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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묵향에 우정이 물들고 인생이 익어간다-연서회 2

[同好同樂 ③]

by 데일리아트
《연서회 창립 50주년 기념 전시회》과천시민회관 마루, 9월 4일부터 7일까지
1475_3338_250.jpg 50주년 기념 전시회 출품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연서회 회원들

올해로 창립 50주년 을 맞아 기념 전시회를 하는 숭실대학교 서예반 《연서회》 회원들의 인터뷰를 이어간다.


- 멤버들과는 주로 어떻게 지내나? 그리고 서예와 우정의 관계가 좀 닮은 면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고길철 회원(86학번): 내가 학교에 다닐 때인 80년대 후반에는 연서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여학우들이 많았다. 다 현모양처 감이었다. 남학생들이 가만히 두었겠나?(웃음) 복학한 선배들이 눈독을 많이 들인것 같다. 복학한 81학번 선배들이 86학번 여학생들을 많이 차지했다. 결혼한 커플이 많다. 나도 86학번인데 헛물만 켰다. 연서회 활동을 하다가 군에 갔는데 용택이 형과 장운상이 무전 여행을 하다가 나를 찾아왔다. 아무 대책없이 군대 생활하는 나를 찾아 양평 용문까지 그야말로 무전으로 온 것이다. 그때 병장 월급이 4,500원이었다. 그래서 내가 치킨집에 데리고 가서 아주머니에게 외상으로 먹였다. 그런데 정말 집에 갈 차비도 없다는 것이다.

1475_3341_1650.jpg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


1475_3342_1710.jpg 20대의 풋풋했던 연서회 회원들의 외모는 이렇게 변했다. 그런데 표정은 젊을 때보다 밝고 여유롭다

용문에서 상봉동 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하는데 버스 기사에게 사정해서 그냥 태워 보내고 상봉동에 사는 후배 여학생에게 전화해서 차비 가지고 나오라 했다. 기사에게 후불 차비를 준 적도 있다. 우리들 관계에 대한 단적인 에피소드이다. 우리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도 같이 연락하며 붓글씨를 쓰면서 지낸다.


참 이상한 것은 처음에 글을 쓰면 글씨가 균형이 맞지 않고 엉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먹을 갈아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글씨가 눈에서 확 열리는 순간이 있다. 엉성했던 글씨가 균형이 맞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의 풋풋함도 좋지만 누구나 젊었을 때는 모든 것이 서툴지 않나? 그러나 서예처럼 자꾸 글씨를 쓰다보면 글씨가 눈에 열리는 것이 보이듯이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서 뒤틀리고 엉성했던 관계의 아귀가 서로에 의해 맞춰지고 익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더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앞으로의 우리모임 연서회가 기대가 되고 참 좋다.


- 정기 모임은 어떻게 하나?

1475_3343_1744.png 1984년 연서회 10주년 기념전시회 세종문화회관 전시회 개막식 테이프 컷팅모습.맨 왼쪽이 사무국장 유세현씨이다

고길철 회원(86학번): 특별한 정기 모임은 없고 1년에 한 번 연서회 졸업한 사람들 모여서 전시회를 한다. 재학생들은 봄과 가을에 교내 스윙갤러리라는 곳에서 한다. 연서회 졸업생들 모임 이름이 '숭예림'이다. 1년에 1, 2회 전시회 할 때 모인다. 올해는 창립 50주년이지만 전시회 회수로는 90회가 넘는다. 우리들 중 가장 잘 모이는 86학번은 연서회 지도 강사 원명환 교수가 운영하는 석오서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모이는데 14명이나 모인다. 특히 86학번은 1년에 한 번 독자적인 정기 전시회로 그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 서예를 하면서 가장 좋은점은 무엇인가?

1475_3339_433.jpg 글을 쓰다 보면 글귀에 글 쓰는 사람이 동화된다.

유세현 사무국장(83학번): 글씨를 쓰다 보면 글 내용이 좋아 저절로 그 내용에 감화된다. 지금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서예 인구가 는다는 말을 들었다. 서예는 생활 예술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적인 사람들은 줄었지만, 동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고령화 사회가 되다 보니 서예 인구가 많아지는 점도 있을 것이다. 글씨를 쓰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고 몰입감과 집중력이 생긴다. 서예와 그림은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이다. 더불어 이런 동호회 전시회를 통해서 더불어 함께하는 공감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인격 수양으로도 좋고 개인주의 사회에서 주변 사람 구애 안 받고 혼자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의 흐름과도 맞는다. 그래서 MZ 세대에게도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는 경험을 한다. 글씨 조형의 미학적인 안목이 열린다고 할까? 남이 안 하는 글씨를 쓰다 보니 만족감, 자존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서예를 하는것 같다.


- 서예도 시간이 지나면서 전에 하던 방식과는 차이가 많을 것 같다.


원명환 회원(86학번): 나는 2009년부터 숙대에서 동아리를 지도하고있다. 물론 2002년부터 연서회를 지도하고 있다. 과거의 서예는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예전에는 예술적인 부분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실용성이다. 어쩌면 가장 시대에 역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느림의 미학 아닌가? 자기 나름대로 수양을 쌓아 가는 부분, 자기는 남이 안하는 서예를 한다는 호기심 같은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서예 배워서 뭐 할거냐고 하지만, 글씨 쓰면서 자기를 가다듬는 수양적인 면과 전통을 지킨다는 면에서 보면 참으로 권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475_3344_244.jpg 1기생 73세 안희찬 회원의 작품


1475_3345_2414.jpg 막내 윤중현(22세) 회원 작품

지금은 전통적인 서예보다 켈리그라피라도 인기가 많다. 예전에는 화선지에 검은 먹을 사용한다면 지금은 다양한 색깔의 먹을 쓴다. 먹을 쓰기도 하고 아크릴 물감이나 한국화 물감을 사용하기도 한다. 지금은 서실에서 먹이나 붓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면봉이나 칡뿌리로도 붓을 대신하여 글씨를 쓴다. 2002년 월드컵 때에 화제가 되었던 '붉은 악마' 글씨도 붓이 아니라 칡뿌리를 사용해서 쓴 글씨이다. 술 브랜드인 '참이슬'과 '화요'도 붓글씨를 그대로 로고화 했다. 영화 타이틀, 드라마 타이틀, 북 아트 등 의외로 서예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많다. 지금은 붓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 취미로 해서 서예 작가나 서예 유관 방면으로 나간 사람들도 있을것 같다.


원명환 회원(86학번): 미협 초대작가 된 사람들도 많다. 신종진 선생은 연서회 출신인데 인천미술대전 초대작가이다. 재민선배(미협초대작가,74학번)를 비롯해서 서예 학원하는 사람이 많고, 우리 학교 부총장 류희욱도 83학번인데 연서회 멤버이다. 그외에 서예 작가들은 부지기수이다.

1475_3346_415.jpg 9월4일 개막한 50주년 전시회 전경


1475_3347_4119.jpg 연서회 포스터를 붙이는 회원

- 이번 연서회 창립 50주년 전시회 소개를 부탁한다.


원명환 회원(86학번): 이번 전시회는 과천시민회관 '마루'에서 한다. 9월 4일부터 7일까지.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못 모인 코로나 기간 3년 빼고는 50년 동안 쉼 없이 계속했다. 30명이 참여해서 40점 이상 전시를 한다. 막내가 22살이고 73살 되신 분이 최고 선배이다. 약 50년 차이이다.


- 연서회의 앞으로의 바람은 무엇이 있을까?


유세현 사무국장(83학번): 50년 동안 지켜온 근본 마음(인의예지신)을 쭉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그동안 창립회원으로 왕성히 활동하다가몇 해전 고인이 된 조경훈 선배를 기억한다. 그 선배처럼 마음으로 글씨를 써 가면서 문자 이면에 담겨 있는 큰 뜻을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연서회 회원 모두가 글의 안목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회원들이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기쁘게 서로 우정을 쌓아가며 살았으면 좋겠다. 긴 시간 좋은 지면을 할애해 준 데일리아트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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