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해외미술관을 가다 2
오랜 시간을 담은 한정식의 성소’, 스페인 프라도미술관①
(최영식 미술에디터 취재)
지난 기사에서는 서울에서 동쪽으로 1만킬로 떨어진 뉴욕의 미술관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그 반대방향 서쪽으로 1만킬로 떨어진 스페인 마드리드의 미술관을 찾아가본다.
코로나 이후 급증한 여행을 지칭하는 단어로 “리벤지 트레블(revenge travel)”이 쓰인다. 한국인에게 “리벤지”하고 싶은 국가를 꼽으라면 스페인은 첫손가락 앞에 있을 듯하다.
<스페인관광청, 자표출처 INE>
방문객수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2023년 1~5월까지 167,202명이 스페인을 방문했으며, 이 수치는 2022년 전체방문객의 92.7%다. 한국에서 스페인을 운항하는 항공사는 직항, 경유를 포함 총 22곳으로(B여행사 자료) ‘대한민국 마드리드시(市), 바로셀로나시(市)’라 부를 만하다.
각자의 가슴속마다 스페인으로 가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우리는 예술애호가다. 이코노미석에서 열네시간을 낑낑거리고 가야 할 만큼 멋지고 황홀한 예술품이 스페인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한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처럼 우리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Museo del Prado)’을 향해 달려간다.
(프라도미술관은 원칙적으로 작품촬영을 금지한다. 본 기사의 작품사진은 프라도미술관 홈페이지 이미지를 사용한다.)
우리는 어느 지역의 3대 음식, 3대 절경 등 3분법에 익숙하다. 아니, 우리뿐 아니라 플라톤의 3분법(통치자, 수호자, 생산자), 칸트의 3대비판(순수, 실천, 판단력) 등 세계적 철학자 역시 3분법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다. 왠지 하나만 뽑기에는 위험부담이 있고, 더 많은 숫자를 나열하면 신뢰성에 의문부호가 붙기 때문 아닐까? 그런 점에서 유럽 3대 미술관을 꼽아보면 런던 내셔널갤러리, 파리 르부르박물관 그리고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3분법이 되겠다.
여기서 이번 기사의 제목이 왜 한정식인지를 이야기해보자. 뷔페가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다양성의 풍요로움’이 장점이라면 한가지 음식에 집중하는 노포(老鋪)는 역사와 맛이 공존하는 장소라 하겠다. 내셔널갤러리와 르부르박물관이 소장품의 다양한 시기와 지역으로 뷔페와 같은 풍성함을 준다면, 프라도미술관은 서울의 오래된 설렁탕집이나 추어탕집처럼 자신이 오랫동안 잘하는 것을 우리에게 맛 보여준다.
프라도가 세계에서 제일 크거나 완벽한 미술관은 아니지만 가장 열정적인 곳이며, 광범위하기보다는 집중적이며 심도 있는 작품들을 갖춘 미술관임에 틀림없다. 프라도미술관은 1819년11월19일 왕립회화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프라도에는 두가지 특징이 있는데 당시 국왕 페르난도7세가 추진하고 후원한 결과물로, 왕립이지만 프라도는 소수의 귀족과 왕족, 성직자만이 즐길 수 있었던 귀중한 예술품을 일반 국민들도 즐길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현대미술관의 모두가 즐기는 감상과 상통한다. 두번째 프라도 미술관의 특징은 모든 시대와 장소, 예술세계의 각 동향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모아 놓은 미술 백과사전 같은 곳이 아니다. 또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같은 곳으로부터 타의로 기부(?) 받은 수집품이 즐비한 곳도 아니다. 프라도의 전시는 벨라스케스, 고야 같은 스페인 화가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프라도는 그래서 오랜 시간을 담은 한정식의 성소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고, 스페인 미술에 자체에 집중한 상태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 예약은 15분단위로 신청된다. 기자가 찾았던 2024년3월은 비가 내리는 평일 오전 11시임에도 이미 대기줄이 상당했다.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가 뒤섞여 들린 입장객들을 따라 들어간 기자에게 가장 먼저 들어온 장면은 우리가 익숙한 바로, 깃발을 들고 있는 단체관광객들이다.
수많은 한국관광객들에게 프라도 미술관을 설명했을 나이 지긋하신 가이드가 관광객들을 제일 먼저 인솔한 곳, 그곳이 궁금해서 기자도 단체관광객인양 따라가 봤다.
뜻밖에도 그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플랑드르의 화가 보스(Jeroen van Aken, 보스는 고향이름을 딴 별명)의 <쾌락의 정원, 1500-05>이 있는 방이었다.
처음엔 가이드분의 선택에 어리둥절했으나, 플랑드르미술이 스페인 미술관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탁월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 그림은 세 폭의 제단화로 왼쪽과 오른쪽 날개는 평일에는 접었다가 주일에 펼친다. 왼쪽그림은 천상, 중앙은 현세의 모습이며 오른쪽은 지옥을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 상당히 난해하다. 난해함의 이유는 보스의 후원자가 국왕이나 귀족이었던 점에서 출발한다. 당시 네델란드의 통치권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2세에게 있었으며, 따라서 스페인과 네델란드 사이에 귀족들의 왕래가 잦아졌고 많은 스페인사람들이 플랑드르에서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 <쾌락의 정원> 역시 나사우의 엥겔브레히트 2세가 주문한 작품이다.
우리는 친절한 관광가이드의 설명을 통해서 이 그림의 의미를 알 수 있지만, 당시 일반인들이 이해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그를 해석할 만한 이해력을 갖춘 엘리트만이 후원자가 될 수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천여점의 회화중 <쾌락의 정원>은 네델란드가 16세기부터 스페인령이 되었다는 정치적 배경 아래 기존 고딕식 회화의 장식적이고 상징적인 도상 대신에 인간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실감나게 재현한 네델란드회화의 특징이 잘 표현되있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통해 당시 발전한 네델란드 사회상을 훌륭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프라도에는 보스뿐 아니라 네델란드 화가들인 루벤스(Rubens), 피터 브뤼헐(Pieter Bruegel)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지금은 네델란드와 스페인의 각각 다른 국가이지만 그 당시는 스페인국왕이 통치하던 네델란드였다. 그림 자체는 종교적 교훈을 설파하고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역사와 네델란드 사회상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프라도에서 첫 걸음에 만나 볼 가치는 충분했다.
보스는 인간의 타락과 그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은 타락하고 절망하고 그러다 기뻐하는 물리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 자체가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를 희구하고 되고자 하는 모방하는 존재다. 플라톤이 본체계, 이데아의 세계와 그것을 1차 모방한 우리가 사는 현상계로 구분했다면, 회화가 모방이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직관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 같은 모방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지다.
같은 모방이지만 그리스철학에서 시(詩)와 회화는 비교대상이 되는데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추상적인 모방인 반면 회화는 육체를 사용하는 즉각적 모방으로 회화는 그리스부터 중세까지 리버럴 아츠(인문학, liberal arts)로 대접받지 못했다.
이 리버럴 아츠에 들어가지 못했던 영역의 종사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리버럴 아츠에 끼워넣으려는 노력은 눈물겨웠다. 회화가 리버럴 아츠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이데아 vs 모방한 회화)이 깨져야 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역설적이게도 같은 스펠링 idea였다. 플라톤의 idea는 본체계 ‘이데아’였으나 르네상스에 와서는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아이디어)으로 변한 것, 이데아개념의 주관화 또는 이데아개념의 심리화가 차츰 등장한다. 마음의 이미지, 심상이 디자인으로 디자인이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이제 미술가들은 원근법, 해부학 등 모든 것에 지식을 갖고 있는 천재, 르네상스맨이 됨으로써 회화를 리버럴 아츠에 진입시키는 현실적 목표에 도달한다.
보스가 그려낸 인간의 한계와 경고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자신만만 20대 청년 독일의 뒤러(Albrecht Durer)에게서 발견한다. 화가, 판화가, 미술 이론가인 뒤러는 유럽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이다.
그의 26세 자화상을 보자.
이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 첫 느낌은 “아… 작다”였다. 그러나 52센티의 작은 크기가 52미터의 숭고함으로 나를 덮쳐오는 데는 일초면 충분했다.
뒤러의 눈에서, 입에서 손에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넘치는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자부심에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뒤러의 사실적 묘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람의 아이디어를 정확한 모방을 통해서 모방이 정확하면 그걸 보면서 우리가 세상을 배울 수 있다는 그 정확함이 그림 전체에 드러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분자감’(분명한 자신감)이랄까? 섬세한 머릿결과 21세기 패셔니스타를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옷, 손에 낀 흰 장갑을 통해 부와 명성 권위를 갖춘 르네상스시대 화가이자 인문학자인 20대 청년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이 그림이 위대한 또 하나의 요소는 그림 오른쪽 뒤러의 글과 서명이다. 글은 “나 알프레드 뒤러는 내가 보는 관점으로 나를 그렸다”로, 내가 보는 관점 즉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차적인 모방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아이디어)으로 그린(리버럴 아츠) 르네상스맨의 넘치는 자신감이다.
청년 뒤러의 자신감을 봤다면, 르네상스맨을 말할 때 이탈리아의 이 분을 빠뜨릴 수 없다.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성격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인싸’인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6세기 피렌체와 로마에는 일반인에게 ‘전성기 르네상스’로 알려진 아주 강렬하고 짧은 예술 사조가 존재했다. 약 20년동안 존재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린때부터 시작하여 1520년 라파엘로가 요절하면서 막을 내렸다. 원래는 100년 전 토스카나에서 발생한 인본주의 문화가 이때에 와서 꽃을 피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절정을 보여준 라파엘로는 당대의 가장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뒤러가 포르테(Forte)를 연주했다면, 라파엘로는 레가토(Legato) 창법이랄까?
수많은 초상화를 남긴 라파엘로의 두드러진 점은 다빈치의 해부학적 면밀한 실체 묘사보다는 완벽한 미의 표현에 있다. 그의 초상화는 ‘실제 인물보다 더 사실적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사실적이라는 말은 정확한 묘사라는 뜻도 있지만, 대상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이상, 아이디어를 정해놓고 그 가치를 미로 얘기하면서 정확성에서 출발하되 자연과 세계를 완성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을 포함한다.
이 그림을 보자.
그림 제목은 <추기경>이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신비에 싸인 이 인물은 라파엘로가 사실보다(실제 인물) 더 사실적인 추기경, 르네상스 시대 고위 성직자의 이상형으로 그려낸 인물상이다. 이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 보니, 옷 단추의 매무세가 흐려졌다. 오히려 한발짝 물러설수록 옷의 구김과 매무새가 더 선명해지는데 정교한 붓터치와 조화로 르네상의 이상을 대표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가까이 보아야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라파엘로의 그림은 “조금 떨어져 보아야 아름다운 조화”가 선명해진다.
21세기 대한민국 미인성형이 이탈리아 매너리즘 회화처럼 “이 사람의 코와 저 사람의 눈을 떼어서 여기저기서 본 사람의 얼굴을 토대로 미를 표현할 거야”로 기괴한 섞음의 성형을 하고 있다면, 라파엘로는 자신의 아이디어(Art of Design)에 근거해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조화롭게 분석했다.
물과 기름이 한 그릇에 담겨있을 때 조화롭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저 같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감수성을 지닌 지성적인 주체로 세상과 인간의 조화를 보여준 르네상스맨의 절정에 이 그림이 있다.
다음편에는 프라도가 집중한 스페인화가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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