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거나 만나는 모든 타자에게 집중하는 시인 오은경
청년들이 온다 . 미술, 연극, 음악, 문학, 연구 활동 등 모든 문화예술계에서 청년 전문가들이 몰려 오고있다 . 이들은 누구인가? 분야는 달라도 모두 '청년'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 한편으로는 '젊음'을 하나의 '장르'로도 볼 수도 있겠다 .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 , 그래서 약간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이 언뜻 엿보이기도 한다 . 그러나 이런 미완성은 무한한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읊은 도종환의 시처럼 이 세상의 어떤 꽃도 흔들리 않고 피는 꽃은 없었다 . 이미 장년에 접어든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는 다 그랬다 . 그래서 이들의 공통점은 미숙함이 아니라 찬란함이다 .
데일리아트는 이런 청년들 ,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각기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들은 지금 흔들리지만 곧은 가지를 갖기 위해 쭉쭉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가고 있다. 이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며 연재를 시작한다. 큐레이터, 음악인, 연극인, 청년 학자, 배우, 도슨트 등 직업과 관계 없이 젊음이라는 장르로 묶어 모두 취재하고자 한다. 지면과 여력이 허락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다 . 지금 이들의 약진은 장년 세대들의 배후에서 이미 ' ing 형 '이다 . 이들의 치열한 삶이 있는 곳 , 문화예술 현장으로 간다 .
오늘은 다섯 번째 순서로 시인 오은경을 소개한다.
매듭
오은경
어제와 같은 장소에 갔는데 /당신이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내가 / 돌아갑니다
파출소를 지나면 공원이 보이고 /어제는 없던 풍선 몇 개가
떠 있습니다 / 사이에는 하늘이
매듭을 지어 구름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풍경 속을 /가로지르는 새 떼처럼
먹고 잠들고 일어나 먼저 창문을 여는 것은 / 당신의 습관인데 볕이 내리쬐는
나는 무엇을 위해 /눈을 감고 있던 걸까요?
낯선 풍경을 익숙하다고 느꼈던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건물 앞에 / 멈춰 서 있습니다
구름이 변화를 거듭합니다 /창문에 비친 세계를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나는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당신보다 나는 먼저 도착합니다 /내가 없었기 떄문에 내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당신에게 /나는 돌아와 있습니다
- 먼저 데일리아트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네 안녕하세요. 무척 반갑습니다. 저는 오은경이라고 하고요, 2017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에 『한 사람의 불확실』 2021년에 『산책소설』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지금은 다음 시집을 준비 중이고 동시에 산문집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시인의 일상을 상상해 보면 낭만적일 것 같다는 인상이 있는데, 직업인으로서의 시인은 또 다를 것 같다.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
저는 국문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논문과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고요, 학교에서는 수업에 열중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 쓰기는 늘 생각하고 있고, 가장 잘 해내고 싶은 그런 일인 것 같습니다. 이외에는 시 창작 수업 등을 통해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입장에서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대학원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현대시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서는 현대시뿐만 아니라 고전시가라든지 희곡과 같은 여러 과목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들을 배우고 있어요. 책들은 현대시뿐만 아니라 철학 책이라든지 관련된 논문들 위주로 읽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와는 거리가 있기도 합니다.
- 대학에서 시를 전공했다. 시를 전공한다는 것이 흔한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저는 문예창작과에 오랫동안 다니면서 너무나 존경하고,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뵀는데요. 대학교 2학년 때 김혜순 교수님께 시 창작 수업을 들으면서 적극적인 말씀들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들었던 여러 가지 말씀들이 저에게 너무 강하게 영향을 미쳤고,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도 태도라든지, 어떤 관점 같은 것들을 갖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셨던 것 같아요.
- 문창과에서는 주로 창작 위주로 수업한다면 국문과에서는 좀 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색다른 느낌일 것 같다.
네. 아무래도 창작은 정답이 없잖아요.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합평이라고 하는 수업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 작품의 좋은 점이라든지 아쉬운 점 같은 것들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분위기라면 아무래도 국문과 수업 같은 경우에는 논문의 완성도나 논문의 주제나 주장에 따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제한이라든지 선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은경 시인의 첫 시집인『한 사람의 불확실』표지.
- 첫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을 읽으며 ‘줄 달린 공’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무리 멀리 던져도 결국 손목으로 돌아오는 공처럼, 시인의 시 속 ‘현재’는 끝없이 과거로 돌아가는 현재라는 느낌이다.
시 쓰기를 통해서 제가 우선 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시간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라고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과거의 제가 해결하지 못했던 여러 기억이나 감정들이 있는데, 그러한 일종의 타래 같은 것들을 시를 통해서 좀 해결해 보고 싶지 않았었나 싶어요. 그리고 그런 지점에서 시라고 하는 장르가 저에게 굉장히 개인적으로도 아주 고맙고 유의미했던 것 같아요.
- 『한 사람의 불확실』을 쓸 때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이미지나 방향성이 있었나?
첫 시집 같은 경우는 의도적으로 제가 어떤 이미지들을 소환하거나 아니면 떠올렸던 것은 아니고요, 다만 멈춰 서 있는 이미지가 저에게 지배적이었던 것 같고 그 멈춰 서 있는 상태에서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벗어나기 위해서 애써서 그것을 인위적으로 가장하거나 아니면, 움직이기보다는 그냥 멈춰 서 있고 싶을 때까지 화자가 멈춰 서 있게끔 기다리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 오은경 시인의 시 속 화자들이 끝없이 ‘타자’가 있는 과거로 향하는 이유가, 시인이 타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관심 있게 보거나 관찰하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인가?
저는 마주치거나 만나는 모든 타자에게 집중하고 주목하는 편인데요. 일상에서도 제가 시의 문장이라든지, 써보고 싶은 아이디어 같은 것을 메모하는 계기가 보통 타자들로 인해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사람을 통해 제가 이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새롭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제 관점이 바뀌게 되거나, 아니면 깊은 감정 같은 것들이 제 내면 안에서 스스로 더 나아갈 때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들이 대체로 타자로 인해서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 오은경 시인의 시는 주로 ‘차갑고 서늘한’ 감각을 가진 시라는 감상이 있다. 이러한 독자들의 감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사실 어떤 피드백이든 다 너무 감사드리고, 반갑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시를 통해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이잖아요. 시라는 매개가 저에게도 사실은 낯선 작업물일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도 낯선 작업물인 것이죠. 그럼에도 그 매개를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인상을 말씀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시들 가운데서도 「나뭇잎」이라는 시에서는 유독 ‘감정’이 두드러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에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저는 최근에 시집을 묶었고, 내년에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 시편들은 더 감정적이거든요. 첫 시집에 비해 훨씬 더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시편들이 있는데요, 그런데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감정과 관련된 관념어를 써서 감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관념어가 없는데도 감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시의 첫 문장 같은 경우에는 의식하고 쓰는 것이지만, 그리고 모든 문장이 의식 중에 나오는 것이지만,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계속 발생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껴요. 그 문장들이 불러내는 어떤 감정이 있다면, 그 감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21년도에는 현대문학 Pin 시리즈로「산책 소설」을 출간했다. 두 번째 시집인 만큼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 것 같다.
첫 시집을 낸 이후의 두 번째 시집 같은 경우는 제가 주목하거나 관심 두고 있는 시의 형식이나, 일상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집 자체도 첫 번째 시집과 다르다는 감상을 많이 들었거든요. 이 변화 또한 어떤 컨셉을 가지고서 변화를 시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멈춰 서 있는 화자가 이제는 많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것이 화자가 단지 걷는 걸음뿐만 아니라 시집의 장면들이라든지, 아니면 발화되는 목소리라든지 이러한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서 그러한 변화가 시집 전반에 있지 않았느냐고 봅니다.
- 『산책 소설』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빛의 돌기’, ‘해가 긴 날’, ‘흰빛’ 등 빛과 관련된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시인에게 빛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
빛이 물체는 아니면서도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잖아요. 빛이 드는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또 빛 자체로 환영처럼 보일 수도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빛이 그런 여러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같은 공간 속에 머물 때도 시간에 변화를 빛에 따라서 다르게 감각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빛이 비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서 여기에 있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또 빛에 의해서 마음이 밝아지기도 하고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하고요. 또 빛에 의해서 시간을 가늠해 볼 수도 있고요. 빛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세상을 감각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 이 시집의 끝에는 「미끄러짐」이라는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중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쓰는 과정에서 개요를 만들어간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이 글쓰기 방법론이 시 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가?
네 맞습니다. 저는 퇴고를 할 때에도 문장의 순서를 바꾸는 일들은 거의 없고요. 아직은 연과 장면들을 다시 조합하는 방식으로는 퇴고를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첫 문장에서부터 계속해서 불려 나오는 다음 문장들을 따라서 시 혹은 산문을 써 나가는 편입니다.
- 이런 방법론으로 시를 쓰기 때문에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던 적은 없는지?
물론 시에 길이 있다고 믿고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시 자체가 길을 이미 잃은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인 거 같아요. 그래서 길을 잃는 두려움 보다는, 오히려 문장을 써 나갈 때 이것이 부자연스럽거나 쓰고 나서 이것이 너무나 감정적이거나, 좋지 않은 시가 될 까봐 더 걱정하는 편인 것 같아요.
- 시가 안 써질 때 문장을 기다리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
저는 메모를 주로 많이 하는데요. 그 메모들을 다 시를 쓰기 전에 모아둬요. 그래서 메모를 모아둔 빈 페이지에 자유롭게 산문으로 문장들을 이어 나가요. 계속해서 제가 발상할 수 있는 부분들을 쭉 써 나가고요, 더 이상 발상이 이어지지 않거나 혹은 이 문장을 첫 문장으로 하면 좋겠다 싶으면 그 문장부터 시를 시작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이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인 것 같습니다.
(2부가 이어집니다.)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