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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미술관, 지역 정체성 살린 전시로 주목

[최영식의 뮤지엄 순례]

by 데일리아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전시, 9월 8일까지 천안시립미술관에서

천안은 독립기념관이 자리한 도시로, 역사적으로 독립의 열망과 교통의 중심지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천안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공간이 천안시립미술관이다.

1320_2788_1547.png 천안시립미술관 전경

현재 이 미술관에서는 특별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이번 기획전은 천안의 상징인 '독립'을 중심에 두면서, 교통의 요충지로서 각 지역을 연결하는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다. 한국의 전통 위에 세계의 다양한 미술 사조를 아우르자는 의미이다. 천안의 지역적 특성처럼 '독립'의 독자성과 '교통'이라는 연결 이미지를 내포한다. 천안의 일상을 예술적 테마로 발전 확장시키자는 것이다. 이는 지역의 일상이 비일상의 예술로 변모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천안시립미술관만 그럴까? 이러한 특성을 보유한 도시가 대전과 울산이다. 대전시는 과학 도시라는 지역적 특성을 《artience 대전》 전시를 통해 표출한다. 이 전시는 과학과 예술이 만나 대전이 지닌 과학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울산시는 미디어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울산 더101미디어아트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첨단 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여, 울산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를 통해 현대적 감각을 강조한 이 공간은 울산의 혁신적 이미지를 반영한다.


이처럼 지자체가 운영하는 미술관들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예술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여타 사립미술관과 차별화된다. 그래서 천안시립미술관의 전시는 예술품 자체의 감상과 함께 지역의 특성을 같이 느끼는 재미를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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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특별전시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만나보자. 전시 주제는 지역의 역사적 특징인 ‘독립’을 나타낸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화이다. 또한 '무궁화(無窮畵)'처럼 무궁무진한 한국 동시대미술의 가능성을 세계적으로 드러낸다는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지키되, 세계 미술계와 소통하는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한국미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전시는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마호체승(馬好替乘)'이다. 온고지신은 옛것을 지키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것을 알아가자는 의미이다. 마호체승은 예전에 타던 말도 좋지만 새로운 말을 갈아타자는 의미이다. 두 섹션의 테마는 같은 것 같으면서도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첫 섹션인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는 권지안, 김보민, 아트놈, 한영섭 네 명의 작가들이 한국 전통미술을 현대적으로 변용하고 있다. 한국미술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동시대미술과 어우러지면서 작품은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보인다. 이를 통해 전통(溫故)의 현대화와 세계화(知新)라는 방향을 바라본다.

1320_2790_179.jpg 권지안, Just a Cake-Piece of Hope

권지안의 작품 <Just a Cake-Piece of Hope>는 한국의 단색화를 재해석해서 ‘백의라는 한국 고유의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포용과 교류, 나아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1320_2791_1753.jpg 김보민, 서울의 발전상을 보여주지만 한강을 건너는 전쟁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1320_2792_182.jpg 김보민, 항공기 안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산수화처럼 표현했다.


1320_2793_1810.jpg 김보민, 발전된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마치 도시를 얽매는 것 같다.


1320_2794_1815.jpg 김보민, 격자무늬 안에 포착된 도시 이면의 모습이다.


김보민의 작품은 세련된 도시를 전통 산수화 기법으로 표현하며 역사 속에 드리워진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어 전시된 네 작품들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 한국의 근현대를 시공간으로 여행하는 듯하다.

1320_2795_1839.jpg 아트놈, Robot Taekwon V

한국의 팝아트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작가가 아트놈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전통민화와 서구의 캐릭터, 대중문화를 결합해서 독특한 화면을 만들어 낸다. 평화와 위안의 미학을 추구하는 작가의 말처럼 밝게 생동하는 캐릭터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동서양의 즐거움을 골고루 느끼게 해준다.

1320_2796_2057.png 한영섭, 관계 No.9303

‘한지와 탁본’ 화가로 알려져 있는 한영섭은 들깨나무나 옥수숫대 같은 재료를 밟아 으깨고 그 위에 한지를 덮어 먹솔로 찍어 한지의 표면을 두드린다. 한지 위의 비선형적인 선들은 작가의 수행 흔적처럼 남아 있다. 한지 위의 마티에르는 전통 재료의 재탄생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섹션의 테마는 '마호체승(馬好替乘)'이다. 동시대미술을 한국화 하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기분을 느껴보자는 기획 의도가 표현되어 있다. 김혜경, 송광연, 이정배, 이동기 네 명의 작가가 초대됐다.

1320_2797_2150.jpg 김혜경, Media 보화

미디어 아티스트 김혜경은 백자, 나전칠기 같은 한국 전통미술과 미디어를 접목해 현대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고 있다. 전통미술의 형태적 집착보다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한국적 미를 동시대의 미디어 매체와 결합하는 ‘체승(替乘)’이다.

1320_2798_2235.jpg 송광연, Butterfly's Dream

송광연의 팝아트는 한국 전통 자수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대중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팝아트의 이미지에 한국적 기복성(祈福性)을 나타내어 한국 정서를 대변한다. 동시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팝아트를 한국의 염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1320_2799_2350.jpg 이정배, 회색-짙은

이정배는 동양화의 감각을 동시대의 산수화로 변형시킨다. 도심의 건물 사이로 보이는 산수를 입체로 가져오는 방법을 사용한다. 평면의 산수를 입체화 시킴으로써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전통이라는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1320_2800_2434.jpg 이동기, 헤르메스

‘아토마우스’라는 융합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이동기는 화면에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융합하는 대표 작가다. 이번 전시에도 캔버스 위에 진짜와 가짜, 명품 브랜드와 일상 광고가 동일하게 올라가서 관람객들에게 이미지의 재해석을 던져주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전시 작품 자체의 매력도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평일 오후에 수많은 학생들이 전시장에서 기획자의 설명을 경청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천안시립미술관이 진행하는 지역특성화 프로그램과 연계해서 전시에 참여한 천안 지역 학생들이었다.

1320_2801_256.jpg 관람 중인 천안 지역 학생들

지자체 미술관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과의 밀착을 통해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천안시립미술관의 노력은 기획 의도와 참여 관객의 내용에서 지자체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이번 기획전은 단순한 전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자체 미술관이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과 완벽하지 않은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고민하는 천안시립미술관은 화려하고 거대한 미술관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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