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기획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하반기 현대미술기획전《Space》2025년 2월 23일까지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일상과 예술이 이제는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문화예술계가 온통 키아프와 프리즈로 들떠있는 지금, 용산에서는 새롭고 이상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올 여름 휴가철에 이용했던 수영장이 빌딩 지하에 들어섰다. 그런데 실용적 가치는 없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하는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으로 하는 수영이 아니다. 보기만 하는 수영장이다. 수영장에 물이 없다.
수영장에서 조금 더 걸으면 이제는 40평형대의 세련된 집이 우리를 맞는다. 현관에는 말라비틀어진 꽃다발이, 거울에는 낙서인 듯한 글귀가 적혀있다. '다시는 보지 말자.' 뭘 보지 말자는 걸까? 나를? 당신을? 거실에는 주인인 양 사람이 있다. 가까이 보니 소년 조각상이다. 그 소년은 창에 입김을 불어 'i'(나)라는 글씨를 쓴다. 이런 것들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아직 보지 않았다면 섣부른 판단은 금지.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풍경이다.
이런 기묘한 작품을 전시한 작가는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이다. 그들은 1995년 엘름그린&드라그셋을 결성했다. 작품을 보고 이런 것을 누가 보느냐는 걱정은 금물이다.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은 이미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들은 미술과 건축 분야 등을 넘나들며 이미 200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 등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가들이다. 세계 곳곳의 공공장소에서의 설치 작품도 주목을 받는다. 그들은 일정한 주제의 작품을 설치한다. "지금 당신이 믿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작품 아닌 작품을 설치한다. 반전의 미학이다. 수영장, 집안의 거실이 어떻게 작품이 될까? 그런데 그들의 작품이 전시되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전시작품을 돌아다니면서 관람객은 이상하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생각들을 갖게 된다는 역설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작품을 보면 대본을 받지 못한 채 촬영장에 도착한 주연 배우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연 배우가 돼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감정이 어떤지 알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대본을 받지 못한 주연 배우로 돌아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이뿐 아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한 남성이 위태롭게 줄에 매달려 있다. 〈What' Left'〉, 주방과 실험실을 결합한 공간인 〈Untitled(the kitchen)〉, 〈The Amorepacific Pool'〉등 모두 규모의 미학을 보여주는 엄청난 작품들이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안내원이 제지하지 않아서 좋다. 사진도 맘대로 찍어서 좋다. 조용하지 않아도 된다. 제일 좋은 점은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수영장에, 남의 집에 아무 부담 없이 가는 듯하다. 규모로 볼 때 지난해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 이상이다. 전시는 충분하게 기간이 남아 있다. 2025년 2월 23일까지. 성인 18,000원, 학생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