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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를 그리다 - 이향남 작가 2

[작가의 아뜰리에 ⑦]

by 데일리아트


이향남의 여행과 함께하는 작품 설명

나는 13년 전에 아프리카를 세 번에 걸쳐 다녀왔고, 그 후 20명의 작가들 안내자로 아프리카를 다시 한 번 다녀왔다. 세 번에 걸친 아프리카 여행은 그 땅에 대한 궁금증과 체험하고픈 열망때문이었다. 여정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이 조금씩 풀리면서 장대하고 광활한 오지의 풍경에 압도당했다. 인간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곳은 삶에서 오는 부조리와 중압감을 벗어나 정신적 치유를 주었고, 인간 실체에 대해 사유하는 동기가 되었다. 끝없어 보이는 하늘과 광활한 대지와 초지의 동물들이 만나는 수평선은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낸 위대한 창조물이었다. 이러한 나의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 후 나는 작가들과 다시 찾았다.

나미비아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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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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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 life,2017,Oil on canvas,72.5x6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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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2)Nomad life,73x61cm,Oil on canvas,2015

이 작품은 아프리카의 종단 여행 중 나미비아의 사막에서 느꼈던 감정을 이입해서 그린 작품이다. 나미비아의 서쪽은 대서양 연안에 접해 있고, 영토의 대부분은 건조한 사막 지대이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해안가는 모래 둔덕들이 끝없이 형성돼 있고, 내륙도 건조한 날씨와 바람으로 모래 둔덕들이 넓게 펼쳐져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새벽녘 모래 둔덕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나 석양에 모래 산들이 겹겹이 보이는 오묘한 색깔은 사막 공기의 촉감과 함께 신비롭기가 이를 데 없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물인 앙상한 죽은 나무들과 군데군데 바람결에 흔들리는 힘없는 잡풀들의 생존에 대한 집요함. 생명체라곤 도저히 없을 것 같은 그 곳에 놀랍게도 오닉스는 유유자적하다. 누가 이곳을 죽은 사막이라 했던가. 모래 위와 밑에서는 온갖 생명체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현재 처한 삶에서 오는 무게감이 저 사막에서 사투하는 오닉스만 할까? 자연에 순응하며 본연의 생존을 지켜나가는 오닉스. 여행에 지친 나의 신발을 벗어 오닉스에게 신겨 본다. 그런 나를 응시하는 오닉스의 눈을 보며 현실적 상념들이 지나간다.

아프리카 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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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바오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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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 life, 2023, 혼합재료, 60X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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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Nomad life,2014,Oil on canvas,65x91cm,2014

케냐는 탄자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접경 지역 주변 거대한 초지에는 온갖 동물들이 서로 공존하며 먹이를 구하기 위한 생존의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 지역을 벗어나면 삭막하고 건조한 지형의 산들이 나타나고 또 이어진다.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 수분이 다 빠져나간 듯 한 나무들과 거친 돌들이 뒹구는 메마른 땅들만 보인다. 이러한 지형을 이동하는 중에 바오밥 나무를 마주했다. 군락지도 아니고 잡나무와 돌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오밥 나무는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어마어마한 둘레와 거칠고 단단한 느낌의 나무 기둥, 그 위로 수없는 잔가지들이 마치 우산살처럼 퍼져있는 모습, 주변 풍경과는 동떨어진 초현실적 나무 같았다. 마치 지구에 외계인이 나타난 것 같은 생경함이었다. 그렇게 이 나무는 유구한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신성시되기도 하는 바오밥 나무는, 평균 수명이 3,000년으로 꽃을 피우는 데 8년이 걸리며, 꽃부터 열매, 씨앗까지 유용하게 쓰인다. 바오밥 나무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인간들과 내가 얼마나 하찮은 미물 같은 존재인가 되새겨 보게 했다. 바오밥 나무를 그리고 또 그리는 동안, 이 나무의 특징을 다시 되새기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은 현재의 삶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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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남극이라는 단어와 남극 대륙에 대한 인식을 했던 것은 고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그때는 지구본 남쪽 끝에 선으로만 그어져 있는 지형을 보고, 멀고 아득한 곳으로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극에 대한 궁금증과 탐험의 욕구는 현실로 이어져, 2016년에 그곳을 향한 꿈이 현실이 되었다. 이틀 간의 긴 비행, 칠레 남쪽 끝 도시 우슈아이아에서 3일 간의 남극 크루즈로 파도가 높고 거칠기로 악명 높은 드레이크 해협을 지나, 꿈에 그리던 남극 대륙을 밟게 되었다.

남극은 해발 고도가 무려 2,500m 안팎이어서 지리학계는 남극고원이라고도 부른다. 남극 대륙 주변은 남극해가 둘러싸고 있는데 육지의 방해가 없어서 이곳의 해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다. 남극해의 거친 파도는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서 서핑을 위한 너울을 만들기도 한다.

남극의 대표적인 특징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는 점이다. 지역 자체가 바다도 아니고 유빙의 한계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보니 얼음들이 둥둥 떠다니거나 떨어져 나온 유빙을 볼 수도 있다. 우슈아이아에서 남극 크루즈로 출발하여 드레이크 해협이 가까워지자 날씨가 요동을 쳤다. 휘몰아치는 눈과 바람, 짙은 구름층의 회색 하늘, 무서우리만치 거칠고 높은 파도, 배의 흔들림과 함께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은 매우 컸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한편으로 극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짙은 회색빛의 검푸른 물살과 분노가 가득 찬 듯한 하늘 아래로 거대한 유빙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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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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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 life, 2017, Oil on canvas, 80x117cm
그 유빙은 푸르도록 시린 흰색으로,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한 빛을 발하며 도도하게 둥실거리고 있었다. 외계와 같은 초현실적 풍경은 그지없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 유빙을 타고 짙은 구름 속을 뚫고 들어가 또 다른 미지의 신세계를 탐험하고 싶었다. 위 그림은 그 찰나의 감정을 캔버스에 그린 것이다.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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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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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 life,2017,Oil on canvas,49.5X45.5cm


히말라야 산은 8,000m 이상의 고봉이 14개나 있는 산이다. 이 산은 카슈미르 근처에서 시작하여 인도, 파키스탄, 네팔, 부탄, 아프가니스탄, 중국 윈난 성, 태국 미얀마 지대를 아우르는 그야말로 지구의 지붕이라 불릴 만하다.

고봉 10위봉에 속하는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중앙부에 위치하고 수확의 여신이라 불리기도 한다. 늘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처음 갔을 때의 설렘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굽이굽이 산길을 돌 때마다 거대한 산맥 밑에 있는 계단식 밭에서 자라나는 곡식의 출렁임과 여러 가지 곡식들이 뿜어내는 색깔은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청명하다 못해 눈이 시린 하늘과 온몸으로 쏟아지는 햇볕은 나의 몸을 송두리째 자연에 맡긴 듯 했다.

숨이 목까지 찼을 때 마지막 능선을 오르니, 아, 이게 웬일인가! 거룩하기조차 한 360도 설원이 펼쳐지며 해발 4,20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가 거기 있었다. 앞만 보고 오르기만 했던 몇 날 며칠, 고통의 트레킹 끝에 펼쳐진 파노라마 설원의 감동에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숨이 멈출 듯한 풍경에 몸도 마음도 가눌 수가 없었다. 설원 광야에 혼자 멍하니 하염없이 서 있었다.

설원위의 깊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를 달고 날아간다면, 영겁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의 영역처럼 신비스러운 풍광에 신을 영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한 안나푸르나에서의 체험과 느낌들을 현실적 삶의 무게와 지향점에 이입해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해 보고자 했다. 창밖의 히말라야 산군과 안나푸르나를 향한 고난의 트레킹을 신발을 통해 승화시켰다.

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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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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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life, 2024, Oil on canvas, 세라믹, 한지, 91x91cm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빙하가 급속히 녹아내리는 북극의 민낯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습으로 익혔던 북극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발동이기도 했다.

비행기는 러시아 북쪽에 진입하면서 북극 항로를 지나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항공 노선은 북극점 쪽으로 더 이동해 갔다. 이때부터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항로는 북극점으로 가거나 특수 목적으로 가는 항공만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 항로였기 때문이다.

북극점은 자기장이 가장 센 곳이다. 이곳으로 진입하는 순간 자기장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장이 있어 지구는 태양열 속으로 흡수되지 않고 태양을 밀어낸다. 그래서 지구에서 인간이 거주할 수 있다.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인 화성에서 인간이 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의 자기장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체험들은 어린 시절 꿈이기도 했던 지구, 우주 어디든 가보리라 던 소망의 결과물이다. 나의 상징적 이미지이며 행적을 나타내는 신발과 이 감동의 장소들이 어우러진 그림을 그려 보았다. 북극의 유빙과 이누이트족의 극한 삶을 소재로 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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