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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발굴! 독립영화감독] '벙커2' 유지은 감독

문화일반

독립영화감독을 찾아서


이제는 영상의 시대다. 천 마디의 말이나 잘 쓰여진 문장보다. 한 장의 그림이 더 소구하는 시대다. 움직이는 미술이라고 부르는 영화는 더 말해 무엇하랴? 천만 관객이 쉽게 넘어가는 시대, 국민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영화를 관람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데일리아트는 문화의 선봉에 있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미 이수정 칼럼니스트를 통해 "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을 소개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런 영상의 시대에 한 발 더 나아가 영화계의 한 모퉁이를 지키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다. 독립영화 감독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쪽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는지.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들어본다. 이들을 알리는 이유는 이들이 우리나라의 영화계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금광에서 원석을 발굴하듯 보석같이 빛나는 감독들을 만난다. 오늘의 첫 순서는 유지은 감독이다. 메일과 유선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편집자 주

촬영장에서 유지은 감독

- "발굴! 독립영화 감독 " 첫 순서로 유지은 감독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올해 40을 10년 전에 넘은 독립영화 감독 유지은입니다. 몇 년 전 한 영화 시상식을 보며 '중년의 여성 영화감독'에 대한 나의 모습을  그리게되었습니다.


2019년은 유난히 여성 영화인들이 주목받는 한해였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은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에서  '여자 나이 46세에 영화를 공부하겠다'며 영상원에 들어갔던 이야기했습니다. 쟁쟁한 중견 남성들을 제치고 수상한 감독도 영화 <벌새>의 김보라 였습니다.  여배우 강말금도 같은 무대에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신인 여배우상을 받았는데. 그녀도 나이 마흔 셋,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이 감독 역시 김초희 여성 감독이었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82년생 김지영>, <벌새> 모두 여성 영화인이 만들었고 한국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조명을 한 영화였습니다. 생방송을 지켜보던 저도 40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그들이 영화인의 길을 걷는 무모함에 저도 도전을 받아 영화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대원불교문화상 작품상 수상(오른쪽 세 번째 유지은 감독)

- 오늘은 처음 순서이니 독립영화에 대해서 개괄적인 설명 바란다.


한국 독립영화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회적인 문제 의식을 담고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던 소규모 영화 집단에서 발전되었습니다. 주로 대학 영화 동아리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던 것이 '90년대 영화 아카데미' 출신들의 졸업 단편 작품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부흥기를 주도했던 걸출한 상업영화 감독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에는 서울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이 시작되어 독립 영화인에게 장을 마련해 주었고, 8mm, 6mm 비디오 시대가 열리며 누구나 영화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자유로운 발상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상업영화는 멀티플렉스와 OTT라는 두 자본의 플랫폼 위에 경쟁하고 있다면, 독립영화는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어 독립영화 상영관과 작은 영화관 같은 소규모의 배급 라인 운영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정책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빠와 어린 시절

- 유지은 감독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궁금하다. 더불어 유지은 감독은 ccm작곡도 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영화라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무엇인가?


저의 영화의 길은 영화광이신 아빠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70, 80년대의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화 감독이 꿈이었던 아버지는 젊었을 때 본인이 사진을 찍고 직접 암실에서 현상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직접 만화를 그릴 정도로 영화, 영상, 사진을 좋아하셨습니다. 아마 지금 태어나셨더라면 그 꿈을 영화 동아리 같은 데에서 풀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형편에도 '얼리 어답터'였습니다. 집에 비디오 시스템을 갖춰 놓고 주말마다 상영하는 명작 영화를 신문 편성표에 줄을 그어가며 시청했습니다. 영화를 녹화하여 수십 번 돌려보고, 식구들 앞에서 감상 소감을 설파하던 아빠의 영화 사랑이 저를 영화로 이끌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벙커2"의 모티브가 된 아빠의 베트남전 당시 사진(맨오른쪽)

<벤허>, <십계>와 같은 대작부터 우디 앨런 같은 독특한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뭔지도 모르고 보며 미취학 아동기를 보냈습니다. 언젠가는 오지나 전쟁터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으시다던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직업'이라던 은행원으로 정년퇴직 하셨습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만 하며 살아온 아빠의 이루지 못한 영화의 꿈을 제가 대신 이어가는 것으로 보답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벙커2" 타이틀

저는 98년에 대학을 졸업해서 작은 비영리단체의 월간지에서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세상 경험이  없는 사회 초년생이 뭔가 아는 듯이 글을 쓰고 책을 펴낸다는 것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 때 제가 가장 잘하는 음악의 길을 다시 걸을까 생각도 했지만, 음악보다 더 종합적인 예술 언어를 구사하는 영화에 매력을 느껴 서울예대 영화제작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그리고 수입 구조와 노동법의 체계가 열악했던 영화사보다는 형편이 나은 방송 제작사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방송의 생리가 저의 적성에 딱 맞아 꿈의 직업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야근과 노무에 시달리며 영혼을 파는 불나방 같은 30대를 달리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죠. 결국 몸도 맘도 모두 소진된 채로 가죽만 남은 40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벙커2" 스틸 사진

이제는 다시 나를 찾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느린 걸음을 걷던 중 우연히 동국대학교에서 영화 학위과정을 만나게 되었어요. 적당히 학점이나 따서 교직 이수해서 영화 선생님이나 하며 노후를 보내야겠다던 생각과 달리 밤새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 현장에서 영화를 찍고 있더라고요. 첫 영화 <벙커2>에 온 시간과 돈과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방송에서 소모되던 느낌과 다르게 작품에 대한 애정과 스탭들과의 의미 있는 소통으로 40을 넘은 아줌마의 인생 한 자락이 묵직하게 채워지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이어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또 한 번의 단편과 장편영화를 만들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벙커로 들어가는 최 노인

https://youtu.be/thammrtAefE?si=vIRGLkbcYRtb7Eeo


- 왜 작품 제목이 <벙커2>인가? <벙커 1>도 찍었나?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최 노인은 세상과의 문을 닫고 자신만의 벙커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편견과 이데올로기의 망상에 갇혀 사는 최 노인에게 벙커 제작은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을것이라 생각했다. 한번의 실패를 딛고 더 견고한 두 번째 벙커를 지었을 거라 생각했다.

벙커 내부 촬영 현장

- 굉장히 이념성이 짙은 영화이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대부분의 관객은 이 영화가 전쟁의 트라우마와 망상에 빠진 불쌍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트라우마를 겪은 최 노인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선택했는가이다. 최 노인은 편견과 혐오를 선택했고, 이념적인 적을 만들어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을 지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이데올로기의 망상에 빠져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들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최 노인처럼 옆집에 사는 평범한 이웃이며, 누군가의 희생적인 아버지이며, 뜻하지 않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최 노인은 베트남전에서 폭파 전문가였으며, 이후 한국화약주식회사에 재직하며 훗날에 치를 대사를 철저하게 준비해온 인물이라고 설정했다.


-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한 장면은?


벙커에 침입한 쥐를 보고 베트남어로 "이 쥐새끼같은 베트콩 빨갱이들”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일부러 번역을 달지 않았다. 최노인에게 반드시 없애야만 하는 혐오스런 존재를 쥐새끼에게 투사한 장면인데, 번역을 하면 너무 직접적일 것 같아 뉘앙스로만 전달하려 하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우회적이었는지 대부분의 관객들이 캐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극중 최 노인 방에 붙은 화약 설계도

- 영화의 에피소드 한 가지만 이야기 해 달라.


에피소드라기보다는 벙커의 외관과 내부를 구현하는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원래는 땅속으로 꺼지듯이 바닥에 문을 열고 기어들어가는 기괴한 모습을 상상했지만, 막상 사람이 들어갈 만큼 땅을 깊이 파는게 쉽지 않았다. 살면서 가장 많은 삽질을 해본 경험이었다. 아무리 파도 사람 머리가 나올 정도가 한계였다. 결국 참호 같은 형태로 지면에서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입구라는 설정으로 바꾸어 나무를 짜서 직접 못질해서 입구를 제작하여 땅에 심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결과는 만족했다.


(뒤이어 2편이 게재 됩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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