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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18. 2024

을지로 떠난 '을지면옥' 종로 시대 연다

[유성호의 미각여행]

막바지 공사 한창…재개발 철거로 문 닫은 지 2년 만


겨울도 다 가고 여름도 아닌데 무슨 평양냉면 이야기를 들고나오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게다가 영업도 시작하지 않은 식당인데 말이다. 그런데 을지면옥이 2년 만에 이전 개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을지면옥 재오픈 소식은 문을 닫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요 일간지서 다룰 정도의 큰 이슈다.


그만큼 평양냉면 애호가들에게는 성지였던 을지면옥이 재개발에 등 떠밀려 철거된 후 어디에 새 둥지를 틀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을지면옥이 을지로를 떠난 지 2년 만에 종로 한복판인 낙원동에 똬리를 틀었다. 필자는 이 소식을 페이스북과 일간지 칼럼란을 통해 가장 먼저 알렸다. 개인적으로 평양냉면 마니아라서 늘 관심을 두고 있던 사안이었기 때문에 레이더를 켜둔 덕이다.


2년이란 세월은 평냉 애호가들의 기억에서 을지면옥이 서서히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특히 을지면옥은 중구 필동의 필동면옥과 서초구 잠원동 의정부평양면옥(본가에서 의정부로 변경)이란 같은 계열의 확실한 대체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철옹성 같았던 노포 위주의 평양냉면 시장이 2000년대 들어 신흥 면옥들의 활발한 진출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상황이라 을지면옥의 2년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평냉 마니아들 “왕의 귀환” 환호

의정부 평양면옥 둘째 딸이 손맛을 이어받아 서울서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의 평양물냉면과 제육. [필자 제공]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극명한 음식 중 하나라서 마니아층이 각기 선호하는 면옥이 분명하다. 때문에 오래된 면옥들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가운데 신흥 면옥들은 새로운 고객층을 넓혀 갔다. 결과적으로 평양냉면을 즐기는 식객층이 두터워졌고 면옥마다 자랑하는 맛의 특징도 분명해졌다.


그러던 중 불쑥 종로 한복판인 낙원동 종로세무서 근처에 을지면옥이 간판을 내걸자 이곳을 지나던 냉면 애호가들이 쾌재를 불렀다. 이 소식은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 퍼져 나가는 상황이다. 온라인에서 소식을 접한 이들의 반응 또한 뜨겁다. ‘왕의 귀환’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시행사와의 보상금 문제로 치른 지루한 송사가 끝나고 건물을 비워야 하자 을지면옥 이병철 대표는 물밑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 부지런히 이전할 곳을 물색했을 것이다. 이 대표는 2022년 6월25일 마지막 영업을 하고 문을 닫은 후 석 달 만인 9월22일 종로세무서 옆 옛 제일빌딩을 사들였다.


종로세무서 근처 건물 112억 원에 매입

종로구 낙원동에서 재개업을 준비 중인 을지면옥.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간판손글씨체 ‘을지면옥’을 따서 아크릴 간판을 달았다.[필자 제공]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종로구 삼일대로 30길 12(낙원동 55-1 외 1필지)에 위치한 지하 1층에 지상 5층짜리 빌딩의 매입가는 112억 원이다. 공교롭게도 빌딩이 건축된 해가 1985년으로 을지면옥이 개업한 연도와 같다. 옛 을지면옥 자리에서 불과 1㎞ 떨어진 거리라 정서적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지만 일단 간판을 달았다. 간판 서체는 과거 입구에 소박하게 쓰여 있던 간판 손 글씨체에서 따와 아크릴로 만들어 내걸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식당 입구 등 주변 정리가 남은 상태다. 이르면 4월 경에 시원한 냉면 육수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늦어도 더위가 시작되기 전엔 문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을지면옥은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 원조인 평양면옥의 둘째 딸이 차린 2대 손맛을 잇는 점포다. 첫째 딸은 중구 필동에 필동면옥을 개업했고 셋째 딸은 서초구 잠원동에 의정부평양면옥 강남점(구 본가 평양면옥)을 열었다.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의 특징은 소와 돼지고기로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얹으면서 송송 썬 대파와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것이다. 냉면 사진만 봐도 의정부 계열 냉면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평냉 마니아들에게 익숙한 선육후면(수육과 소주 한잔 먼저 먹고 냉면으로 마무리)과 관련 을지면옥 제육을 기막힌 술안주로 만드는 특별한 레시피가 있다. 빈 냉면 그릇을 하나 달라고 해서 제육을 한 접시를 쏟아붓고 무김치와 수육 소스 그리고 겨자 두 세 스푼을 넣어 비비면 양념이 매콤 시큼 간간한 새로운 안주 ‘무침제육’이 완성된다.

옛 제일빌딩(사진 좌)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을지면옥.[필자 제공]

종로 3가 일대 상권 활성화 기대감 커져


을지면옥이 들어서는 낙원동은 종로오피스텔이란 랜드마크와 관공서인 종로세무서에 더해 오래전부터 유명한 아귀찜 골목 등이 몰려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특히나 핫 플레이스로 호황을 누리는 익선동 초입이어서 을지면옥이 들어서면서 일대는 더욱 붐빌 것으로 전망된다.


일대는 서울 구도심 한복판으로 노포 음식점이 많은 곳이다. 종로3가란 타이틀보단 창덕궁 앞이나 종묘 옆이란 표현이 걸맞은 곳이다. 역사적 시층이 깊고 다양한 곳이다. 종로3가역 6번 출구 인근에는 갈매기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광주집·미갈매기·고창집·노들집·익선동목장·한양집 등이 몰려 돈의동 갈매기살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주말이면 입추의 여지가 없는 돈의동 갈매기살골목. 을지면옥의 등장으로 일대 상권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필자 제공]

종로할머니칼국수와 찬양집 등 오래된 칼국수 식당도 유명하다. 종로제면소란 칼국수 전문점도 골목 초입에 들어서서 칼국수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종로할머니칼국수와 종로제면소는 멸치 육수를 기반으로 하고 찬양집은 바지락과 홍합 등 해물 육수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골라서 찾는 재미가 있다.


을지면옥 뒷골목 옆집은 종로 이모카세라는 별칭이 더 유명한 리치런치라는 순댓국과 스테이크가 나오는 메밀국수 전문점이 있다. 이모카세는 ‘이모 같은 사장’과 ‘오마카세’를 합성한 조어다. 마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마스터처럼 손님이 해 달라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 줄 것만 같은 곳이다. 가성비가 좋고 소주가 공짜라 낮술 성지로 소문나 있다.


아귀찜 하면 낙원동이란 공식을 만들어 준 아귀찜 식당도 인근에 즐비하다. 원조마산아구찜·마산해물아구찜·마산아구찜·옛날집낙원아구찜·도원마산아구찜 등이 몰려 있다. 이들 중 가장 처음 이곳에 아귀찜 식당을 연 곳은 옛날집낙원아구찜이다. 1977년 개업해 2대째 가업을 이어 운영 중이다.


47년간 한자리를 지키면서 일대를 아귀찜 명소 골목으로 견인했다. 이 집은 원조를 앞세우지 않고 ‘처음집’이라고 간판에 써 놨다.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지정돼 원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1977년 문을 연 낙원동 아귀찜 첫 집인 ‘옛날집 낙원아구찜’. 창업주 전낙봉 씨(사진 좌)와 부인 윤청자 씨가 현업을 지키면서 대물림을 완성하고 있다.[필자 제공]

한편 옛 을지면옥이 있던 자리는 세운재정비촉진사업에 따라 구도심이 사라지고 곳곳에 주상복합 아파트 등 마천루가 들어섰다.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수많은 노포 맛집도 사라졌다. 을지면옥이 있던 세운3구역에는 서울 노포의 대명사 중 하나인 양·대창전문점 ‘양미옥’,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갈빗집 ‘조선옥’ 등이 있는 곳이다. 양미옥은 화재로 소실된 후 일대가 개발됐고 남대문 양미옥이 본점이 됐다. 아직은 영업 중인 조선옥도 새 둥지를 물색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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