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타 김 인터뷰 ②]
'천경자 화백의 차녀' 수미타 김, 서울 역삼동 맨션나인서 개인전 개최
- <In Limbo> 시리즈의 등장하는 얼굴들은 전부 작가님의 자화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자화상의 이미지를 나이, 성별, 인종을 불문한 인간의 원형으로 삼고 있다고 작가 노트에서 언급하셨는데요, 작품에 대한 설명과 이 작품에서 독자들이 어떤 것을 느껴야 하는지?
작품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는 관객의 자유이지만, <In Limbo>라는 타이틀은 처음에 제 지인이 생과 사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즉 의식이 없는 상태에 계신 모습에서 어떤 연민의 감정, 안타까움의 감정을 느끼면서 시작되었어요. “나라면 저 상태에서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맥락에서 <In Limbo>라는 타이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항상 그렇듯 어떤 작품이든 작가들이 처음에 시작한 의도와는 또 다르게 해석될 수가 있죠. 그러나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은 태어난 지점과 죽음의 지점 사이에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 경계선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인생을 그렸다고 해석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In Limbo> 시리즈를 만들던 중, 내가 아는 누군가가 여러 해 동안 일종의 림보(불확실한 상태)에 매달려 식물인간의 상태를 유지해 왔다면, 그리고 그러한 상태로 내가 살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럴 때면 엄청난 슬픔이 나를 압도해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덧없는 존재로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쨌든 우리가 모두 어떠한 형태의 림보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수미타 김
- 작가님의 작품과 어머님의 작품은 서로 전혀 다른 이미지로 각자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전 다른 인터뷰에서 작품은 전혀 다르지만, 어머니의 작가 영혼, 즉 저항 정신만큼은 존경하고 또 본받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저항 정신이란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 어머니의 작품을 보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또 요즘 작가님이 저항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요즘 고흥에서 열릴 어머니 100주년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그림 한 점 없이 진행하고 있죠. 전부 대여해야 하거든요. 아시다시피 저는 어머니 그림을 한 점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이전에 가지고 있던 그림들도 다 기증했어요. 이렇게 어머니에게 모두 돌려드렸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어떻게 보면 좀 무모한 일이죠. 큰 박물관에 있는 넓은 전시실을 채워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소장가들을 자주 만나게 되죠. 그분들이 보여주시는 그림들을 보면, 보통 어머니의 채색화를 가장 좋아하세요.
그런데 저는 채색화도 좋지만, 특히 어머니가 그린 스케치나 삽화를 만나게 될 때 너무나 가슴이 떨리는 거예요. 어머니를 직접 느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죠. 물론 여러 겹을 쌓아서 그린 다른 작품들도 모두 나름의 무게가 있지만, 이런 스케치와 삽화들을 볼 때마다 ‘intimacy’, 말 그대로 친밀감이 느껴진달까요. 제가 뭘 하나 보여 드려야겠어요. 그림을 구하러 다니던 중에 어느 분이 보여주신 스케치가 하나 있거든요.
이런 그림들을 만날 때 유독 제가 가슴이 떨려요. “아, 이거 엄마야. 엄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런 느낌을 또 언제 느꼈느냐 하면 예전에 이탈리아의 어느 뮤지엄에 갔을 때 14세기 작가의 그림을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캔버스 한 구석에 페인트가 덜 칠해진 부분이 그대로 보이는 거예요. 이때 느낀 어떤 친밀감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죠. 마치 그때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같죠. 어머니 스케치를 보면 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운동감으로도 유명하잖아요. 며칠을 쪼그리고 앉아서 뱀이 움직이는 걸 다 그린 적도 있으시고 나중에는 뮤지컬, 서커스 공연하는 곳에 가셔서 움직이는 걸 다 그리십니다. 그래서 어릴 때 언제 한번 여쭤봤어요. “엄마, 움직이는 거 어떻게 그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 그려진다”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이런 어머니의 힘이 넘치고 활력적인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요.
그리고 제가 요즘 저항하고 있는 것은, 일단 추상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타협하는 작가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어머니가 그랬듯 저도 렘브란트를 굉장히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렘브란트는 한때는 굉장히 성공하고 부도 축적했던 작가였지만, 대중의 취향에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불행한 말로를 맞았어요. 그는 행려병자가 묻히는, 그런 무덤도 없는 곳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어도 무덤 자리조차 모르는 거예요.
근데 그것도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친구들이 렘브란트에게 건수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시청에 큰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 비위에 안 맞는 걸 그린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불행하게 죽었는데, 저는 그런 모습을 너무나 존경하죠. 이처럼 예술가라면 타협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죠. 또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평생을 타협 안 하셨죠. 어머니가 채색화를 고집하실 때, 당시 이상범 선생님하고 같은 골목에 사셨죠. 그분은 어머니의 방식에 냉랭하셨어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결국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걸 찾아내셨잖아요.
저는 학교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실천하고 있어요. 물론 제가 외국인이고 원어민급의 영어를 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의견을 얘기해요. 예를 들면 왜 똑같은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월급이 적고 어떤 사람은 많은가 하는 문제 같은 거죠. 사람의 심리는 너무나 저열해요. 이미 높은 데 올라가 있는, 주로 백인 남자 같은 기득권층들은 반대해요. 요즘 저는 이런 것에 저항하고 있죠. 가르치는 일을 워낙 좋아해서 생각 같아서는 오래 오래 다니고 싶지만, 언젠가는 제가 퇴직을 해야 하잖아요. 제가 비록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퇴직하기 전에 꼭 다음 사람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해 놓고 나가고 싶어요.
-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