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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재 금태경' - 금태경 감독 1

[발굴! 독립영화 감독 ②]

by 데일리아트
흥행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독립영화
영화 메세지가 사회에 어떤 의미로 전달이 될까 고민하는 게 독립영화의 가치

영화를 보는 것은 쉽다. 그냥 극장에 가서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심심할 때 먹는 팝콘과 콜라가 있으면 더 좋다. 팝콘과 콜라는 어쩌면 영화 감상이 눈으로만 보는 것이기에 무료해지기 쉬워, 오감 중 시각과 손 운동(먹기 위한 손놀림)을 곁들이려는 최소한의 도구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극장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우리의 모든 취미와 문화 활동 중 가장 손쉬운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끝 장면, 엔딩 씬이 나오고 영화 제작한 사람들의 이름이 자막에 올라올 때면 가끔 놀라게 된다. 그리고 어떨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다고... 그렇다. 보기는 쉬워도 영화만큼 손 많이 가고 자본 많이 투입되는 문화 산업도 드물다. 그것은 거꾸로 얘기하면 영화를 만드는 일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등장하는 배우는 그렇다 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고생하는 사람들의 중심에 독립영화 감독이 있다. 그들은 무작정 영화판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누가 사서 고생하라고 했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마음에 저미는 감동을 느끼게도 되고, 살면서 힘이 되는 모멘트를 경험하기도 한다. 독립영화 감독, 그들은 누구인가?


데일리아트는 《발굴! 독립영화 감독》코너를 이어가려고 한다. 아무래도 이들은 우리 문화의 한 영역을 감당하는 아이콘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전주로 내려간다. 전주에서 고군분투하는 금태경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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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전주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금태경이면서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으로 협회를 운영하고 있는 박영완이라고 합니다. 저는 금태경이면서 박영완입니다.


- 그냥 잘 알려진 대로 금태경 감독으로 부르겠다. 금태경 감독은 어쩌다가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나?


전주에 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가지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영화나 방송 이런 쪽은 저와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제가 군대에 가기 전에 <신기전>이라는 영화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를 한 번 했습니다. 그렇게 영화 현장에서 며칠 동안 있다 보니까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있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군대를 갔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있을 때 신기전을 틀어줘서 봤는데, 거기에서 제가 나오더라고요. 많은 부대원들이랑 내가 나오는 장면을 열심히 찾으면서 봤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현장이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전역을 하면 대학에 영화과가 있는 학교에 편입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전역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과로 편입 준비를 하게 된 거죠.

1410_3064_5431.jpg 영화 현장에서 금태경 감독

그러다가 운이 좋게 시험에 붙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영화가 제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그 다름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영화로 전달을 한다.' 이게 저한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을 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남들은 4년 과정이지만 저는 편입해서 2년 밖에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2년 동안 이 친구들과 똑같이, 아니 더 성장을 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보다 조금 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졸업 영화가 이제 영화제에서 상영이 되면서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지금까지 영화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1410_3068_5648.jpg 영화 '영화 영재 금태경'의 한 장면. 그는 이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을 같이 했다.

- 금태경 감독이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독립영화는 말 그대로 독립 영화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보통 독립이라고 하면 혼자서 산다, 자립 같은 개념이 좀 크잖아요. 근데 영화도 혼자서 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독립영화라고 생각을 해요. 상업영화에서는 영화를 찍을 때도 산업적인 구조를 이해해야 되고 결론적으로는 이걸로 흥행을 할 수 있는지 걱정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포기를 해야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근데 그러지 않고 영화를 찍는것이 독립영화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서 산업 구조에 방해를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독립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통한 메세지가 사회에 어떤 유효한 의미로 전달이 될까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독립영화의 가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되겠죠. 다양한 사회적 공부들을 많이 하면서 그 시대를 반영하는, 시의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독립영화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1410_3065_550.jpg 영화제에서 인삿말을 하는 금태경 감독

- 영화감독 ‘금태경'과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박영완’ , 두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금태경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이전에 본명인 박영완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 영화제나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독’ 박영완이 아닌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박영완으로 소개가 되고 보도 자료 등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작업을 협회와는 분리시킬 필요성이 느껴졌고, 감독의 정체성을 위해 따로 예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금태경이라는 이름의 뜻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웃음) 어머니가 철학관까지 가서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그렇게까지 거창한 뜻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도 박씨인 제가 왜 금씨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느냐면, 그때 <내 딸, 금사월>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드라마에 나오는 금사월이라는 캐릭터에서 금 씨를 따왔다고 하더라고요. 금 씨로 해야 일이 잘 풀린다나 뭐라나. (웃음) 그래서 금 씨가 되었습니다.


- 영화 감독과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두 개의 이름과 두 개의 삶은 어떤가?


영화감독으로 있을때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어 상영을 하는 게 목표였죠. 주로 창작자 영역에서 나의 영화를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위치였죠. 반면 전북독립영화협회를 운영하는 이사장의 위치는 동료 영화인에게 제작의 도움을 주고, 영화에 대한 교육도 진행을 하면서 지역에 있는 영화 생태계를 보존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역의 영화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나아가서 국내 영화, 독립영화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1410_3066_5527.jpg 영화 촬영 중 스탭 및 배우들과 함께.

-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을 거 같다.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위치에 있으니 쉽지 않았을 것인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아무래도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창작 활동에 조금 버거움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창작 활동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는데 제가 이사장으로 일한 게 지금 6년째거든요. 그러면서도 창작을 하고 싶어서 단편 영화들을 꾸준히 계속 찍었어요. 근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편집을 못하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2년 전에 그동안 찍었던 단편 영화 3편을 묶어서 옴니버스 장편으로 만들게 되었죠. 그래서 <영화 영재 금태경>이 탄생했습니다.

1410_3067_5557.jpg '영화영재 금태경' 중 한 장면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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