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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Aug 09. 2024

밤의 포착 - 사진작가의 시선을 따라서

[박정현의 시각]

'뮤지엄한미 삼청' 전시 중인《 밤 끝으로의 여행 》전시 리뷰
2024. 5. 22 – 2024. 8. 25
'뮤지엄한미 삼청' 전시장 입구 ⓒ 박정현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밤 사진작가의 시선이 피사체로 향한다. 어둠 속에서 포착된 밤의 모습은 낮과는 다른 매력으로 기자를 유혹한다.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전시 중인 《밤 끝으로의 여행》은 각양각색의 밤의 모습을 담은 국내외 32명의 사진작가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Part.1 녹투라마(Nocturama)'에서 'Part.4 어둠을 삼킨 밤'까지 이번 전시는 ‘밤’이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시간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모든 것이 저문 시간인 밤’은 사진작가를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품이 된 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인 시간이 된다.


자나 브리스키,  애니멀로그램 연작, 후드사마귀 #1 , 보르네오  2019 ⓒ 박정현

 자나 브리스키(Za na Briski, 1966-)는 영국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로 다양한 생명체들과의 교감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포토그램 기법을 통해 곤충과 동물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작가는 사실감 있는 순간을 잘 전달하기 위해 어두운 밤 대형 인화지를 펼쳐 놓고 인화지 위로 동물과 곤충이 날아든 순간 작은 플래시를 터트려 그림자를 포착해 냈다.



권도연,  북한산 연작,북한산 검은 입 , 2019  ⓒ 박정현

  작가 권도연(1980- )의 작품 <야간행> 연작은 주인으로부터 유기되어 떠도는 유기견이나 야생 동물의 모습을 섬세한 시선으로 세세하게 보여준다. 삶의 터전으로부터 밀려나 ‘떠돌이 개’가 되어버린 <북한산> 연작의 속 개의 모습은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때는 누군가의 가족이었으나 이제는 혼자가 되어버린 쓸쓸한 개의 모습은 ‘연민’과 동시에 ‘생명 존중’이라는 당연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에드워드 웨스턴,  조개 껍질,  1927 ⓒ 박정현

 한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적인 충동과 욕망 역시 사진작가들의 흥미를 끈 요소였다. 그들은 인체나 인체의 형체를 닮은 오브제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에서도 <조개 껍질>을 찍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1886- 1958)은 근대 사진의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조리개를 조여 장노출로 촬영하는 방식을 통해 피사체가 지닌 특유의 질감을 극대화하고자 한 웨스턴의 노력은 마치 조각처럼 풍부한 입체감을 보여주며 ‘있는 그대로를 포착한다’ 는 사진이라는 장르가 지닌 특징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황규태, 우주 환경의  미래 -버노그래피 연작 , 1969 ⓒ 박정현

 또한 사진을 이용하여 색다른 시도를 한 다양한 작품을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전시를 관람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필름에 열을 가하는 방식을 통해 마치 광활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담은 황규태(1938-)의 <우주 환경의 미래 – 버노그래피> 연작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비록 사진이지만 마치 눈앞에서 폭발하는 것처럼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은 이색적인 모습으로 관람자의 이목을 끈다. 뿐만 아니라, 필름을 태워서 제작하는 방식은 작품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점은 자칫 작품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태양이나 블랙홀처럼 우주를 떠오르게 하는 제목을 붙여 작가만의 유희로 풀어 내었다.


권아람, Walls, 2021  ⓒ 박정현

작가 권아람(1987-) 역시<Walls>에서 조각난 화면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제시하여 디지털 사회의 욕망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쉴새 없이 반복되는 클릭 음과 빨간 화면 그리고 지지직거리는 소음은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갖는 오류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은 이른바 가짜 뉴스가 끊임없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사회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김남진, 이태원의  밤 연작, 1986 ⓒ 박정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두워진 밤은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이렇게 절정을 이룬 밤의 풍경을 더욱 화려하게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남진(1958-)은 1984년에서 1986년 당시의 최고 유흥가였던 이태원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 내었다. 서양 문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1980년대 후반 여러 문화가 뒤섞인 이태원은 젊음이 표출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당시 작가 자신도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던 김남진은 화려한 이태원의 밤을 작품 <이태원의 밤> 연작에서 보여주었다. 자유로운 이태원이지만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이 계속되는 일터에 불과한 곳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인식시켜 주는 그의 작품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송영숙, 환희, 2022 ⓒ 박정현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빛의 변화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송영숙(1948- )의 <침묵>과 <환희>는 이 명백한 진리를 오롯이 담고 있다. 아무리 고된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오랜 인내를 견뎌내면 밝은 빛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인생의 교훈 같은 작품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밤의 묘한 매력을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 놓는다.


송영숙,  침묵,  2018 ⓒ 박정현

회화와는 또 다른 밤의 모습을 보여준 <밤 끝으로의 여행>은 사진이라는 장르를 다시 보게 해 준 전시였다. 기자가 그랬듯, 독자 여러분도 이 전시를 통해 사진의 매력을 느껴 보시기 바란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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