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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정선 삼탄아트마인, 예술의 광맥을 찾다

[최영식의 뮤지엄 순례] 탄광의 재탄생

버려진 공간을 예술의 빛으로
삼탄아트마인과 테이트모던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속, 한때 광부들의 숨결이 깃들어있던 폐광이 이제는 예술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도심의 화려한 미술관들과는 달리 ‘삼탄아트마인’은 찾아가는 길부터 새로운 체험이 가득하다.

삼탄아트마인 가는 길

자동차로 한참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멀리 거대한 철 구조물(갱도와 연결되는 수직 갱 타워)이 보인다. 그곳이 삼탄아트마인이다.


익숙한 ‘미술관’이나 ‘뮤지엄’이 아니다. ‘삼탄’은 우리나라 대표 탄광 중 하나였던 삼척탄좌를 뜻하며, ‘아트마인(artmine)'은 art와 coal mine(탄광)을 조합했다. 삼척탄좌는 1964년부터 3,000명이 넘는 광부가 석탄을 캐던 곳으로 2001년 10월 석탄합리화법에 따라 문을 닫았다. 이후 수 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2013년 5월 문화예술 재생 공간인 삼탄아트마인으로 탄생했다. 전국의 많은 문화 공간 중에서도 삼탄아트마인은 실제 폐광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폐광 입구

그런 특별함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부터 시작한다. 뮤지엄 맞은편 폐광 입구에 새겨진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표어는 과거에 이곳에서 일했던 광부들과 가족들의 절실한 염원을 표현한다. 막장안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초조해 하던 가족들의 절박한  기도문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다들던 생생한 역사의 흔적은 삼탄아트마인에서만 느낄 수 있다.

삼탄아트마인 입구

건물 입구는 1층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4층이다. 경사면에 지어진 건물은 외부에서 볼 때 아래층이 보이지 않아서 방문객들은 지하 탄광으로 내려가듯 독특한 구조를 체험 한다. 이는 삼탄아트마인이 땅속으로 내려가는 탄광이라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가 작가 권학준 작품

4층은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Artist-in-residency)’ 프로젝트 공간이다. 작가들이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한다.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있는 작품

삼탄아트마인에서 큰 감흥을 느낀 곳은 3층의 삼탄 자료실이다. 자료실에는 광부들이 실제 사용했던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광부들의 급여명세서이다. 명세서에는 그들의 땀과 눈물, 치열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삼탄 자료실
급여명세서
각종 서류

이 명세서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온전히 느끼게 하는 증거물이다. 힘들게 일한 대가로 받은 급여, 그 속에 담긴 희망과 꿈은 어떤 예술품보다도 강한 울림을 준다. 예술이란 단순히 아름답게 만들어진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묻어있는 예술이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있는 작품

2층은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두 개의 특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한때 석탄 먼지로 뒤덮였던 광부들의 샤워실, 그리고 진시황의 병마용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관 CAM의 전시이다. 무엇보다 수백 명의 광부들이 동시에 사용했던 샤워실을 그대로 살린 갤러리가 눈에 띈다. 이곳은 까맣게 석탄이 묻은 광부들이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몸을 씻어내던 장소였다.

2층 샤워실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샤워실은 이제 하얀 비너스 조각상이 전시된 예술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 대비는 묘한 감동을 뿜어낸다. 거친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금녀의 공간에 우아한 비너스가 자리잡았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모습이 대비되어 독특한 장면이 연출된다.  비너스는 광부들의 거친 손길과는 대조적으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이질적인 두 요소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그 속에  깊은 메세지를 전한다.

샤워실 복도의 사진


샤워실 복도의 사진

샤워실 복도에는 당시 광부들의 사진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는 안도감을 느끼던 광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사진을 보면서 복도를 걸으니 내가 마치 그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하루의 고된 일을 무사히 마쳤다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듯하다.

CAM 입구



CAM 전시 작품

같은 층에 위치한 현대미술관 CAM에서는 진시황의 병마용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생명의 물질을 캐던 광부들처럼 병마용 역시 땅속에서 나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는 과거를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 준다. 광부들과 병마용이 긴 시간을 건너와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다.


맨 아래 1층은 석탄을 캐어 나르던 조차장을 최대한 보존한 공간이다.  삼탄아트마인의 상징성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1층 조차장



1층 조차장



1층 조차장의 광부 모형



1층 조차장

이 공간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 탄광으로 돌아간 듯하다.  광부가 되어 철 계단을 내려가는 체험은 당시의 노동 현장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 조차장에는 당시에 쓰던 철제 구조물과 옛 장비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시대의 분위기가 더욱 깊숙히 스며온다.


철 계단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연결된다. 밖으로 나가면 삼탄아트마인의 역사와 예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조차장을 밖에서 본 모습


기억의 정원

4층에서 1층까지 둘러보고 나오니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장소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예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런던 테이트모던

삼탄아트마인은 폐광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었고 테이트모던은 런던의 옛 화력발전소의 역사를 지녔다. 모두 과거의 산업공간을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 시켰다. 산업 혁명의 중심지였던 곳이 이제 현대 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과거의 산업 유산과 현대 예술 작품들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예술의 향기로 피어났다.

테이트모던의 터빈 홀

삼탄아트마인의 1층 조차장과 테이트모던의 터빈 홀(turbine hall)은  노동 현장의 핵심적 공간이었다. 버려진 산업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니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재 탄생했다.  예술이 감상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탄아트마인과 테이트모던은 각각의 역사적 배경을  품고 방문객들에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주지하듯이 예술은 미의 대상만이 아니다. 과거를 현재와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삼탄아트마인과 테이트모던이 보여주는 예술의 힘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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