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는 ‘세상이 끝나는 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이렇게 답한다. “좋은 재료를 사서 만든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게 먹을 거예요.” 소중한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은 과연 세상의 마지막 날에도 가장 소중한 일이 될까. 함민복 시인의 시 「긍정적인 밥」을 읽다 보면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출처 : https://blog.naver.com/kinmasters/130162956280
오늘날을 기준으로 시인이 문학지에 시를 한 편 기고하면 팔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시를 한 편 완성하는 데 들인 공력에 비하면 얼마나 야박한 돈인가. 하지만 시인은 그 돈으로 20킬로그램 정도의 쌀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노래한다. 그 쌀로 지어진 밥을 생각하면 ‘마음이 금방 따뜻한 밥이 되기’ 때문이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긍정적인 밥」이 실려 있는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의 값은 만 원이다. 딱 순대국밥 한 그릇 값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겸허하게 고백한다.
시인의 시가 한 권의 시집이 되기 위해서는 수년간 써온 시들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시인은 한 편 한 편 각고의 노력으로 심혈을 기울여 시작(詩作)을 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노력의 정수(精髓)인 자신의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면 족하다고 노래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긍정적인 밥」을 읽다가 나의 젊은 날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밥 한 그릇’을 선물해주셨던 분이 떠올랐다. 그는 대학 1학년 어느 봄날 캠퍼스를 홀로 거닐던 나를 ‘낚았던(fishing)’ 혜숙 선배였다. 그날부터 나는 UBF(대학생경읽기선교회)라는 단체에서 4년 동안 목자인 혜숙 선배의 양이 되어 일대일 성경공부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공부를 하고 난 뒤에 혜숙 선배는 내게 꼬박꼬박 밥을 사주었다. 강남 고속터미널역 일본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넉넉지 않은 돈으로 선배는 나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꼬박꼬박 밥을 사주었다. 두세 시간씩 성경공부를 하는 동안 선배가 내게 쏟아부어 주었던 영혼의 사랑을 나는 잊지 못한다. 성경공부를 마친 뒤 출출하던 배를 수백 번이나 채워주었던 밥의 사랑을 나는 더욱 잊지 못한다. 센터 근처의 식당에서 먹었던 순두부찌개와 김치찌개, 된장찌개, 칼국수, 냉면, 떡만두국 같은 음식들을….
그중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밥이 있다. 그것은 선배와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먹은 밥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입대하여 방위 생활을 하던 때였다. 혜숙 선배는 한 해 전 결혼하여 미국으로 선교사 파송을 나갔었다. 스물다섯이던 그해 여름은 내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나이 어린 고참들과 동사무소 방위 생활을 하는 것엔 어느 정도 적응한 때였다. 두 해전 위암에 걸리셨던 아버지의 암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항상 집안에 맴돌았다.
그 여름에 나는 UBF 센터에서 선배를 다시 만났다. 누군가의 선교사 파송 예배가 있던 날이었는데 마침 선배도 잠시 귀국한 때였다. 예배를 마친 뒤 혜숙 선배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선배 일행을 따라갔다. 선배의 언니와 지인 두세 명도 함께 갔다. 혜숙 선배의 언니는 선배와 달리 화려함을 추구하는 멋쟁이에 직설적인 성격이었다.
그날도 나는 혜숙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일 년 반 전 발령을 받고 한 해 동안 교사 노릇을 했던 나는 그날도 밥값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발병으로 가세가 기울어져 있긴 했지만, 나는 어엿한 교육공무원 신분이었고 주머니엔 밥값을 낼 돈도 있었다. 그날 나는 왜 밥값을 내지 않았을까.
밥을 먹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누군가로부터 모욕적인 시선이 날아오는 걸 느꼈다. 돌아보니 선배의 언니가 나를 향해 경멸의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4년 동안 내 동생이 피땀 흘려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밥을 사 먹였는데, 저 인간은 교사가 됐으면서도 밥값 한 번 안 내는구나’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모욕을 받을 만했다. 하지만 혜숙 선배는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선배는 그 순간에도 나를 향해 어질고 환한 웃음을 건네고 있었다. 언니의 까칠하고 공격적인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과 내가 심한 자책감을 느끼고 있는 걸 다 알고 있는 웃음이었다. 분노의 화살을 내쏘고 있는 언니를 재미있어하면서도 그 화살에 찔려 고통받고 있는 나를 안쓰러워하는 웃음이기도 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일본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 달째 손님이 한 명도 없던 어느 날 토미라는 청년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일본 매니아였던 토미에게 사치에는 커피를 무료로 줄 뿐만 아니라 첫 손님이라는 이유로 평생 커피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기까지 한다. 그 후 토미는 손님이 없는 식당에 꼬박꼬박 찾아와서 커피를 얻어 마시고 돌아간다.
출처 : https://blog.naver.com/kinmasters/130162956280
얼마 뒤 카모메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 된 미도리의 눈에는 그런 토미가 얄밉기만 하다. 하지만 사치에는 날마다 기쁜 마음으로 토미를 환대하며 정성껏 커피를 내려준다. 미도리의 눈에 보이는 토미의 모습에서 나는 혜숙 선배 언니의 눈에 보였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반면에 사치에의 시선은 혜숙 선배와 닮았다. 내가 교사가 된 후에도 한결같이 아끼고 보살펴줘야 할 ‘양’으로 대해줬던 선배처럼, 사치에는 변치 않는 호의와 환대로 첫 손님 토미를 맞아준다.
파리만 날리는 식당이 걱정되던 미도리는 일본인 여행객들 대상의 관광안내책자에 광고라도 내자고 제안한다. 사치에는 미도리에게 카모메 식당은 그런 레스토랑이 아니라며 ‘동네에서 지나가다 들어와 맛있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라고 말한다. 사치에는 자신의 음식이 ‘세상이 끝나는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이 되기를 꿈꾸는 식당 주인이다. 못내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미도리에게 사치에는 ‘열심히 해봐도 안 되면 문 닫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사치에는 먼 이국땅 핀란드까지 와서 그런 식당을 연 것이었을까. 그것은 핀란드인들이 ‘소박해도 맛있는 음식을 왠지 알아줄 것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에어 기타 대회’라는 이상한 대회(줄 없는 기타로 연주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을 뽑는)에 열광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내 업고 달리기, 핸드폰 멀리 던지기, 사우나에서 오래 참기 대회에 열광하는 사람들.
출처 : 아트인사이트
카모메 식당의 주메뉴는 ‘오니기리’라고 하는 주먹밥이었다. 사치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자랐다. 그런데 운동회날이나 소풍날에는 아버지가 딸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주셨다. “오니기리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게 맛있다”고 하시면서. 연어와 매실, 마른 생선이 들어간 주먹밥 세 개였지만 사치에에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울푸드였다.
하지만 핀란드 사람들에게 오니기리는 ‘낯선 음식’일 뿐이었다. 여전히 파리만 날리던 어느 날 사치에는 토미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것은 커피와 어울리는 시나몬 롤빵이었다. 시나몬 롤빵이 맛있게 구워지는 냄새에 이끌린 동네 아줌마 세 명이 카모메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마침내 ‘진정한 첫 손님’이자 단골이 생긴다. 이어서 카모메 식당은 연어구이 샐러드와 생선구이, 채소절임, 연두부 등 핀란드 현지인들에게 ‘맛있는 한 끼’를 제공하면서 손님들을 끌어당기며 동네 식당으로 자리 잡는다. 결국 손님 없는 식당에 날마다 찾아와 공짜 커피를 먹고 간 토미를 통해 돌파구를 찾은 셈이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ncharisma7/221108987241
시집이 한 권 팔리면 /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 박리다 싶다가도 /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대학 시절 혜숙 선배는 나를 만날 때마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 한 끼의 밥을 먹여 주었다. 대가 없이 베푸는 한 끼의 밥은 상대에게 푸른 바다처럼 ‘긍정적인 밥’이 된다. 방위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나는 혜숙 선배가 생각날 때마다 센터로 연락을 해보았다. 그때마다 선배는 외국에서 선교 중이거나 지방에 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내가 얼마나 선배에게 밥을 사고 싶었는지 혜숙 선배는 영영 모르게 될 것 같았다.
선배와 마지막 점심을 먹던 날 밥값을 내지 않았던 일은 두고두고 스스로에게 의문으로 남았다. 나는 그날 혜숙 선배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스물여섯이나 되었고 교사로 발령도 받은 상태였지만 내 마음은 집안에 드리워져 있던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려 있었다. 막막한 두려움에 지칠 대로 지쳤던 나는 선배의 품 안에서 한없이 쉬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다 헤아려 주었던 선배의 웃음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몇 해 전, 대학 때 함께 UBF에 몸담았던 선배가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전근을 왔다. 그분에게 혜숙 선배가 다니는 교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해 보았다. 교회로부터 선배가 등록된 교인임에도 연락처를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마도 선배는 과거 인연들과의 재회를 원치 않는 듯했다. 선배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눈 것이었고 후회 없이 베푼 것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배에게 진 빚은 내 의식에 숙제처럼 깊이 각인되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밥을 사는 일이었다. 담임을 맡았을 때 나는 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밥을 사주는 교사가 되었다. 친한 아이들끼리 날짜를 정하게 하면 두세 명에서 대여섯 명씩 그룹을 이뤘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아이들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내겐 삼십여 년 전 담임을 맡았던 장애인 제자가 있다. 십여 년 후 옮긴 교회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혜숙 선배처럼 가능한 자주 밥을 사주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노력을 해도 혜숙 선배에게 진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대가 없이 밥을 사는 일은 소금처럼 바다처럼 세상을 푸르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카모메 식당을 연 이유에 대해 사치에는 “여기라면 나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핀란드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사람들’, ‘쓸 데 없는 일에 열 올리지 않고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로 표현된다. 사치에가 느끼기에 핀란드 사회는 소중한 사람과 한 끼의 밥을 나눌 줄 아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곳이었다. ‘긍정적인 밥’을 연상케 하는 핀란드적인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책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서 박연준은 핀란드를 여행하며 느낀 것 두 가지를 ‘자연스러움’과 ‘타인의 대한 무관심’이라고 꼽는다. 그가 헬싱키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유행과 무관한 옷을 편하게 입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라면 뚱뚱하다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몸집의 여성이 레깅스에 재킷 하나를 걸쳐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박연준은 자기다움으로 충만해 보였던 그들이 멋지고 근사해 보였다고 말한다.
소중한 사람과 밥 한 끼를 나누는 일만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삶. 실제로 그런 삶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마음이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체면이나 겉치레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질 때 누릴 수 있는 축복일 것이다.
[손병일의 문학과 영화 넘나들기 ②] 세상의 마지막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 < 영화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