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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산수화를 재창조하는 작가 - 홍자영 (1)

[청년 작가 열전 ⑧]

관점의 변화로 놀이 공간을 만드는 작가
홍자영 작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이 자연과의 조화이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겠는가? 아무리 사람들의 솜씨가 뛰어나고 심미안이 발달한다 해도 사시사철 변하는 계절과 그 계절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과 어우러진 괴석, 옥빛 물결 찬란한 계곡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예술은 어쩌면 저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 짓고 살면서도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담벼락을 낮게 둘러 외부 자연의 풍광을 즐기려했던 우리 선조들. 차경이라 했다. 집 밖의 경치를 불러와 인공물과 조화롭게 하려는 선조들의 지혜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평면 속에서만 존재할까? 수많은 자연을 평면적 산수화에서 그려내었지만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자연은 입체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평면의 풍광을 입체화 시킬 수는 없을까? 다시 재생한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참으로 재미있는 상상이다. 그뿐만 아니다. 작품에 공간성을 확보하여 그 공간 너머의 아름다움을 작품과 조화시키려는 작가가 있다. 이런 상상을 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홍자영 작가를 만난다.

3walls , 2025, 갤러리 175 설치 전경

-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관점의 변화를 이용해  놀이 공간을 만드는 작가 홍자영입니다. 저는 언제나 관점을 이용한 재미의 주체가 되기를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 관람자와 대상의 사이에 있는 ‘프레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바라보는 행위를 인지하게 하고 그것을 매개로 하는 모든 종류의 것들입니다. 즉, 프레임의 변화를 즐기는 것입니다.  관점의 자유로운 변형과 이동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제가 만든 창작물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각자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펼쳐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The Gate of Wind and Water, 2023, 타일에 왁스드로잉, 색소, 아크릴, 40×40 (12), 200×160cm

- 회화나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자신이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 그리고 학창 시절에 대해 얘기해 달라.


저는 여행을 가면 항상 망원경을 가지고  경치를 보는데요. 처음 망원경을 산 건 19살 때였어요. 사자마자 가장 먼저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달을 봤어요. 배율이 좋은 게 아니라서 그저 육안으로도 볼 수있는 달을 조금 크고 선명하게 볼 수 있을 뿐이었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시선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어요. 그것은 나중에 광학줌캠코더를 손에 쥐었을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거리를 눈으로 다가가 그 사이의 공간을 나의 상상으로 채우는 재미. 풍경화를 볼 때 납작한 물감의 결 속에서 거대한 산맥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는 것처럼, 몸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이때의 감각을 나누고 싶어서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바라볼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저만의 놀이를 즐기다 보니 지금까지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Beyond Landscape, 2022, 자작나무 합판에 왁스, 100×90x2.4cm

- 작품을 보면 우리나라의 산수 작품이나 중국의 그림들에도 조예가 깊어 보인다. 산수화나 고전적인 작품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나? 그리고 그것을 작품으로 연계시키려는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점에 따라 변하는 유동성의 학문인 동양철학과 동양화로 뻗어갔습니다. 산수화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는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 더 중요하거든요. 다 관점이 한 장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보니 그린 이가 어떤 것을 경험했고 주변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선인들의 사유 체계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이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이 아닐까요? 미술은 그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본래 미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볼 수 없는 것을 가시화하면서 마법적이고 주술적인 힘을 목표로 했잖아요. 산수화도 어쩌면 이런 목적으로 실내 공간에 새로운 공간을 들이기 위해 생겨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옛날 선비들 사이에는 와유(臥游) 문화라는 게 있었대요. '와유'는 누워서 노닌다는 뜻이에요. 몸이 노쇠하여 더 이상 유람을 할 수 없는 이들이 누워서 눈으로 여행을 다닌 거죠. 눈앞에 있는 것을 통해 머릿속의 상상의 시공간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마법의 영역처럼 느껴졌어요.

"기암괴석"(2022)과 "호"(2022) 앞에서


- 젊은 작가가 전통 문화에 대해 연구히고 자신의 작업으로 연계한다는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 우리나라와 외국 문화의 가장 큰 차별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사실 차별성보다는 공통점을 찾는 태도로 접근합니다. 최근에 화두가 되는 신유물론이나 양자역학, 이런 것이 어찌 보면 동양철학에서는 당연한 개념이었는데 서구에서는 이제 막 새로운 것처럼 다루는 게 흥미로웠어요.


개인이 수집한 컬렉션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사설 박물관이나 앤틱 컬렉터의 집을 방문하고 그것을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을 하기도 했었어요. 사람들이 사물과 시간을 보내며 갖게 된 에피소드를 듣는 것이 즐거웠거든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의 쓰임을 상상하고 자기 방식대로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고 그것을 통해 과거와 지금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서 제가 한국 고미술품에서 주목한 것은 소박하고 얼핏 보기에 대충 만든 듯한 미감인데, 잘 가다가도 '에잇' 하면서 살짝 트는 느낌이랄까요. 비정형적이고 비대칭적인 미가 있어요. 아무래도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느낌을 내려고 사람이 개입한 흔적을 지우려고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거기서 일종의 유머와 해학이 느껴져서 참 재밌었어요.그런 미감과 철학이 저와 너무 잘 맞아요.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허접하고 귀여운 짤을 좋아하는 것처럼 당시에도 그런 감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 옛 작품과 현대 미술과의 접목이 무척 흥미롭다. 결국 이런 활동을 통해서 작가는 무엇을 알리고자 하는가?

중국 화가 범관의 "계산행려도"


3D로 스캔하여 흙으로 본을 뜬다.


완성된 작품 "산수 조각"

제가 최근에 했던 작업 <산수조각(山水彫刻)>은 북송 시대 대표적 산수화인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를 보고 모래로 모델링하여 이를 3D 스캔 프린트한 작업이에요. 산수화는 처음에 얼핏 보면 어느 전망 좋은 곳에 앉아서 쭉 그려 나간 그림 같아 보이지만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이 섞인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를 다시 입체화 하려고 하니 절대 그대로 옮길 수 없었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저의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어요.


저는 그래서 <계산행려도> 같아 보이되 그림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직접 경험했던 비슷한 풍경을 머릿속에 불러 와서 만들었어요. 다양한 시점뿐만 아니라 장소, 시간도 들어가 있는 거죠. 이전에는 조선 시대나 신라 시대에 연희와 관련된 사료를 기반으로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시차와 계승의 단절로 인해 생긴 공백을 마음껏 저의 상상으로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옛날 사료나 유물을 참고하는 가장 큰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자경전 괴석 받침 위에 "계산행려도"를 스캔한 산수 조각을 올려 놓은 작품

- 자경전의 괴석 받침을 작품의 모티프로 가져왔다고 했는데 고궁을 자주 가는가? 자경전 괴석 작품을 왜 작품화 했는지 궁금하다.


작년에 조각 모음 전시를 앞두고 조각을 위한 좌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인터넷 서칭을 하다가 문화재 사이트에서 자경전 터 괴석 받침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석물과 달리 왜 위에 괴석이 없는지 궁금했고, 일단 실제로 봐야겠다는 생각에 창경궁으로 가서 물어물어 찾아 갔어요. 비가 내린 날이어서 안에 물이 고여 있었는데 거기에 비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걸 그대로 구현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쓰임을 잃은 물건을 데이터 기술로 색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사용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오요. 핸드폰으로 직접 스캔한 데이터를 가지고 스티로폼을 cnc 조각해서, 왁스를 발라 물을 담고 위에 괴석을 올린 작품입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홍자영(b.1995)


학력 


2019 미술원 조형예술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


주요 전시


2023 조각 모음, 문래예술공장, 서울


2022 Peer to Peer, 온수공간, 서울 무위로 살아가는 방법,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21 시리얼즈(Serials),레인보우큐브갤러리, 서울 peer to peer,토포하우스, 서울 3walls, gallery 175, 서울


2020  성남 공공미술 프로젝트 : [팝업아트 성남] /성남문화예술교육센터 0.5≤x≤A (0.5와 A를 포함하는 모든 가능성 x), 을지로 오브of, 서울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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