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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120주년 기념전을 다녀와서

by 데일리아트
평창동 가나아트《고암, 시대를 보다 : 사생(寫生)에서 추상까지》전시
1249_2580_2513.jpg 뜨거운 햇볕 아래 평창동 가나아트

2024년 6월 28일부터 7월 28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고암, 시대를 보다 : 사생(寫生)에서 추상까지》 전이 열렸다. 올해로 120주년을 맞은 우리 근대 회화의 거장 고암 이응노(1904-1989)의 탄생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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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첫 번째 전시실에 있는 이응노의 초기 드로잉 작품들이다. 1930년대부터 50년대 말까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을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이십 대에 전통 서화가로 출발한 이응노는 삼십 대인 1935년 즈음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 일본화와 서양화를 배우고 사생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관념적인 문인화에서 벗어나서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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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활하는 우리의 이웃이 그의 그림 소재였다. 위) 경성 낙원정에서, 1941. 6.7, 종이에서 수묵, 27×35.9cm (아래) 경성 우신여관, 1941. 3. 7, 종이에 수묵, 20.8×29.7cm


대폿집 풍경, 소녀, 일하는 사람들, 노점상 등 사생(寫生)을 시작한 초기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과 사람들을 기록 사진 찍듯 사실적으로 성실히 그렸다. 그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어려웠던 당시의 풍경과 우리보다 먼저 이 땅을 살다 갔던 평범한 이들의 삶이 생생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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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욈쪽) 가게 ,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27.2×37.4cm (위에 오른쪽) 경성 덕수궁 , 1941. 5, 종이에 채색, 28.7×37.5cm (아래 왼쪽) 무제,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29×37.3cm. (아래 오른쪽) 화로와 여인,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 28×36.8cm


그는 1945년 해방되던 해 봄, 서울로 돌아와 조국에서 화가로 활동했다. 해방에 이어 한국 전쟁이 터지고 폐허가 된 된 이 땅에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냈다. 한국 회화사에서 전쟁을 직접 묘사한 작품들은 흔하지 않기에 전쟁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이 더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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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욈쪽) 나부 , 1939.1.12, 종이에 수묵채색, 37×28cm (위에 오른쪽) 홍성에서 , 1949. 7, 26. 종이에 연필, 채색, 18.4×26.6cm (가운데 왼쪽) 남대문 시장의 아침, 1949, 4. 13., 종이에 채색, 19.3×28cm. (가운데 오른쪽) 남대문 시장에서, 1949, 종이에 채색, 19.7×25cm. . (아래 왼쪽) 일하는 남자들, 연도미상, 종이에 연필, 20.2×25cm. (아래 오른쪽) 창경원 농악회 관객 부인상, 1947, 종이에 연필, 15.1×20.5cm.

1249_2624_308.jpg (위) 폐허의 서울,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20×27.9cm (아래) 서울 조선호텔 뒤 , 1952. 4, 6 종이에 채색, 20.8×3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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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야 - 외상은 안뎀이댜.,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42×55cm.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2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응노는 1950년대 부터 서민들의 생활에 애정을 가지고 취야 연작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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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장수, 1950년대, 종이에 채색. 47×56.5cm. , 종이에 수묵채색 . 오십년대 중반 부터 형태의 추상화를 실험하기 시작한다.


1249_2627_2244.jpg 해녀,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46×6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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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 산사,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33×35cm (위 오른쪽) 풍경 ,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32×33cm (아래) 농촌풍경 ,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32×33cm

제1전시실에 있는 드로잉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본 유학기인 1940년대 드로잉 작품들은 대부분 사실적인 묘사이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거칠고 빠른 붓질로 형태를 추상화시키는 변화를 보여준다. 뒤에 이응노는 이 시기를 '반추상 시대'라고 하였다.

1249_2628_3736.jpg 모락산 안양교도소 에서 , 1969년, 종이에 수묵채색


1249_2629_3757.jpg 군상 (옥중조소), 1967-69, 밥알, 종이, 찰흙


전시실 한쪽에는 동백림 사건으로 수감 중에 교도소에서 만든 그의 작품이 전시 되어 있어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수감 중 그는 식사 때마다 조금씩 밥풀들을 모아 헌 신문지를 넣고 춤추는 군상을 만들었다. 교도소 소장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 달라고 사정해서 어렵게 구한 붓과 종이로 그린 산수화는 감옥에서 그렸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힘이 느껴진다. 이 군상은 뒷날 그의 인간 연작의 출발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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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는 조각, 태피스트리, 판화, 도자기 등 손 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 그러나 서화가로 출발한 그는 유럽에서 지내면서도 틈만 나면 대나무를 즐겨 그렸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호방하고 자유로운 그의 수묵 작품을 볼 수 있다. 전통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자신만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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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잎의 전개 방법은 80년대 후반 인간 연작의 묘사 방법에 그대로 옮아간다. 이 대나무 작품에서 인간 연작의 근원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전시실은 파리에서 작업한 콜라주와 문자 추상 작품이다. 1958년 유럽에 진출한 이응노의 초기 60년대 콜라주 작품과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자 추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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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는 주로 1960대에부터 70년대까지의 작품들이다. 종이를 이용한 콜라주와 솜이나 천을 이용한 작품과 태피스트리, 조각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넓고 깊어지는 그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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