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에 실은 자유, 붓질에 담은 유희- 정민희

by 데일리아트

도시를 벗어버리니 원색이 찾아왔다. 정민희의 작품 세계

컬러에 실은 자유, 붓질에 담은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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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민희

정민희는 자연을 주제로 작품의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작가다. 그러나 여느 작가와 다른 점이 있다. 작가가 표현하는 자연은 그것을 동경만 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자신이 절박하게 자연을 필요로 했던 경험이 근간이 되었고 그래서 정민희는 자연을 화제로 선택한다. 정민희는 한 때 자신의 가치를 경제활동의 중심에 두었다. 그래서 더 이상 작업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그림 그리는 것을 중단하고, 회사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는 빌딩 숲, 타인과 몸을 밀착시키며 타야 하는 지하철, 시간에 쫓겨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 여유 없는 생활 환경. 사회 생활의 고단함은 바쁜 생활인의 일상이다. 우리의 정서를 달래줄 쉼의 공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간과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쉼은 사치이다. 오늘과 내일이 변화 없이 지속되고, 그다음 날이 또 그렇게 지나간다. 우리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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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도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각박하게 느꼈던 도시, 출퇴근 길에 잠시 들렀던 공원은 작가에게 준 쉼표였으며,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 잊게 해주는 해방구였다. 공원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출퇴근 길에 잠시 머물던 곳. 공원에서의 짧은 휴식은 삶을 재충전하는 활력의 충전소가 되었다. 공원에 머무는 시간을 반복하던 작가는 그곳에서 보여지는 식물들, 풀냄새, 벌레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연의 작은 소리는 주변의 큰 소음을 억눌렀다. 비로소 내면에서 자유가 튀어 나왔다. 그러니 되니 정서적 안정과 위안을 경험했다.

사회생활의 고단함에 반비례 해, 공원에서의 사색의 시간이 지속될수록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회의감이 찾아왔다. 하는 일에 대한 지속 여부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깊은 고민을 한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공황 증상이 시작되었다. 내면의 소리에 항복해 버리고 만것이다.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붓을 잡았다. 황폐화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태어나는 심정으로 시작한 선택이 그림이었다. 다시금 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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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말한다. 도시 환경과 자연이 인간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갖게 된 작가는 그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고민을 하며 작업에 몰두한다.

작가의 자연에 대한 애착은 삶에 큰 비중으로 작용한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인위에 의해 조성된 자연(공원, 숲) 은 자연 친화적일 수 없는 환경에서 선택할 수 있는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보여지는 자연의 모습은 너른 대지에 펼쳐진 숲이나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큰 바다와 비교할 바는 못된다. 그러나 작가에게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찾았던 소중한 경험을 한 장소로 큰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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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와 잎, 그리고 그 사이에 빛나는 햇빛,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감정과 여정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무한경쟁으로 몰아 자아에 대한 존엄성의 상실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자연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내려놓게 한다. 그때 느끼는 고요하고 잠잠한 상태, 즉 평온함, 조용함이다. 자연은 도피처로서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사회 생활의 경쟁에서 오는 소외와 불안에 맞서는 작가의 작업은 자연을 손환하여 예술의 중심 주제로 삼는다. 도시 속에서 마주하는 자연(공원, 개천, 습지...)은 어느 하나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것은 없다. 스스로 존재하는 듯 보이나 인위적으로 어딘가에서 길러지고 이동되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장소에 옮겨 심어진 자연이다.

하지만 인위에 의해 이루어진 자연이라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인지한 작가는 도시 속 작은 자연만으로도 충분히 안정된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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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면 화려한 색채를 볼 수 있다. 화려한 색채는 반어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보여진다.도시의 모습을 원색으로 묘사한 것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도시의 소음은 작품의 배경과 뒤섞인다. 치열하고, 과장된 경쟁구도 속의 도시 생활은 작가의 감정에 이입되어 다양한 붓질과 색으로 거듭나고, 자유분방한 터치로 규격화 되어버린 도시의 틀로부터 해방시킨다.

작가의 작업은 도시 속 자연을 통해 개인의 안정과 평온을 찾고자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며, 자연이 자신에게 주는 삶의 의미와 연결점을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현대 사회에서의 소외와 불안에 대한 이해와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예술을 통해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진다. 정민희는 예술은 인간과 도시 그리고 자연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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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장 정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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