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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세 번째 시연, "나는 심플하다 - 장욱진" 참관기

[길 위의 미술관]

 나는 장욱진의 함박웃음이 좋다. 처음 장욱진을 사진으로 접하면서 든 생각이었다. 그의 작품도 그 웃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마냥 간결하고 동화적인 그림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번 [길 위의 미술관] 시연 답사로 장욱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늦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채비하고 나섰다.


 비가 내리려는지 오전부터 습한 느낌이다. 아직은 햇님이 이글거리기 전, 오전 10시쯤 한성희 선생님을 4호선 한성대입구에서 만났다.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해서 10여 분만에 첫 번째 목적지인 최순우옛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를 집필했던 곳이다. 문을 걸어 잠그니 이곳이 깊은 산속과 같다는 최순우의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의 현판 글귀와 딱 들어맞는 공간이다. 장욱진과 최순우와의 인연은 장욱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부터란다. 둘 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모양이다. 그나마 나이도 한 살터울이다. 둘 간의 우정은 어림짐작이 되었다. ㅁ자형 한옥의 정취, 중정과 후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하며 개인적으로는 장욱진의 공간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최순우옛집 후원에서 한성희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

우리는 동그랗게 후원에 둘러앉았다. 장욱진 해설의 시연을 맡은 한성희 선생님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전시회나 미술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회화의 이야기를 해설하는 현장 미술사가이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픈 한성희 선생님의 자상한 설명에 듣고 있는 우리도 장욱진의 작품에 빠져 덕소, 명륜동, 수안보를 부지런히 오가며 조그만 캔버스의 나무, 집, 가족, 새, 검정 개, 산, 구름을 탐닉했다. 전통적 소재로 단순하게 그려진 대상이은 그야말로 주인공이 아닌 것이 없다. 심플함이 좋다던 장욱진의 그림은 더 덜어낼 수 없을 정도로 도상 몇 개가 그림의 전부다. 손바닥으로도 가려지는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에 담긴 응집된 힘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차고도 넘친다.


세속을 초월한 천생 화가로 그림에만 몰두한 탓에 진진묘(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는 그가 등 돌린 소위 먹고살기 위한 노력을 오롯이 혼자의 몫으로 감내해야 했다. 이순경 여사는 6.25 직후인 1953년부터 ‘동양서림’이라는 책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이런 아내가 있었기에 장욱진이 있었지. 항상 훌륭한 예술가의 아내라는 자리는 그의 뮤즈로 혹은 돈벌이 못하는 남편을 대신하는 악착 같은 아내로 그렇게 평가되어 온 것 같다. 이순경 여사의 이런 헌신은 장욱진에게는 보살이나 부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내를 향한 마음을 담은 <진진묘>가 탄생된 배경일 것이다.

동양서림 앞 큰 나무들이 서있는 거리

 동양서림 앞에는 큰 나무 서너 그루가 위용을 뽐내며 서있다. 명지대 이태호 교수님께서 이 나무들이 분명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무일 거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났다. 장욱진이 새벽마다 산책했다는 그 길을 따라 걸어봤다. 매일 마주했을 나무와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가며 걸으니 스치는 바람이 왠지 짜릿했다.


 이어지는 한성희 선생님의 안내로 이동한 장소는 어느 부동산 사무실이었다. 그림 말고는 술이 전부라 했던 장욱진이 단골로 다니던 술집 ‘공주집’ 자리였다. 다음 몇 개의 건물을 지나 명륜동 옛집 터라 소개해주신 주택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장욱진의 흔적은 어느 곳에도 없다. 하다 못해 표지석조차도 없었다.

[명륜동 집터, 현재 근린 상가로 이용 중]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

몇 해전 업무 차 양주를 다녀올 일이 생겼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초행길이라 혹시나 길을 잘못 들까 싶어 네비에 시선을 반은 두고 구불구불한 길을 라인까지 맞춰가며 운전에 집중했더랬다. 얼만큼이나 갔는지 '장욱진미술관'이라는 하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깐 쉬었다 가기로 결심하고 미술관에 들어섰다. 당시는 장욱진이라는 화가를 이름 정도 안다고 할 수 있을 그런 시기였다. 별 기대 없이 들어선 미술관에 갑자기 조각들이 가득한 공원의 풍경이 펼쳐졌다. 미술관에 이런 공원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으니 뭔가 선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넓디넓은 녹색 공간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하얗고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미술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매끈하고 차가운 미래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시장 안은 온통 전통적인 느낌의 소박하고 동화 같은 그림들로 가득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따뜻한 감성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으로 명륜동의 장욱진 공간을 기대했는데 양주의 번듯한 미술관을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더하다.

[명륜동 집 터 바로 옆 한옥 건물, 현재 음식점으로 이용 중]

 바로 옆 건물은 그 시절부터 있었을 법한 멋스러운 한옥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현재 식당으로 운영 중이다. 그 한옥을 보면서 장욱진의 추억 공간으로 욕심이 생기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듯 싶다. 최순우옛집을 지켜낸 내셔널 트러스트처럼 뜻이 있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명륜동 시절의 장욱진을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더불어 한성희 선생님의 애정을 담은 해설과 안내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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