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생의 철학 질문하기]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서양 미술사에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현재까지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술로 생의 철학 질문하기] 시리즈는 당대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미술계에 영향을 끼치며 회자되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 편마다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철학적 주제인 고통, 행복, 불완전성 등 삶의 본질에 가까운 개념을 질문한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우리는 이 그림을 잘 알고 있다. 작품명은 '해바라기', 각종 매체에서 명작으로 소개되는 그림이다.
그렇다면 직관적이고 단순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이 그림은 왜 명작이라고 불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의 흐름'을 이질감 없이 아름답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어진다. '시간' 자체를 표현하는 것은 너무 어려워서, 시간을 시각화하려면 필수적으로 과장이 들어간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기 '해바라기'를 다시 보자. '시간'이라는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꽃병 안에 담긴 해바라기, 이게 전부다.
두렵지 않게 그려냈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 속에서 우는 날들
얼굴을 감싸고 우는 노인, 발목이 보이는 기장의 바지와 절망하며 앉아 있는 모습은 앳되어 보이기까지 하다. 그림에서 보이는 노인의 방은 전체적으로 난색의 색감을 지니고 있다. 난색은 따듯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지만, 이를 과하게 사용할 때 답답하고 더워 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 때문일까? 이 노인이 어떠한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굉장히 비정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 두 눈을 움푹 쥐고 소리 없이 앉아서 우는 것 같다. 청색 웃옷과 바지, 몸에 딱 맞는 낡은 구두, 노인의 몸집에 살짝 커 보이는 의자 모두 어딘가 전부 '노인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하지만 '노인의 것'이란 또 뭘까? 녹색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보이는 노인의 손과 머리가 다 빠져가는 모습, 즉 나이에 비해 능동적이지 못하고 미숙해 보이는 행동이 우리가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노인이 처한 '비정한 상황'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다. 자연의 섭리라고도 불리는 이 흐름은 노인을 울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든다. 이 그림에서 노인은 노인이 아니다. '늙어가는' 모든 것이다. 시간에 흐름에 저항할 수 없는 모든 이들이며, 살아갈수록 무력해지는 보통의 이들이다.
이렇듯 그는 시간의 흐름에 큰 관심을 가졌다. 또한 자연스럽게 '영원'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이 영원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이 아닌, 그 개념 자체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영원한 것에 의구심을 갖고 갈망하였으며, 아이에게서 생명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영원하지 못하기에 아름다운 것
또한 그는 각종 루머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최대한 빼고, 그의 작품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다양한 것을 그려낼 줄 아는 화가였다. 관찰력과 섬세함을 요구하는 풍경화,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정물화, 생동감이 보여야 하는 초상화. 이 모든 것을 그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의 대두에 기여한 대담한 색채와 극적인 붓놀림이 특징이며, 이러한 시도와 예술계의 개척은 현재까지도 많은 파급력을 미친다.
한 가지 정확하게 명시해두어야 할 것은, 그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신적으로 고통받았다. 정신적인 병으로 인해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여러 일들이 있었으며, 그러한 경험은 그를 더욱 망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인 안정을 걱정했지만, 종종 의도치않게 건강을 소홀히 했고 식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자주 과음을 즐겼다. 아마도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의 '귀'일 것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자신의 귀를 자해했으며, 그것을 '자화상'으로 그렸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로 잘 알려진 폴 고갱과 친분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들을 라이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사실 친구 관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폴 고갱이 그에게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선물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들의 관계와 반 고흐의 운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폴 고갱의 선물을 받은 반 고흐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절단해버린다.
이후 그는 잘린 자신의 귀를 매춘부에게 주는 괴행을 한다. 결국, 그는 '네덜란드의 미친 사내' 로 불리게 되며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추후 그의 주변인 중 하나가 부상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면서 그 역시 리볼버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쏴 자살하였다.
그를 이야기할 때 늘 화두에 오르는 것은 '귀를 자른 것과 자살을 한 것이 사실인지', '귀를 자른 건 자해의 목적이었는지'이다. 현재까지도 각종 음모론과 가설로 그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사된 별빛이 아름다운, 앞서 저 위 그림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그가 사건 이후 정신병원에서 그려낸 작품은 '별이 빛나는 밤'이다. 익히 알려진 작품과 위 그림은 다른 작품이지만, 그가 사랑했던 풍경을 잘 알려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그 '별이 빛나는 밤'이 아니기에 이 작품은 더욱 새로울 것이고, 조금 더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때에는 그럴 듯한 사실 확인보다 누군가의 솔직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이롭다. 그것이 자해를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병적인 인물이라도, 그 안에 마주해야 할 것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영원히 사랑받으며
그의 작품은 모순적이게도 그의 삶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대중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인정'에는 예술적 비평이 주를 이뤘지만, 관심이 몰릴수록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석과 선호도는 다양해져갔다. 그의 사망 후, 그의 예술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오해받는 천재성'의 상징이 되었고, 홀아비가 된 그와 그의 형수의 노력을 바탕으로 대중은 무례한 상상력을 펼쳤다. 그의 대담한 색감과 생동감이 잘 보이는 선, 마지막으로 캔버스 양식과 두꺼운 페인트칠은 20세기 초 야수파와 독일 표현주의자들과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 단체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선사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사후 수십 년 동안 비평적이고, 때로는 호평적인 평가를 받으며 이어졌다. 대부분은 비평적 시선에서 그의 작품을 평가했지만 이는 그의 새로운 시도 덕분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작품은 상업적인 면에서 광범위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예술가의 낭만적인 이상'의 상징으로 남았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남동생 태오에게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그림이 거기에 사용된 물감보다, 내 인생보다도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생전보다 생후에 관심을 받고 나아가 호평이나 인정이 아닌 비평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으나 현재까지도 영원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말했던 '가치'는 사용된 물감의 양이나 재화, 한순간의 호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그림은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며 조카에게 준 첫 번째 선물, 작품명 '아몬드 꽃'.
가지가 뻗어 나가듯 삶을 겪게 될 새로운 생명과, 끝내 꽃 피우는 삶의 찬미로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영원한 순수함을 구현해냈다. 조카의 행복을, 영원한 조화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그의 순수한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본능적으로 인간에게는 당연히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죽고자 하는 욕구가 동시에 존재한다. 고흐는 이러한 양가감정을 가장 오롯이 느낀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에 존재하지 않는 '영원'을 바라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꽤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지기에.
영원을 구축하는 방법은, 먼저 '영원'이라는 개념을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의 '영원'을 향한 의지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온다. 그의 그림을 통해, 그의 말을 통해, 비로소 그를 통해.
우리는 영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