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리뷰]
진짜 벙커는 어디에
유지은 감독의 <벙커2>는 월남전 참전 용사인 최 노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최 노인은 더블백을 챙겨 집 근처의 벙커로 내려가 김 하사에게 ‘김정은 암살 작전’을 시작할 것을 지시한다. 작전은 김 하사가 트렁크에 실어둔 다이너마이트를 김정은 주변으로 가져가면 최 노인이 원격으로 폭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벙커 안으로 쥐 한 마리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꼬인다.
최 노인은 쥐를 잡기 위해 덫을 두기도 하고, 벙커 안에 유독 가스를 풀기도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쓰러진다. 이때 김 하사의 다급한 통신이 들린다. 지금 당장 기폭 장치를 눌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 노인은 아침에 보건소 직원이 건넨 초콜릿을 떠올린다. 쓰러질 것 같을 때 초콜릿을 먹으라는 그녀의 조언을 기억하고 최 노인은 힘겹게 초콜릿을 삼킨 뒤 작전을 마무리한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마음씨 넓은 택시 기사인 김 하사가 최 노인을 상대해 주기 위해 꾸민 상황극이다. 실제로 그가 치열하게 벌인 전투는 벙커에 들어온 ‘쥐 한 마리’를 잡기 위한 사투에 불과했다. 이처럼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월남전의 여파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지만 이것이 <벙커2>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벙커 속의 쥐
벙커는 최 노인이 믿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으로 출현한 쥐 한 마리는 최 노인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그는 중대한 작전을 앞두고 있지만 쥐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갖은 방법을 다 써보지만 결국 쥐를 잡지 못하고 자신만 다쳐갈 뿐이다. 이런 무의미한 사투에서 쥐가 사실은 최 노인의 ‘내면의 두려움’이 한데 뭉쳐져 생겨난 환상이 아닐지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최 노인은 쥐를 잡으며 베트남어로 “이 쥐새끼 같은 베트콩 빨갱이들”이라고 중얼거린다. 최 노인이 월남전 참전 용사임을 고려해 봤을 때 쥐는 그의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전쟁의 트라우마이자 타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상징이다. 영화 속에서 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최 노인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시각적으로 상징화한다.
문제는 최 노인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 스스로 타자와의 고립을 선택하며 몸을 밀어 넣었던 공간이 이제는 실체 없는 고통과 끝없이 싸워야 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순간 벙커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총과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그곳은 이제 가장 안전한 공간이 아닌 가장 ‘위험한’ 공간이다. 믿었던 공간의 배신은 최 노인에게는 치명적이다. ‘벙커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벙커 안’에도 있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바탕 쥐와 사투를 벌이고 쓰러진 최 노인은 보건소 직원의 방문에 깨어난다. 자신에게 초콜릿을 주어 임무 성공을 도왔던 그 직원이다. 그녀를 본 최 노인은 스스로 그 벙커에서 나오기로 결심한다. 벙커에서 나오기까지 최 노인은 "바깥으로 나갔는데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매복해 있으면 어쩌지!", "혹여나 이 벙커가 노출되면 어쩌지!" 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 노인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보건소 직원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가 건넨 초콜릿의 달콤했던 감각을 믿어보기로 한다.
바깥은 최 노인이 상상했던 풍경처럼 전쟁이 임박한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그저 평온하고 따뜻한 보통의 날이 펼쳐져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최 노인은 자신을 숨게 했던 타자에 의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더 이상 그곳에 쥐는 없다. 타자와의 온기를 나누는 최 노인에게 이제 벙커란 ‘벙커 바깥’이다.
거대 담론과 개인
월남전에 참전한 용사들은 자기 자신을 희생해 가며 나라를 위해 싸웠다. 전쟁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외화 벌이를 하고 후손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그들을 전쟁으로 이끌었다. 전쟁의 과정에서도 군대의 일원으로 열심히 뛰었다.
이제 전쟁은 끝났지만 소외되었던 개인은 여전히 거대 담론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벗어나려고자 해도 강렬했던 전쟁의 경험이 만들어낸 사고의 습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삶에도 적극 개입하여 가상의 적을 만들게 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삼게 한다. 이런 거대 담론 속에서의 개인은 최 노인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판문점 선언’이라는 거대한 이념적 사건과 최 노인 한 사람의 개인적 지병을 함께 등장시킨다. 최 노인이 정작 돌봐야 할 것은 자신의 인슐린 수치이지만 그는 ‘평화’, ‘안보’, ‘판문점 선언’과 같은 거대한 담론을 염려하고 있다. 그의 집 벽면에는 빼곡하게 국가의 안보를 다루는 기사의 스크랩들이 붙어 있으며 밥을 먹다가도 김정은의 얼굴이 나오면 뚝배기를 텔레비전에 던져버린다.
이런 최 노인을 거대 담론의 폭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보건소 직원이다. 영화에서도 최 노인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 긴장감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다가도 보건소 직원이 그에게 다가가는 순간 평온하고 활기찬 음악으로 바뀐다. 그녀는 최 노인에게 찾아가 그의 개인적인 삶을 걱정해 준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며 묻고 그의 손에 초콜릿을 쥐여 준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다. 소외된 개인은 결국 타자를 통해 구출된다.
물론 최 노인은 벙커 바깥으로 나왔지만 종종 다시 벙커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쩌면 ‘벙커 2’의 성능을 뛰어넘는 ‘벙커 3’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건소 직원이 다시 그를 찾아온다면 그는 다시 한 번 벙커 바깥으로 나와 잠시라도 거대 담론의 폭력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것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
요즘 들어 자주 쓰이는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집 밖으로 나가면 골치 아픈 일들을 겪게 되니 집안에만 있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최근 한국 사회는 성별, 세대, 지역으로 나뉘어 서로를 혐오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받게 되는 상처와 혐오에서 벗어나 안전한 ‘나만의 공간’인 집에만 있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혐오로 얼룩진 사회지만 여전히 우리 곁엔 ‘보건소 직원’과도 같은 따뜻함을 지닌 사람들이 남아있다. 나의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기도 할 그 사람들이 거대 담론들이 만들어낸 혐오에서 우리를 끌어내 숨 쉬게 할 ‘진짜 벙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