cans, 1962 /출처: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작품에는 같은 크기, 같은 형식의 깡통 32개가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는 개성과 정체성이 지워진 현대인의 삶을 상징한다. 익숙한 상품이지만 예술로 제시됨으로써, 반복되는 일상과 소비의 공허함을 비추는 상징적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이야말로 전도서의 '헛됨'을 현대적 이미지로 재해석한 셈이다.
우리의 삶으로 되돌아가 보자. 자신을 포장하여 좀 더 나은 이미지로 보여지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지금 무엇을 위해 우리는 SNS 속 가짜 이미지로 살아가고 있을까? 누군가의 ‘좋아요’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여주기 위한 삶'에 사용하고 있는가?
그러나 워홀은 단지 공허한 이미지만 남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매주 미사에 참석했으며, 말년에는 경건한 삶을 더 실천하려 애썼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예술 유산이 시각예술의 발전을 위해 쓰이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산 대부분은 앤디 워홀 시각예술재단에 귀속되었다.
그가 살았던 이미지 중심의 세계는 오늘날 SNS와 닮아 있다. “누구나 15분간은 유명해질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보여지는 존재'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정조준한다.
하지만 전도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덧없고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지혜다'라고. 헛됨을 직면하면서도 삶을 놓지 않는 태도. 앤디 워홀의 예술과 전도서의 메시지는 이 점에서 서로 닿아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술로 본 성서 이야기 ①] '헛됨' -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와 『전도서』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