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물감 속 휘몰아치는 삶의 숨결, 영은미술관 심현희 개인전
영은미술관, 심현희 작가 개인전《생의 한가운데 In the Middle of Life》 개최
삶의 모든 것은 들숨과 날숨의 과정이다. 이제 막 숨을 내쉬었다. 그다음은?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나답게 호흡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물감 덩어리들의 강렬함과 이미지의 고요함이 감상자의 내면을 잠시라도 훑고 지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작가노트 중
영은미술관 4전시실에서 심현희 작가의 개인전 《생의 한가운데 In the Middle of Life》를 9월 22일까지 개최한다. 작가는 힘이 느껴지는 붓 터치와 함께 캔버스 천 위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담는다. 사실적 묘사의 결과물이 아닌 풍경화는 작가의 예술혼을 전달하며 감상자에 따라 직관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삶의 근본적 가치를 성찰하고 개개인의 존재를 고찰한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표면에 두껍게 발린 마티에르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굳어서 갈라진 틈을 발견할 수 있다.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틈 사이로 보이는 물감층은 균열의 흔적을 발견하게 만들며 붓들의 아우성을 표현한다. 각기 다른 시간이 누적된 레이어는 회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안한다.
작가의 작품을 따라 발길을 안쪽으로 옮겨보면,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사운드는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이자 작품과 공간 전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여, 예술이 가진 힘과 본질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삶은 표면적으로 다 다른 모양을 갖고 있으나, 뼈대 즉 근본은 모두가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불행과 행복, 어두움과 빛, 죽음과 탄생처럼 이원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인생은 그리 명료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삶의 반대편으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양면의 성질을 동반하며, 작가는 이들의 중간지점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야말로 인생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 에너지, 연기, 그리고 생동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풍경처럼 자연의 힘에서 시작된 숭고미는 혼란과 무질서로 감정을 유발하고, 개인의 실존과 존재에 대해 상기하게 만든다.
심현희 작가는 가로 폭만 9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를 광목 천 그대로 전시장에 걸었다. 본연의 형태와 질감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천은 벽에 기대 자체적인 힘으로 견디고 있으며, 중간중간 늘어진 부분까지도 물성을 표현한다. 기존의 미학에 도전하여 이성의 재단을 피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우연의 힘에 의지하여 화폭을 채우게 한다. 황혼 안에는 낮게 가라앉은 구름과 비정형의 나뭇가지가 엉겨 붙어 그들의 관계를 시각화하고, 주변엔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붉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늘어진 천에 담긴 정신적 풍경은 보는 이의 감정 속 깊은 뿌리를 흔들면서 내면의 불안정성을 끄집어내고, 회화에 대한 다양한 길을 제안하면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