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뒤엎는 한국의 블랙
갤러리 비선재 《 Paint it black 》, 9월 10일까지 개최
서울시 용산구 갤러리 비선재에서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걸어온 한국 작가들의 블랙 회화를 선보이는 5인전 《 Paint it black 》을 9월 10일까지 개최한다.
흑백 회화의 역사는 서구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며, 동아시아에서 한나라까지 적용된다. 그러나 블랙의 단순한 평면 회화, 즉 추상화로서의 블랙은 <밤에 이루어진 검은 싸움>(1882)으로 프랑스 작가 필 빌호드(1854 –1933)가 무려 27세 때 그렸다. 그 후로는 말레비치(1879-1935)가 그린 전설적인 <검은 사각형>이라는 작품 등 블랙의 전면적 추상회화는 서구 역사에서 아주 많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이러한 서구 역사의 진행 과정과 길을 달리한다. 26-7세일 때, 한국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청년미술연립전>을 주도했던 최명영(1941-) 작가는 파리비엔날레의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하여 유럽의 사회적 분위기를 몸소 체험했다. 그 결과 현대성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전통과 신성에 반대하고 세속적 문물을 만드는 것이 유럽 현대성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동료 작가 신기옥 역시 우리만의 현대미술을 만들자는 의지가 강했다. 김호득은 서울대 진학 당시 이미 두각을 나타냈으며 서양화와 동양화를 모두 구사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인재였다. 작가는 결국 동양화를 선택했고, 일필휘지나 기운생동과 같은 동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미학적 담론에 천착했다. 미국 버클리와 하버드를 졸업한 최두남 작가는 자연으로 귀결되는 요소로 환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안미자는 깨달음이나 청정한 마음이라는 동아시아적 수행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전시 제목은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가 1966년 발표하여 출세작이 된 <Paint it black>이라는 노래에서 빌렸다. 이 노래는 ‘현대적 태도(modern attitude)’를 대변한다. 인도 악기 시타르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서구적 가치와 방법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스며있다. 현대는 새로운 사유 방법을 찾는 끝없는 모색에 자기의 존재가치를 표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를 추구하는 세대는 전통을 불신하며, 세속화한 신성에 만족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를 단색으로 그려야만 했던 시대적 분위기와 끝없는 모색에 고난과 환희를 동시에 느꼈던 개인의 실존에 관한 의미를 재검토한다. 우리나라의 추상회화가 서구 미술을 이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발아한 식생은 그것과 다르게 성장했고 독자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미술이 우리만의 토대와 식생을 구축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숨은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