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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김은비 2 - 미술은 서로의 세상을 열어주는 것

[젊은 그들이 온다 ④]

by 데일리아트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도슨트가 되고 싶어
작품을 가볍게 즐기는 문화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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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비콘 미술관 사진. 뉴욕 근교까지 미술을 보기위해 갔어요.

- 미술 관람객을 많이 접했을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술 수준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미국에 사는 이모가 오라고 해서 뉴욕박물관을 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광경인데,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쓰고 질문하고 스케치하는 과정을 보면서 '아, 미술을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안 될까? 우리나라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있는데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미술 관련 논문에도 상상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논문에 넣는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저는 외국과 비교할 것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사람들은 문화 활동에 비용을 많이 지출합니다. 그리고 즐깁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동네사람들이 와서 미술관을 마실 가듯 그냥 봅니다. 우리나라는 좋다고 확인된 작품에만 몰립니다. 그래서 저변이 확대되지 않습니다. 돈 버는 작가들만 벌고 특정 작가, 특정 작품만 봅니다.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게 즐기는 문화가 좋을 것 같습니다.

서양은 오히려 미술 수준이 낮은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학습을 통해서 외우고 공부를 합니다. 겸재 정선이 좋은 것이 아니라 좋다고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의 안목에 의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은 뭔가 경직된 것이 아닐까요?

서양은 너무 다양하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하는데, 우리는 이것만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작품을 한 번 보면 모릅니다. 모르면 답답한데 그 답답함을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아는 것 밖에 못보는 측면도 있는 것이거든요.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 보고 그것을 해소하면서 보는 방법. 그러니 나는 답답한 것을 자신에게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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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장에대해 더 공부해 보고자 홍콩 아트바젤도 다녀왔어요.

- 도슨트에게 미술은 무엇인가? 미술에 대한 정의는?

최근 《서양미술 800년전》을 '더 현대서울'에서 했는데, '미술이란 무엇이냐'로 맺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미술은 인간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로를 원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손을 잡아주고, 어깨가 축 처진 사람에게는 '힘내. 고생 했어'라고 하면서 용기를 주기도 하고, 마음이 어두운 사람에게는 미술을 통해 마음이 밝아지게도 만듭니다. 배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시선으로 본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알려주는 것. 내가 전에 몰랐던 세상을 열어주는 것. 그렇게 보면 미술은 그것을 통해 서로의 세상을 열어 주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예술가의 세상을 내가 몰랐는데 작품을 통해 세상을 열어주고 서로의 세계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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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전

- 어느 수준에서 해설을 하는가?

해설을 하다 보면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 사람이 혹시 미술사 교수가 아닐까 생각하면 망칩니다. 그래서 저는 해설할 때 교수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이 알거야 하는 함정에 빠지면 현학적으로 해설하다가 어려움에 빠집니다. 살바도르 달리 전시를 하는데, 초현실주의에 대해서 얘기하니 하나도 모르더군요. 시민들은 초현실주의 그런 거 몰라도 됩니다. 그들은 내가 공감하는 것. 나만 좋아하는 것만 들어요. 저도 사람들 앞에서 내 지식을 뽐내려고하는 것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완벽한 정답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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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아트 페어 도슨트 사진

- 본인이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나? 젊은이들이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대이다. 젊은이로서 이 땅의 같은 젊은이에게 한마디 한다면?

제가 후배 도슨트님들께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에요. “어떻게 버티셨어요?” 지금은 1세대 도슨트다 어쩌다 하며 저를 치켜세워 주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땐 그 누구도 도슨트가 직업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또 제 친구들도 이젠 취직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어요. 심지어 저희 부모님도 제가 서른이 넘어서까지 거의 백수라고 생각하셨을 거에요. 절 크게 압박하진 않으셨지만 넌지시 미술관 학예사 모집공고를 보여주곤 하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성공할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었고 제가 악착같이 버틴 적도 없었어요. 그냥 일을 계속 하고 싶었어요. 우스갯소리로 눈치 없고 큰 꿈도 없어서 지금껏 버텼나 생각하고 있어요.

2021년 OECD 통계 기준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자살율 1위, 행복 지수, 아동 행복 지수는 38개국 중 다 30위권 밖이에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러분들이 안 죽고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그러니 이미 잘하고 있어요.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말 공감 못했는데요. 가끔 TV에서 내가 몰랐던 세상의 사람들이 나올 때 마다 보면 그 사람들 이야기나 이런 것들이 다 한 편의 드라마거든요. 그때마다 느껴요. 세상에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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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지킴이 시절

- 앞으로 어떤 도슨트가 되고 싶나?

어려운 질문이에요. 매일매일 바뀌거든요. 어떤 때는 똑똑한 도슨트가 되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다정하고 쉬운 도슨트가 되고 싶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가 되고 싶기도 해요. 어떤 도슨트가 좋은 도슨트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답해야 한다면 내가 왜 도슨트라는 직업을 끈질기게 못 놓았을까 생각해 보면 눈빛 때문이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며 함께 공감하고 있다고 보내는 눈빛이요. 그래서 공부를 할 때도 이 이야기를 해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하며 설렜어요.

미술계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꽃을 배우고 꽤 오랫동안 꽃집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꽃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도 제가 만든 꽃을 선물하면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게 좋아서였어요. 아무래도 전 타인이 저로 인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큰 낙인 거 같아요. 계속 그렇게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도슨트가 되고 싶어요. 적어도 저와 만난 시간엔 사람들을 반고흐도 만나게 했다가, 저 조선시대 어딘가로 데려가기도 하는 그런 마법사 같은 도슨트가 되고 싶어요.

그냥 김은비의 미래에 대한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삶에 지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요. 사람을 치료하는 건 꼭 의학만이 아닌 거 같아요. 약한 인간들끼리 의지하고 공감하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아름다운 식물을 만지기도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게 인간 김은비의 꿈이에요. 그래서 또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공부도 준비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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