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애의 건축기행] 브라질 니테로이 현대미술관
"거대한 코발트색 바다를 품고 있는 비행접시"
-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
- 주소: Mirante da Boa Viagem, s/n⁰, Boa Viagem, Niterói-RJ, 24210-390, Brazil
- 홈페이지: www.macnitroi.com.br
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1763~1960년)과 포르투갈 식민지(1808~1821년)의 옛 수도였다. 이 도시의 해안 경관은 아주 아름답고 수려하여 나폴리와 시드니에 비견되는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문화유산과 유혹에 빠져들 장소들이 도처에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 최대의 삼바 축제가 열리는 도시다. 리우 카니발이 열리는 동안 지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파티장으로 변하여 세계 곳곳으로부터 6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인다고 한다. ‘죽기 전 딱 하루, 축제의 날을 허락받는다면 광기의 도시 리우로 가라’는 속설이 생겨난 이유를 실감하였다. 리우데자네이루에 머물 때가 마침 카니발 준비 기간 중으로 도시가 축제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은 거대한 바다를 품고 있었다. 바다를 앉고 있는 조형적인 건축미야말로 압권이었다.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기하학적인 공간과 유선형의 조형 언어로 빚어진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의 아름다운 형상에 매료되었다.
이 건축은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의 작품이다. 그는 곡선의 대가답게 코발트색의 드넓은 바다 끝자락의 절벽을 조각대로 하여 하얀 유선형의 조형물을 절벽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 형상은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비행접시를 연상케 하였다. 나선형의 계단과 한쪽으로만 고정된 보(cantilever)와 미술관 내부의 낮은 천장과의 공간 비례는 드넓은 바다의 지평선을 강조한 공간 구축으로 자신만의 건축적 언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낮은 비례의 미술관 건물과 높은 하늘과 바다의 아름다운 조화는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거대한 바다를 품은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의 기하학적 공간들은 마치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의 소리를 내부로 옮겨놓은 듯 시적인 공간을 창출하였다. 공중으로 떠 있는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미술관 입구가 나온다. 1층은 운영 시설이 있었고 전시 공간은 2층에 자리하였다. 2층 갤러리에서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구아나바라(Guanabara)만의 풍경을 마주하며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평화로운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기다란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코발트색 바다는 평화로웠고 파란 바다 위를 수놓은 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는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에서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기 전에 이 갤러리의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바다와 멀리 리우데자네이루의 풍경이 어우러진 프레임의 공간은 관람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 갤러리 공간은 오롯이 감상자를 위한 공간 구축으로 브라질의 감성을 담아낸 건축가의 배려였으리라. 2층 전시장에는 여섯 개의 작은 전시장이 있었다. 내부의 둥그런 조명도 유선형의 건축물과 닮았다. 방문 때 마침 사진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브라질 작가들 전시로 생소한 이름의 작가들이었지만 브라질의 감성을 담은 공간과 브라질 작가의 작품들은 어우러져 마치 그 공간을 위해 준비되어진 것처럼 자연을 담은 정겨운 사진들이었다.
아름다운 건축의 유선형 외형과 내부 조형미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일탈의 자족감을 채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멋진 미술관이었다. 아래층에는 강당과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곳 레스토랑에서의 메뉴도 미술관다운 세련미와 풍미가 어우러진 최고의 맛을 자랑하였다.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의 형상을 모방한 메뉴판과 나오는 음식마다 맛은 물론 예술적인 비주얼 역시 미술관 식당다웠다. 그 식당에서 누렸던 풍요로움과 향기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튿날, 브라질리아 도시계획안을 세운 세계적인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의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동안 연발되는 감탄사는 금할 길 없었다. 그는 2012년에 106세로 타계했지만 104세까지도 왕성하게 현역에서 일을 했던 최장수 건축가였다. 그는 정녕코 한 세기를 대표하는 현대건축가의 전설로 불리기에 조금도 이의가 없으리라. 오스카 니마이어는 브라질의 신수도 건설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당대 대통령인 주셀리노 쿠비체크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에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브라질 정부는 해안 지역의 집중된 인구를 내륙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1956년부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기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였고 신도시계획을 오스카 니마이어가 실행하였다. 브라질리아는 불모지인 중부 고원에 오스카 니마이어의 계획안으로 세운 신도시다.
이러한 신도시계획의 행운은 20세기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조차도 시샘을 했다고 하니 모든 건축가들에겐 부러움이고 염원일 것이다. 브라질리아는 과거의 역사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불과 50년의 역사를 지닌 새롭게 탄생된 신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는 오직 한 사람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의 열정과 정열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고원의 초원 위에 그의 스승인 코스타와 함께 브라질의 수도를 자신의 계획안으로 마음껏 디자인하는 행운을 거머쥔 오스카 니마이어는 브라질 가는 곳곳마다 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스승인 코스타가 비행기 모형을 연상시키는 도시계획안을 기획하였고, 오스카 니마이어는 대통령궁을 비롯해 국회의사당, 브라질리아 대성당 니테로이 대중극장 등 주요 건축물들을 연이어 짓게 된다. 어떤 제약이나 장애물 없이 도시 전체를 통일된 유기체로 건설하게 되는 행운을 안게 된다. 1988에는 세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미국 출신의 건축가 고든 분 샤프트(Gordon Bunshaft)와 함께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오스카 니마이어는 “내 뿌리, 내가 태어난 나라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고안해야 한다.”며 그의 건축 세계를 한켜에 담은 글로써 자신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행의 신선함은 퇴색하여 어디론가 사라지겠지만, 리우의 광기 어린 축제와 이파네마의 바다 내음, 오스카 니마이어의 위대한 건축은 서랍 속의 누렇게 바랜 책의 소중함처럼 기억 창고 속에서 한 편, 한 편 되살아나 일상에서 문득문득 나를 깨울 것이다. 우리나라 반대편의 가장 먼 곳에 자리한 남미로의 여행은 비록 힘든 여정이었지만 소중한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기 위해선 그 어떤 불편도 감수할 만하였다.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