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 위의 미술관- 천경자 편》 천경자를 노래함

by 데일리아트
천경자 차녀 수미타 김 교수 참석
40여 명의 신청자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원색'과 '용기'를 심어준 답사
1810_4216_5427.jpg

"길 위의 미술관: 천경자 편" 의 해설을 맡은 김경수 연구원. 열정적인 강의로 관람객들에게 천경자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천경자를 노래함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이다 - 詩 박경리

1810_4221_5746.jpg

이번 "길 위의 미술관: 천경자 편"에는 40여 명이 넘는 신청자가 참석했다.

《길 위의 미술관》 두 번째로 ‘ 좀 고약한 예술가’ 천경자 편에 또 합류했다.

서울 토박이로 광화문 십자각 지하도가 있을 무렵에도 근방을 밤낮없이 지나다녔다. 나이 들어서는 뭐 좋은 게 있다고 저렇게 서촌을 부르짖는지 모르겠네... 하기도 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요즘은 또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가보라고 대놓고 손가락으로 서촌을 가리킨다. '길 위의 미술관'이 준 선물 같은 늦바람이 요즘 듣는 양희은씨의 노래 가사처럼 ‘…참 좋다.'

1810_4227_215.jpg

천경자 화백의 차녀 수미타 김 교수님과.

천경자를 모르는 사람이 흔하진 않을 테지만 나는 참 몰랐다. 관심 없었다. 그녀의 그림이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다. 화려한 건 나랑 맞지 않았고, 내 취향은 고상한 무채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탐방을 시작하기 전 있었던 김경수 연구원의 강의가 있기 전까지 그랬다. 강의 후 내 마음은 변했다. 천경자의 그림이 한 장 한 장 넘어가자 색채를 입힌다는 것에 눈이 확 떠졌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강의장을 나오면서는 갑자기 색채로 뒤덮인 옷을 내 몸에 착 걸쳐보고 싶어졌다. 천경자의 채색화에 단단히 마음을 뺏긴 게 틀림이 없다.

이번 길위의 미술관 짦은 여정에는 마침 차녀이신 수미타 김 화백이 내방해 주셔셔 좋았다. 어머니 곁 제일 가까이 모신 분이라니 궁금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그림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진정성'과 '독창성'이라는 답을 받았다. 진정성과 독창성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역시나 자하문로 서촌길은 여전히 또 봐도 맘에 쏙 들어서 곁에 두고 싶었다. 대로 변에는 자주 나타나는 외국 관광객들이 골목 안으로는 왠지 일체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광화문 큰 길가를 걸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길 위의 미술관》 기획이 한국 예술가의 흔적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좀 더 확장돼서 그 역할을 하게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810_4229_845.jpg

김경수 연구원이 천경자의 삶과 작품 세계를 강의했다.


1810_4224_017.jpg

어머니의 삶과 그림 세계를 설명하는 수미타 김 교수. 뒤의 작품 모델이 차녀 수미타 김이다. 참 많이 닮았다.

1810_4230_110.jpg

김정두 연구원의 삽화. 어머니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용기'

이번 탐방 길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천경자와 당대의 주목받는 문인들이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름 석자만 들어도 가슴 쿵쾅거리고 전설이 되어버린 시인과 소설가들. 그들이 느껴지는 서울의 종로, 자하문로를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만했다.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필운동, 통인동, 궁정동, 효자동,청운동. 동네 이름과 그 길을 걷던 문인, 화가들 이름만 그대로 나열해 놔도 한 편의 詩가 완성된다. 동네 이름을 없애고 도로명으로 바꾸어버린 행정을 대놓고 따져묻고 싶어진다.

1810_4219_5644.jpg

천경자는 같은 홍대 교수 이상범의 권유로 바로 그 옆집에서 살았다.

필운대로를 따라걷다 옥인동 안쪽을 들어가 보면 청전 이상범의 화실로도 유명한 한옥 청전화숙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맞은 편 작은 이층집. 지금은 개조를 해서 당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천경자가 살았다. 이 시기 그려진 그림을 소개했을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면을 다시 봤다. 너무 예쁜 그림이라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그림에서 행복하다는 화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집에서 살던 시기 천경자의 그림은 최고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아...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천경자와 그가 살던 집은 없어졌지만 그의 그림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 일대는 지금도 개발되고 리모델링 되고 있는 중인가보다.

2000년대 초 이 일대에 개발 붐이 일면서 많은 예술혼의 흔적들이 사라졌다. 노벨문학상이 나오는 이 나라에 그런 흔적쯤 모른 척 놔두고 봐주면 안될까.

1810_4220_5717.jpg

10월 19일 수성동 계곡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

마지막 일정인 마을버스 9번 종점 수성동계곡을 가기 전 이중섭이 살았었다는 골목길 끝 집도 문앞까지 가볼 수 있었다. 이번 여정에서 소중하게 받은 팁은 화가 천경자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던 이중섭, 노천명, 박경리, 화가 이상범 등을 과분하게 듣고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성동 계곡은 전날의 비 온 끝이라 그런지 물소리가 맑고 나무가 여름 끝인데도 파릇이 다 살아있어 보였다. 오는 11월 11일. 천경자 화백 탄생 100주년이다. 고향 고흥, 서울시립미슬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으니 지금의 충만한 마음으로 조용한 날 찾아가 봐야겠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10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슨트 김은비 2 - 미술은 서로의 세상을 열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