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작가 열전 ⑬] 보잘것없이 작은 이방인이 들려주는
'먼지'를 통해 세상 곳곳 숨은 비밀을 탐구하는 작가
- 판화 작업 방식을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인천국제공항> 시리즈 작업을 예로 들자면, 야외에서 작업을 진행할 때는 주로 시트지를 활용합니다. 시트지를 제가 원하는 모양으로 재단한 뒤, 공항의 방역 매트로부터 시트지의 접착 면을 활용해 먼지와 같은 작은 입자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추후에 이것을 니스를 이용해 코팅하여 판을 만들었고, 오목판화 제작 방식과 동일하게 잉킹을 하여 종이 위에 찍어내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법은 제가 발견한 야외에서 진행할 수 있는 판화 방법으로, 먼지를 좀 더 손쉽게 채집하기 위해 고안하였습니다.
- 인간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려는 삶의 태도가 작업에서 엿보인다. 혹시 요즘에는 먼지를 제외한 무엇이 가장 눈에 밟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타국 생활을 하면서 물갈이나 설사병, 이 지역의 전염병, 피부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신체의 변화를 겪고 있는데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들에 관심이 갑니다.
- 평소 취미로 무엇을 하고, 작품 활동의 영감은 어디서 받는가? 또한 작품을 할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평소에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가거나 독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멕시코로 이주해 오면서 남편과 함께 주말마다 멕시코 이곳저곳을 많이 다니는데요, 여행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관찰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보게 되고 그 음식의 유래도 상상해 봅니다. 또, 이전에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지 상상하곤 합니다. 멕시코에는 마야와 아즈텍이라는 오래된 고대 문명을 느낄 수 있는 유적들이 생각보다 지금도 곳곳에 많이 있는데요, 그 기나긴 시간을 관통하여 지금의 사람들이 고대 문명과 공존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시공간을 초월한 무언가를 느끼게 됩니다.
제 작업도 현재 우주와 더 나아가 가상 공간까지 확장하고 있는데, 현실과 가상 세계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작은 입자들을 통해 제가 바라보는 우주적 세계를 이러한 경험을(여행, 독서 등) 통해 점차 확장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 자기 작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이전 개인전 《Scrap paper》의 작가 노트를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와 보았는데요, ‘Scrap paper’는 ‘종이 조각’이나 ‘이면지’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scrap’은 종이, 옷감 등의 ‘조각’을 뜻하거나, ‘폐기하다, 버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폐지를 종이 ‘조각’으로 보고, 완성체가 되지 못한 채 떨어져서 나온 조각들을 이용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수놓으려고 했습니다.
하늘 위 우리가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태양의 생존 주기는 약 100억 년 정도라고 합니다. 태양은 연료로 자신의 수소 기체를 다 소모하면 핵반응이 뒤따르면서 적색거성(red giant)이 됩니다. 그다음, 죽어가는 태양이 엄청난 열에너지를 방출하면 지구의 대양은 증발하고 대기권은 파괴되며 지표면의 모든 것들은 녹아버립니다. 그리고 태양 자신이 가진 모든 연료를 소모하게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백색왜성(white dwarf)이 되고, 결국 흑색왜성(black dwarf)이 되어 광대한 우주 속에 한 점으로 남게 됩니다.
영원할 것 같은 태양도 시간이 지나면 밤하늘의 별이 되고 어디에선가 버려진 폐지도 밤하늘의 별이 됩니다. ‘Scrap paper’의 또 다른 뜻인 ‘이면지’는 재사용 가능한 종이로도 읽히지만 저는 남겨진 종이 조각이라는 잉여 물질이 밤하늘의 별이 됨으로써 ‘이면’을 대치되는 풍경으로 읽어보려고 했습니다. 본인에게 먼지, 입자, 폐지는 어떤 본체의 부산물이자 조각이고 이것들은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것은 우주를 감싸고 있는 우주 먼지가 가시광선을 흡수하여 밤하늘을 어둡게 보이게 하기 때문인 것처럼, 종이 조각도 비록 완성체가 되지 못한 채 남겨졌지만, 우리 삶은 결국 이런 것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작가노트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요. 고레에다 히로가츠의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로 인해 열두 살의 장남 아키라, 둘째 교코, 셋째 시게루, 그리고 막내인 유키까지 네 명의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데요, 아키라는 동생들을 돌보며 헤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어린아이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데, 영화를 볼수록 연약해 보이는 이 아이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은 결코 나약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만의 생활 방식을 터득해 내고,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소우주들이 모여 대우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사회에서 먼지처럼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이지만 이들은 결국 비체와 같은 존재가 아닌 우리의 일부이고,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 세상의 모든 예술가 중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지. 그리고 만약 그 사람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어떤 한 사람을 콕 집어서 만나보고 싶다기보다는, 작년에 결혼하고 해외로 이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저와 비슷한 길을 겪어본 분들에게서 작업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에 대해 인생 조언과 이런저런 작업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볍게 커피 한잔하고 싶습니다.(웃음) 여성 작가로서 결혼, 출산 등을 병행하면서 작가 생활까지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해 나갈 수 있을지가 현재 저로서 가장 큰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