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일리아트 Jul 19. 2024

꽃지에서

[사진가의 펜으로 보는 세상]

꽃지에서 
자화상(꽃지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동시에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포함되는 듯하다.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495번 고속도로를 통해 등하교 하면서 사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인화지에 옮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접 운전을 하기 보다는 기차나 혹은 버스를 이용하는 여행에 매력을  느낀다. 생각의 몰입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들도 온전하게 감상 할 수 있고 또 그 풍경을, 소재들을 통해서 내가 구사하려는 언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버스를 타고 꽃지 해수욕장을 간적이 있었다. 딱히 어떤 사진을 찍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바닷가를 걷는 것도 좋았고 해서 카메라를 메고 늦은 오후를 그 곳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문득 두 개의 작은 섬이 겹쳐 보이는 장소에 햇살이 비추고 그 햇살이 다시 물결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완전한 은색이었다. 나는 그 상상 속 같은 풍경으로 들어가 자화상을 찍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은색의 물결 속으로 걸어가 리모컨을 누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히 가늠은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풍경에서 거의 비몽사몽이었기에. 멀리에서 내게 비켜달라는 소리가 원망과 거의 협박처럼 들려왔다. 그때 까지는 몰랐다, 거기가 일몰 사진의 성지라는 사실을. 내가 바라다본 풍경은 정말 재미있었다. 사진클럽 같은 사람들 10여명 이상이 한 곳에 모여 카메라를 일제히 설치하고 지는 해를 찍고 있었다. 그러니 저들 사이에서 나는 방해자임이 분명했다.


그들의 대화가 얼핏 들려왔다, “여기 조리개는 어떻게 놓아야 하나요?” 그 순간 나는 정말로 말하고 싶어졌다. “왜 다들 고생하시나요, 그냥 한 사람이 찍어서 나누어 주시면 될 것을” 그러고 보면 수학의 공식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사진은 취미인 이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렇지만 사진이 취미인 그들을 존중하고 또 방해자가 되기에는 약한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물론 내가 필요로 하는 사진은 이미 완성시킨 후에.


이 들로 인하여 나는 나의 40년 전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저렇게 몰려다니며 함께 사진을 찍었었나. 그러나 나는 비교적 그러지는 못한 것 같다. 체질적으로 단체여행을 싫어하는데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진을 찍는 행위가 대상과의 대화로 여겼기 때문이며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니 지금도 늘 혼자 여행을 즐긴다. 마치 나의 사진에 제삼자가 끼어서는, 그 삼자가 이 대화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나만의 철칙인 것이다.


섬의 뒤편에서 해가 바다로 잠기기 시작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군상들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뒤에서 그들을 응시하고 마침내 태양이 물에 잠기고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2024년 3월


참조: 사진제목: Self Portrait (꽃지에서)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