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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습니다

[젊은 그들이 온다 ③] 작곡가 손일훈- 내 음악이 필요한 곳에서

by 데일리아트


청년들이 온다. 미술, 연극, 음악, 문학, 연구 활동 등 모든 문화예술계에서 청년 전문가들이 몰려 오고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분야는 달라도 모두 '청년'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는 '젊음'을 하나의 '장르'로도 볼 수도 있겠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약간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이 언뜻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미완성은 무한한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읊은 도종환의 시처럼 이 세상의 어떤 꽃도 흔들리 않고 피는 꽃은 없었다. 이미 장년에 접어든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는 다 그랬다. 그래서 이들의 공통점은 미숙함이 아니라 찬란함이다.

데일리아트는 이런 청년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각기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들은 지금 흔들리지만 곧은 가지를 갖기 위해 쭉쭉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가고 있다. 이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며 연재를 시작한다. 큐레이터, 음악인, 연극인, 청년 학자, 배우, 도슨트 등 직업과 관계 없이 젊음이라는 장르로 묶어 모두 취재하고자 한다. 지면과 여력이 허락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다. 지금 이들의 약진은 장년 세대들의 배후에서 이미 ' ing형'이다. 이들의 치열한 삶이 있는 곳, 문화 예술 현장으로 간다.
오늘은 마포문화재단 'M클래식 축제'에서 한참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작곡가 손일훈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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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 조성현과 함께, 오른쪽이 손일훈 작곡가
- 이번에 마포문화재단의 'M클래식 축제'에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것을 축하한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음악으로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작곡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대의 음악 기록자'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그리고 작곡가로서 다양한 음악가들과 함께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공연을 만드는 게 재미있고 좋아서 계속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손일훈입니다.

- 경쟁이 치열한 곳이 음악 세계인데 활발하게 전문 영역을 넓혀가는 손일훈 작곡가에게 국내 클래식계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음악을 자신의 길로 선택한 과정이 궁금하다.

중학교에 다닐때, 교실 뒤편에서 학급 게시판을 보고 있는데 흥미로운 공문을 보았어요. 예술고등학교에서 일반 중학생을 대상으로 음악 교육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음악을 전공할 생각은 없지만, 어렸을 때 피아노를 남들만큼 배우긴 했으니… 뭐 어때? 이런 생각으로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음악을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은 이전부터 내가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을 알고 계셔서 방과 후 음악실을 사용하는 것도 흔쾌히 허락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한번 도전하고 싶다는 나에게 작곡 분야에 지원해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게 전문 음악인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습니다. 다음 날까지 네 마디의 짧은 멜로디를 작곡해 오라고 하셨는데, 음표도 거꾸로 그리고, 음자리표 위치도 틀린 형편 없는 악보였지만, 선생님은 음악 자체는 나름 괜찮다며 칭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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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친구들과 함께, 뒷줄 맨 오른쪽이 손일훈 작곡가
그렇게 해서 운 좋게 오디션을 통과했고,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작곡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중학생 시절 직업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라 더욱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뛰어난 친구들과 선후배를 수없이 만나며 음악을 배웠어요. 내 음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도 곁에는 항상 본질이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바로 잡아주는 선생님과 동료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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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튤립 가득한 꽃밭에서 손일훈 작곡가
- 공부 잘하고 맡겨진 일을 똑소리나게 하는 사람들은 한 편으로는 인간미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자신이 걸어온 길이 치열하다는 건데 손감독도 그동안 음악인으로서 걸어온 길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연주와 경쟁을 통과해서 이 자리에 이르렀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럴 때마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

질문이 재밌네요. 공교롭게도 요즘은 내가 인간미가 없는 사람인가 되돌아보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데 일처리 중심으로 사람들과 연락하다 보니, 간단한 안부와 필요한 이야기만 해서 놓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젊어서 그런지 아직은 없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순간들은 항상 힘들었던것 같네요. 신작을 작곡하는 것과 리허설, 새로운 공연을 기획할 때, 처음 만나는 사람들, 새로운 나라 등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늘 암시를 줍니다. 모든 것을 내가 잘 풀어내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를 우선적으로 여겨서인지 경쟁 구도로 보이는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극복하는 편입니다. 작곡가와 연주자는 서로 협업하는 관계고, 작곡가끼리는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죠. 작곡가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는데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고, 청중이 무슨 음악을 들을지 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취향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견딜 만한 스트레스’인것 같네요.

어떨 때는 내가 곡이 아니라 괴물을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방법으로 갔으면 편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하는데 ‘새로운 도전’을 마치고 나면, 나의 영역이 조금 더 넓어져서 뿌듯합니다.

- 손 감독은 국내에서 영재들만 들어 간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네덜란드 헤이그왕립음악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한예종'과 '왕립음악원' 학창 시절이 궁금하다.

내가 다녔던 시절을 기준으로 두 학교를 비교한다면, 한예종은 육식 동물이 잠복하는 정글이고, 헤이그 왕립음악원은 초식 동물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원이었어요. 한예종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예비학교(현 영재원)를 다녔고, 그 치열한 분위기 속에서 뛰어난 음악가를 수도 없이 만났고 정말 유학을 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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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왕립국악원 교수님들과 손일훈 작곡가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갖는 ‘첫 도시가 최고의 도시’ 라는 경험처럼 헤이그는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헤이그는 현대음악과 클래식, 바로크, 재즈, 무용,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찾아와요. 유럽에 있으면서도 미국과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고,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운이 좋게도 이곳에 와서 공부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예술과 삶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예종에서 음악가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을 갖췄다면, 왕립음악원에서는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한 자세를 배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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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 '리듬 폭탄' 초연을 마치고
- 손감독은 '음악적 유희 시리즈(Musical Game Series)'로 주목을 받았다. 그 중에서 <스무고개(20 Questions)>, <리듬폭탄>은 해외에서 화제가 되었고 국내에서는 '3분 관현악'을 통해 <윷놀이 - 모 아니면 도 >가 주목을 받았다. 이런 실험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스무고개>는 유학을 떠난 2014년, 서양 음악을 하는 한국인 작곡가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 번뜩 등장한 행운의 아이디어였습니다. 한국인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게임인데 음악에 적용한 곡이 있다면 한국적 컨셉도 되고 또 재미있겠다 싶어서, 만국 공통 게임인 스무고개를 음악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즉흥적이고 우연성이 돋보이면서도 형식이 분명한 것을 만들었어요.

네덜란드에서 이 작품을 발표한 날 그들의 반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음악에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공연 중에 환호한 사람도 있었는데 과분한 관심과 응원을 받으면서 이 영역을 더 탐구하고 싶더군요. 그 후 몇 차례 더 발표하다 보니 ‘음악적 유희’가 나를 대변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 전통 악기 및 연주자의 제약 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작품, 게다가 모두가 공연장에서 바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저의 ‘음악적 유희’는 공연장을 경기장으로 바꿔 감상과 웃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스무고개>는 오는 11월 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앙상블 소리'의 '동방신곡 프로젝트#9. 작곡가 손일훈의 질문과 명상' 공연에서 연주됩니다.

- 이번에 마포문화재단 'M클래식 축제'의 예술감독 취임을 축하한다. 예술감독은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그리고 이번 행사에 대한 소개와 연주 곡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예술감독은 기획팀과 함께 공연 디자인부터 섭외까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일을 하는데 감독의 유무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훌륭한 기획팀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그래야 비로소 예술감독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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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바 산맥으로 연결된 보헤미아의 숲
축제의 제목을 《보헤미안의 숲에서》라고 지었는데요. 보헤미아 숲은 체코와 독일,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공유하며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는 지역입니다. '슈마바'라는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죠. 독일인들은 '바바리아의 숲'이라고 하고 체코인은 '보헤미아의 숲'이라고 합니다. 드보르작도 보헤미아의 숲으로 곡을 만들기도 했죠. 보헤미아 숲은 여러 지역과 맞닿아 있어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문화 교류가 활발한 곳입니다. 마포아트센터와 이미지가 비슷해서 제목을 《보헤미안의 숲에서》라고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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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의 숲에서
보헤미아 음악은 몬티의 <차르다시>,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비제의 <카르멘>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집시의 선율과 그 영향을 받은 수많은 음악은 물론이고, 보헤미안 지역의 음악가들(드보르작, 스메타나, 피비히, 야나체크, 마르티누 등)의 음악이 포함됩니다.

보헤미아 음악에는 자유와 낭만을 추구하는 예술가적 정신이 곡에 스며 있습니다. 늘 마음 한편에 어딘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듯이 구슬픈 선율로 마음을 건드리는 명곡들이죠. 영원한 방랑자 슈베르트나 말러의 음악, 더 넓히면 푸치니의 <라보엠>부터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헤미안 음악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그만큼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 클래식의 저변이 많이 확대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바른 연주 감상의 팁이랄까? 많은 문화 행사가 이어지는 이 가을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클래식의 좋은 점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

우선 클래식은 어려운게 맞습니다. 한번 듣고 빠지는 곡이 있고, 여러 번 들어야, 아니면 한참 뒤에서야 몰입되는 곡들도 있어요. 클래식을 즐기려면 지식을 습득하듯이 욕심내서 독파하기 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공연장에 와서 그저 눈과 귀를 무대에 맡겨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편안하게 하며 듣는 것이 제일입니다. 듣다가 잠들어도 좋고,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종의 환기랄까. 연주자와 다른 감상자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하는 공연 매너가 있지만, 처음 클래식을 접하는 관객이 실수하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려고, 외우려고, 뽐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즐기세요. 그게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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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로테르담에서 '알렉산더의 향연' 초연을 마친 손일훈

-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음악에 도전하고 싶어요. 내 음악이 필요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습니다.

-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시대이다. 같은 젊은이로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의 메시지를 부탁한다.

작년 겨울 마포문화재단이 위촉하여 나태주 시인의 시 「소망」에 노래를 붙여 가곡을 발표했습니다.‘받고 싶은 마음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좋은 마음이다’라는 시의 내용이 참 좋습니다. 몸의 건강을 챙기듯 마음과 정신 건강도 잘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시의 내용처럼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좋은 마음을 베푸는 사람, 또 내가 베풀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고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따뜻한 세상을 만들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받고 싶은 마음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좋은 마음이다// 주고 나서 이내 잊어버리고/ 무엇을 또 주어야 하나/ 찾는 마음이 좋은 마음이다// 꽃을 보고서도 저것을 가져다/ 주었으면 하고/ 구름을 만나서도 저것을 데려다/ 주었으면 하는// 그 마음 뒤에 웃고 있는 네가/ 있음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거기 너 그렇게/ 웃고만 있거라/ 예뻐 있거라.

https://youtu.be/oaq5audi-Ks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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