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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나타난 복숭아의 도발(桃發)

by 데일리아트
서양인은 복숭아를 어떻게 그렸을까?
니콜라스 파티《더스트》전, 호암미술관 8월 31일부터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복숭아를 벽사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과일로 여겼다. 이러한 복숭아는 중국의 도교 사상과 함께 우리나라의 세시 풍습, 민간 신앙, 예술 등에 전해졌다. 조선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복숭아 나뭇가지를 끓인 물로 목욕하며 전염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고 『수운잡방(需雲雜方)』에는 술이나 식초를 담근 뒤에 음식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숭아 나뭇가지로 저으라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숭아는 '벽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복숭아는 귀신 쫓는 과일로 여겨져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았다.


197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에는 이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이 유행가처럼 불린 적이 있다. 여기에서 동방삭은 중국의 고대 전한 무제 시대의 실제 역사 인물로, 중국 설화에서 서왕모의 곤륜산에서 자라는 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게 된 인물이다. 한 갑자가 60년이고 삼천갑자이니 18만 년을 살게 된 것이다. 동방삭이 탐낸 곤륜산의 복숭아는 옛 그림에 등장한다.

〈요지연도(瑤池宴圖)〉는 도교의 여신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곤륜산의 연못 요지(瑤池)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중국 주나라 목왕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푸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1443_3224_4113.jpg 요지연도 병풍, 조선 19세기 전후. 156x504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1443_3231_852.jpg '요지연도' 병풍 부분도. 곤륜산의 복숭아를 나눠 주고 있는 모습.

이와 유사한 성격의 그림으로 <일월반도도(日月蟠桃圖)>가 있다. <일월반도도>는 왕을 상징하는 붉은 해와 왕비를 상징하는 흰 달, 천도와 산, 바다의 물결을 대칭적으로 배치하였다.

1443_3226_4537.jpg 일월반도도 병풍, 조선. 각 273.8x3332.8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러한 구도는 어좌 뒤에 세워졌던 <일월오봉도> 병풍과도 유사하다. 이처럼 궁중에서는 신선들이 머무는 땅에 불로장생의 복숭아가 담긴 그림을 그리며 국가의 오랜 번영을 기원하였다.


복숭아 도상은 민간에서도 민화, 백자 연적, 나전칠기 문서함 등 공예품과 일상생활에 쓰이는 기물에 그려지며 즐겨 사용되었다.

1443_3186_5917.png 나전칠기 가께수리(금고, 문서함) 윗면, 조선. 가로 33cm, 세로 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443_3187_5933.png 백자청화복숭아모양 연적, 조선. 높이 10.5cm, 몸통지름 10.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443_3228_5853.jpg 책거리 민화 병풍 일부, 조선. 32.2x131cm.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민화 〈책거리〉는 조선 후기 문방사우 등 책과 관련한 기물을 그린 그림으로 그림의 주인이 애호하고 다산, 출세 등을 염원하는 길상의 상징물들을 담아 장식적으로 사용되었다. 먹이 공중에 떠 있고 책의 패턴이 현대적이며 디자인적 요소가 보인다. 이 그림에서 복숭아는 청화백자 접시 위에 부처님의 손을 닮아 복을 상징하는 불수감(佛手柑)과 함께 그려져 현세의 장수를 기원하였다.


복숭아의 모습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연상하게 하여 번성과 풍요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통 안료의 색상표에서 분홍색을 도색(桃色)이라 표현하는데, 분홍색은 사랑과 애정을 뜻한다. 복숭아를 소재로 작업을 하는 현대 작품을 살펴보겠다.


1443_3233_2223.jpg 고은진, peach Planet 1,2. 2022. 한지 위에 혼합 재료, 각 100x100cm.

고은진 작가는 복숭아의 벽사, 치유, 장수의 전통적인 상징성에서 확대하여 복숭아 열매의 시작이라 할 씨앗에서 생명의 잉태를 이야기한다. 씨앗 부분을 확대해서 바라보면 여성의 몸에서 생명이 잉태되는 시작점인 여근(女根)을 연상시킨다. 옛 조선시대 고지도 산맥처럼 표현한 작품과 산맥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부감한 듯 표현한 작품은 자연 생명의 토대가 되는 뾰족하게 솟은 푸른 땅과 푸른 빛을 발산해 내는 물줄기를 복숭아 씨앗에 투영하여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1443_3193_440.png 니콜라스 파티, 복숭아 있는 초상, 2024.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150x109.9cm.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제공. 사진: Adam Reich ©니콜라스 파티.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는 호암미술관 개인전을 위한 신작으로 한국 고미술에 나타난 복숭아 나무가 담긴 초상화를 그렸다. 작가는 동서양, 근현대를 아우르며 미술사 속 모티브와 같은 문화적 상징을 자유롭게 참조하여 작가만의 개성적인 화면을 만들어낸다. 파스텔로 제작하여 재료가 주는 특성은 주제로 연결된다. 즉, 가루로 이루어져 날아가 흩어지는 특성은 존재하지만, 곧 사라질 것에 대한 암시, 불완전성을 생각하게 한다. 복숭아가 가득한 신비로운 세계에 한 여인이 무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어 구상적인 그림이지만 비현실적이며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그림은 8월 31일부터 호암미술관(경기 용인)에서 개최하는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암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과 함께 병치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 동서고금이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기대해도 좋겠다.


기자는 <요지연도> 속 복숭아 모양과 비슷한 안동에서 자란 복숭아를 찾았다. 옛그림 속에 나타난 복숭아 도상을 살펴보면서, 신선들이 반도를 먹던 기분으로 현실에서도 달콤한 인생을 바라며 한입 베어물어 본다. 무더웠던 여름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여름의 끝에서 복숭아를 맛보며 현실 세계에서 각자의 유토피아를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1443_3192_27.png 그림 속 복숭아와 실제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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