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36] 인조반정을 결의

by 데일리아트
3734_10941_1236.jpg

세검정 전경, 이재영 그림

3734_10942_1258.jpg

세검정 현재 모습 /사진: 이재영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이곳이 서울이 맞아?'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맞이한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성문 밖 동네', 한양 도성 밖에 10리까지를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했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계곡물이 졸졸졸 흐른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자연이 훼손되지 않았을 예전에는 얼마나 좋았을까?

버스를 타고 상명대학교 입구에서 내리면, 오른편에 고즈넉한 팔각지붕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세검정(洗劍亭)이다. 세검정이라니? 말 그대로 ‘칼을 씻는 정자’라는 뜻이다. 함께 내린 손자가 소리지른다. 아이들도 도심에 지쳐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지쳐가는 아이들도 자연에 오니 마음이 풀린 것이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은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와아~~, 세검정이다."

“그런데 칼을 씻는 정자라고요? 할아버지, 왜 정자 이름이 칼을 씻는 거예요?”

손자의 궁금증 가득한 질문, 어른들은 당연시하는 것에도 동심의 눈으로 보면 궁금한 것이 많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문득 자세를 가다듬었다. 선비가 사용하는 것이 붓이라면 칼은 무인이 사용하는 섬뜩한 도구다.

칼을 씻는다니, 무언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임진왜란이 끝났다.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한 사이, 백성들은 왜군에 의해 무참하게 죽어갔다. 국토는 유린당했다. 7년의 전쟁, 수 백년이 지났는데도 우리의 국토에는 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을 우리가 아직도 소환하는 이유는 임진왜란이 그만큼 너무 많은 희생과 상흔을 남겼기 때문이다. 선조가 죽고 즉위한 광해군은 백성들의 상처를 위로하기는 커녕 수많은 토목 공사를 통해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다. 이를 보다 못해 인조를 왕으로 옹립하자는 정변이 일어났다. 인조반정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쿠데타,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다.

인조반정 당시, 이귀·김류·심기원·김경징 같은 반정공신들이 광해군의 폐위를 결의하며 이곳에서 칼을 씻었다. 그들이 칼을 빼어 이곳 계곡에서 씻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물리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그들은 말을 타고 이곳 세검정 언덕을 넘어 창의문을 지나 서울로 진격해 들어갔다. 창의문(彰義門), 의를 현창한다는 의미이니, 그들은 정말로 의를 좇았던 것일까? 왕으로 세운 인조는 우리 역사에서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한 가장 치욕스런 왕인데.

이곳 세검정에 오면 한양으로 진격해 들어갔던 장수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러나 주변은 오래전부터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졌다. 물이 맑아 지금도 서울 도심 속에서 이만큼 누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흐르는 물소리와 바위 위에 새긴 글씨, 술 한 잔에 시 한 수가 오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3734_10944_1340.jpg

1883년 퍼시벌 로웰이 찍은 세검정 /출처: 서울 600년사

3734_10945_1422.jpg

겸재 정선, 세검정도, 18세기 종이에 담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곳의 진짜 매력은 비 오는 날 더욱 두드러 진다.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이 바위 사이를 타고 폭포처럼 쏟아질 때,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장쾌한 장면이 펼쳐진다.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도'에는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 1941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977년 지금의 정자를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겸재 정선 덕분이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 선생도 이곳을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세검정에서 제대로 놀려면 천둥치듯 계곡물이 쏟아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조용히 바위에 앉아 귀 기울이면 물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린다. 마음이 고요할수록, 자연의 소리는 더 깊게 스며든다.

세검정은 나에게도 특별한 곳이다. 1988년 연신내로 이사해서 2002년까지 광화문 근처 사무실로 출퇴근 하면서 지나다녔던 정든 구간이다. 자하문 터널을 지나 상명대학 삼거리에서 우회전, 구기터널을 지나고 불광동 연신내를 오고 가면서 4계절 변하는 자연을 감상했다. 회사 업무로 머리 아픈 날은 나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 세검정 계곡에서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식혔다. 이곳이 좋은 것은 거의 40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손자와 계곡에 발을 담그며 크게 변하지 않은 도심속 자연을 힐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3734_10943_1322.jpg

세검정 앞의 두 손자

“여름에 비 많이 오면 우리 또 와요!”

"그때도 칼이 아닌 발을 씻는 정자, 음 그럼 세족정인가?"

나는 손자들과 크게 웃었다. 큰 손자의 발을 씻는 정자란 표현이 이제는 칼의 정자가 아닌 서민의 정자가 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장마철이 되면 손자들과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옛 선비들처럼 시 한 구절을 흉내 내보는 것도, 꽤 멋진 여름의 하루가 될 테니까.

세검정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자하문 터널을 지나 상명대 입구에서 내리면 도착한다.


[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36] 인조반정을 결의하고 칼을 씻었던 곳-세검정 < 서울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응노, 화가가 아니라 간판 제작자였다고? 전북도립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