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색감과 초현실적 구성
세화미술관에서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의 대규모 회고전《제임스 로젠퀴스트: 유니버스》가 오는 9월 2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로젠퀴스트 작품을 총망라하며, 그의 회화와 콜라주, 아카이브 자료 등을 선보인다.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팝아트 거장 로젠퀴스트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중요한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등과 함께 팝 아트의 선두에 섰던 로젠퀴스트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작품들은 현대 미술의 경계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회는 그가 60년 넘게 탐구해온 회화, 콜라주,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그의 예술적 여정을 보여준다.
로젠퀴스트의 작품은 상업적 예술 기법을 뛰어넘어 ‘시각적 시(poetry)’를 창조하며, 대중적 이미지와 일상적인 오브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옥외 광고판 화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형 작품을 제작하면서 형성된 기념비적인 스타일은 팝 아트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워홀의 실크스크린,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적 표현과 비교할 때, 로젠퀴스트의 작업은 더욱 복잡한 서사 구조와 추상적 탐구를 통해 팝 아트를 초현실주의와 결합시켰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제작된 전시 작품들은 매끄러운 색감과 거대한 크기로 압도한다.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서 초현실적인 화면 구성과 색감으로 변모했고, 이는 관람객이 전시 동선을 따라 가며 우주의 신비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로젠퀴스트의 후기 작업 중 하나인 였다. 이 작품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파괴적인 역사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로젠퀴스트는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여기, 우리는 자연에 있고, 우주의 신비가 주변에 있다. 이러한 미스터리를 그리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그가 펼쳐낸 우주적 상상력과 그 속에 담긴 미스터리를 마주할 수 있다.
'오늘의 메뉴 /디너스페셜' : 1991년 작품인 '오늘의 메뉴'는 색맹테스트를 떠올리는 이미지다. 작가는 색맹테스트에서 착안해서 우리가 본다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반문하며 더 넓은 자연, 우주 세계로 나아간다.
한편, 로젠퀴스트 회고전 연계 토크가 8월 31일 열렸으며, 그의 아내이자 재단 디렉터 ‘미미 톰슨’과 미술평론가 ‘임근준’이 참여해 작품 이해를 도왔다.
전시 연계 토크(2024년 8월 31일, 세화미술관)
대담자: 미미 톰슨(이하 미미), 임근준(이하 임)
임: 로젠퀴스트 작품은 소탈하다 할까, 인간미 넘치는 미국 중서부 사람의 특징이 보이는 듯하다. 그의 문화적 배경은 어떠한가?
미미: 로젠퀴스트가 태어난 노스다코다와 미네소타는 지역적으로 광활한 곳입니다. 마치 다른 우주에 사는 듯한 환경이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의 기념비적 크기의 작품들은 이러한 열린 시공간의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임: 어머니와 삼촌이 파일럿이었고 아버지도 항공기술자였다. 이런 집안 환경이 영향을 주었나?
미미: 말씀하신 것처럼 로젠퀴스트는 지상에서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어려서부터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익숙했습니다. 그의 작품이 거대한 서사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임: 부부가 작은 배를 타고 여행한 기억이 있다고 하는데.
미미: 로젠퀴스트와 저는 아이들이 타는 작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저녁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었습니다. 그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이 배를 공기역학적으로 수정하면 비행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창의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죠.
임: 팝 아트가 미술 운동으로 본격화된 것은 1962년이다. 로젠퀴스트는 이미 1960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미: 추상표현주의 이후, 작가들이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들을 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이 1956년에 팝 아트로 평가받는 작품을 시작했는데, 이후 뉴욕으로 팝 아트가 전해졌습니다. 저희는 로젠퀴스트가 최초라고 하지 않고 작가들 간의 협업으로 진행됐다고 생각합니다.
임: 앨런 캐프로(아상블라주 예술가이며, 해프닝을 시도한 행위 예술의 선구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런 영향으로 새로운 인공 환경을 만들어서 관객들이 경험하도록 했다.
미미: 로젠퀴스트는 예술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총체적 환경 구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경험의 시공간'이라는 개념 하에 관객들이 작품을 뚫고 지나가는 경험을 하도록 했습니다. 대표 작품인 에서는 풍선이나 등불을 이용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으며, 관객들이 ‘창조적인 경험’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마일라 필름(폴리에스터필름의 일종)으로 커튼을 만들어 몰입적인 환경을 조성했고, 이는 전통적인 캔버스에서 벗어난 실험이었습니다.
임: 로젠퀴스트의 대표작품은 이다. 이 작품의 의미는?
미미: 은 단순히 군산 복합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며 회화의 정치적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둘째, 당시 베트남 전쟁 뉴스를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점을 비판하고, 대중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정치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투기는 다른 우주로 가는 모티브로, 로젠퀴스트의 이후 작품에 등장하는 멀티버스와 공간 이동에 대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임: 로젠퀴스트는 회화의 힘을 믿었는가? 그는 “내 작품을 보는 데 필요한 것은 당신의 직관과 태양뿐”이라 했는데, 이 말은 모네를 떠올리게 한다.
미미: 로젠퀴스트는 전통적인 오일 페인팅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전체 작품의 90%가 오일 페인팅으로, 이를 통해 본인의 에너지를 투영했습니다. 그는 작품에 시간을 쏟은 만큼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믿었으며, 작가의 에너지가 작품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아이디어뿐 아니라 회화 작업은 육체적 흔적이라고 믿었습니다.
임: 로젠퀴스트는 사회비판적 태도를 유지했다. 특징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포장된 인형8번, 클로드 드뷔시의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1992). 작가는 상점 선반 위 셀로판으로 포장된 인형이 누군가는 그토록 사고 싶어하는 인형이지만, 그것이 AIDS를 떠올리게 했다. 작가는 AIDS와 성적 친밀함의 위험성에 대한 은유를 담은 연작으로 미래 세대에 메시지를 전한다.
'데일리 초상화'(Daley Portait, 1968).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시카고 시장 데일리(Daley)는 과격한 언행으로 시위대를 부추겼다. 마일라 필름에 유화로 그린 이 작품은 세로로 길게 잘려 있다.
미미: <인형> 작품과 <데일리 초상화>를 들 수 있습니다. 비닐에 싸인 인형은 당시 AIDS에 대한 공포로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표현합니다. <데일리 초상화>는 마일라 필름으로 제작되어 바람에 의해 이미지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큰 권력을 가진 사람도 작은 바람에 흔들릴 수 있음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임: 인형 작품은 딸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들었다. 작품을 봤을 때 딸의 반응은 어땠나?
미미: 작품이 만들어졌을 때 딸은 다섯 살 정도였고, 인형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녀는 인형을 좋아하지 않았죠. 그러나 10대가 되어서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로젠퀴스트는 딸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고, AIDS로 인해 타인과의 접촉을 두려워했던 시기가 계속된다면, 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임: 로젠퀴스트는 시간과 공간,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지상의 시각이 아니라 새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우주적 비전에 도달했다.
미미: 모든 예술가들의 특징은 매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망상 비전에 있습니다. 로젠퀴스트는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과학에 몰입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꿈꿨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임: 다른 팝아티스트들과의 관계는 어땠나?
미미: 팝아티스트들은 서로 친했습니다. 당시 미술계가 작아서 서로 지지하고 작품을 공유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큐레이터가 작가보다 영향력이 큰 것 같고, 거대 갤러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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