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아뜰리에 ⑤]
나의 화양연화는 지금
건강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
카메라 대신 스캐너, 복사기, 빔 프로젝트, CT, MRI, MRA로 작업하는 작가
- 뒤를 이은 전시 제목이 《유희적 인간(Homo Ludense)》이다. 요한 하우징어의 유희적 인간(Homo Ludense), 혹은 놀이하는 인간을 차용한 것 같은데 그 이유가 있나?
인터뷰 첫 질문이 뇌출혈에 관한 질문이었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죽음에 대한 것을, 죽음을 알지 못하던 시기의 물감 놀이와 연결하고자 작품화한 것이다. 이 작품의 오브제는 Brain X-Ray, CT, MRI, MRA와 같은 의료용 이미지이다. 2011년에 내가 좌절을 경험하고 2014년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도 이때 발병하면서 죽음은 너무나 큰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 그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어 어린 시절 처음 물감을 가지고 놀던, 아마도 그 시절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놀이와 나의 두려운 경험을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홍준호, Homo Ludense #16, Digital Inkjet Pigment Print(Mixed Medical MRI, Acrylic on Matt paper), 72.8 x 76.4cm, 2016
홍준호, Homo Ludense #14, Digital Inkjet Pigment Print(Mixed Medical CT, Water Color on Matt Paper), 75.7 x 100cm, 2016
- 작업의 과정이 홍 작가의 경험에 비롯되어 확장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혹시 이후에 이 작업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궁금하다.
《Homo Ludense》 작업으로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치유를 해보기 위한 작업을 했지만, 여전히 꿈과 현실은 괴리가 있었다. 꿈에서는 회복하신 아버지를 보며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버지를 간병하며 멈추어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현실을 부정하고 다시 받아들이는 작업을 했다. 아버지의 뇌출혈이 선명하게 보이는 CT 사진을 프린트해서 구겼다 폈다를 반복했다. 마치 가톨릭의 묵주 기도나 불교에서 108배와 같은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구원의 과정에 이르는 행위 같은 작업이다.
그 결과는 평면의 사진 이미지가 행위를 통해 이미지는 사라지고 이미지를 위해 희생하던 종이와 잉크의 물성이 드러나는 작업이다. 평면의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구겨진 종이의 선과 면이 조각적인 느낌으로 재탄생했다. 이것이 '비(非)사진적 사진'의 출발이었다.
홍준호, Lucid Dreaming #01_일부, Digital Inkjet Pigment Print(Scanned repeatedly Crumpled Medical CT print on Matt paper)
홍준호, Study of crumpling #0011, Crumpled Medical MRI image print on Matt Paper and Paper dust and Acrylic on Canvas in Paulownia wood Frame, 50 x 42cm, 2018
- 영은미술관의 전시 명 《In the Mood for Love》에 대한 소개를 잠시 부탁한다.
《In the Mood for Love》는 원래는 왕가위(王家卫)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의 영문 제목이다. 이번 작품에서 오브제로 사용한 사진 건판(photographic plate)은 짐짓 100여 년 정도 시간이 흐른 이미지들(인물, 정물, 풍경 등)이며, 각기 어떤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세월의 먼지와 상처를 가지고 벼룩시장에 나와서 나와 인연을 맺었다. 그 이미지 속의 인물이나 장소는 당시는 흑백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지만, 각기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 순간을 남겼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 영화의 내용과는 다른 아름다운 순간, 영화 속 특유의 색채와 감각을 떠올리며 전시 제목을 지었다.
좌) 홍준호,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16, Digital Inkjet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20 x 89.77cm, 2018우) 홍준호,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24, Digital Inkjet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30 x 100.3cm, 2018
- 홍준호의 화양연화는 언제인가?
이번 전시에서 그 질문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지금이 화양연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또 앞으로 더 행복해질 것이고. 과거의 노력과 어려운 과정을I 통해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If라는 가정을 통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았다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건강을 잃어 버리지 않았다면 이런 작가의 길을 걷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또 다른 화양연화가 기다릴 것이다.
- 사진 건판을 이용해 작업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것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이런 오래된 사진 건판을 수집해 오는가? 또한 수집의 기준이 있는가?
사진 건판(photographic plate)은 1850년대 사용하기 시작하여 셀룰로이드 필름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사진의 형태이다. 메이지 유신 시기에 일본에서 사용되기도 했었다. 이런 사진 건판을 유럽 여행을 하다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그리고 하나 둘씩 수집하기 시작한 지 10년이다. 그간 파리, 런던, 로마, 프라하, 바젤, 뉴욕, 도쿄, 오사카 등 여행하는 도시의 벼룩시장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 건판과 같은 골동품을 찾아다녔다.
수집을 하는 포인트는 시간이 느껴지는 물건의 상태다. 사진 건판은 약 150년 정도 전에 사용되었다. 그 시간이 느껴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낡고 해지고 깨지고 먼지가 쌓여 누군지, 무엇인지, 어디인지 그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는 것이면 더 좋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과거 직장 생활을 하던 나를 보는 듯하다. 건강을 잃고 가치가 상실되어 잊혀져 가는 존재로 느껴졌던 나의 모습을 소환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사진 건판으로 어떻게 작업을 할까 고민이 많았다. 흑백의 이미지를 스캔하다가 스캐너의 오류로 화면에 직선으로 그어진 색 선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거다 싶었다. 그 오류 또한 직장에서의 과로로 건강에 오작동을 일으킨 CT화면의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었다.
- 영은미술관 4전시실에 들어서면 바로 한 여인의 초상 작품이 다채롭게 전시가 되어 있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지점이다. 사실 그 질문을 유도했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나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누가 왜 찍었는지 언제 찍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사진 건판을 가지고 작업을 한 이유는, 현대미술에 대해 내가 느낀 불편함 때문이다. 나는 현대미술은 형식과 내용 두 가지 중에서 내용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생각한다. 미술계에서는 내용의 전달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인다.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작가의 글쓰기, 아카이브, 리서치 등을 강요한다. 나는 그 속에서 일종의 권력, 폭력과 같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작업을 통해서 누구인지, 어디인지, 무엇인지, 누가 왜 찍었는지 모르는 사진 건판을 통해 이미지가 가진 정보의 부재를 드러내었다.150여 년 전 흑백으로 표현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과의 만남을 비현실적이고 강렬한 색으로 표현했다.
우) After In the Mood for Love #24_05_M_005, 2024, Digital Inkjet Pigment print(수집한 사진건판에 컬러 레이어링 작업 후 프린트), 121 x 94cm좌) After In the Mood for Love #24_03_M_001, 2024, Digital Inkjet Pigment print(수집한 사진건판에 컬러 레이어링 작업 후 프린트), 121 x 94cm
- 작품의 변화를 통해서 느낀 것인데 홍준호 작가의 작품은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사라진 것 같은데 왜인가?
정말 날카로운 질문이다. 맞는 말이다. 주변에서 사진작가로 소개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사진작가라 규정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지를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는 시각예술가이다. 카메라로 찍는 행위 대신 스캐너, 복사기, 빔프로젝트, CT, MRI, MRA 등과 같이 카메라의 메커니즘과 유사한 것을 활용해 이미지를 만든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가 아니라 '만든다'는 표현이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나는 이미지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미지를 변형하고 왜곡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 디렉터, 큐레이터, 컬렉터, 아티스트의 역할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좌) After The Meiji Restoration #24_Am_01_M_28, 2024, Digital Inkjet Pigment print(수집한 사진건판에 컬러 레이어링 후 프린트), 165 x 120cm우) After The Meiji Restoration #24_Am_02_M_M_02, 2024, Digital Inkjet Pigment print(수집한 사진건판에 컬러 레이어링 후 프린트), 165 x 120cm
- 영은미술관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나?
2021년 영은미술관 레지던시 12기 입주 작가 공모를 보고 장기 입주 작가로 지원했었다. 그때까지 1년 혹은 5~6개월 입주해서 작업하던 생활에 변화가 필요해서 장기로 입주를 원했으나, 아쉽게도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작품을 좋게 봐주신 미술관 측에서 단기 입주 작가로 제안을 해주셨고 그 덕분에 24년에 5개월 간 입주할 수 있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이 작가 데뷔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전시를 하고 싶었던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거나 어디선가 의미 있는 전시를 하고 싶은 희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올해 하반기에 어느 나라의 벼룩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떠날 예정이다.
사실 과거 직장 생활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소득은 아주 적고 말도 안되는 노동에 1부터 10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하는 1인 사업자와 동일한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 속에서 나의 목표는 앞으로도 작가로 살아 남아서 꾸준히 작업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해외 전시나 규모가 큰 전시 제안이 들어오는 상상을 하고 있다.
- 데일리아트에 바라는 점은?
우연히 이번 전시 《In the Mood for Love》 기사를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다른 작가들의 인터뷰 기사 중 [화가의 아뜰리에]라는 코너를 보면서 작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에게 다가가고 소통하며 따뜻한 가슴과 눈으로 작품을 글로 전달하는 매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홍준호 작가의 《In the Mood for Love》 展은 VR로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