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이온다 ⑤] 시인오은경2

by 데일리아트

"불확실함을 통해 어떤 희망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온다 . 미술, 연극, 음악, 문학, 연구 활동 등 모든 문화예술계에서 청년 전문가들이 몰려 오고있다 . 이들은 누구인가? 분야는 달라도 모두 '청년'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 한편으로는 '젊음'을 하나의 '장르'로도 볼 수도 있겠다 .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 , 그래서 약간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이 언뜻 엿보이기도 한다 . 그러나 이런 미완성은 무한한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읊은 도종환의 시처럼 이 세상의 어떤 꽃도 흔들리 않고 피는 꽃은 없었다 . 이미 장년에 접어든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는 다 그랬다 . 그래서 이들의 공통점은 미숙함이 아니라 찬란함이다 .



데일리아트는 이런 청년들 ,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각기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들은 지금 흔들리지만 곧은 가지를 갖기 위해 쭉쭉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가고 있다. 이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며 연재를 시작한다. 큐레이터, 음악인, 연극인, 청년 학자, 배우, 도슨트 등 직업과 관계 없이 젊음이라는 장르로 묶어 모두 취재하고자 한다. 지면과 여력이 허락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다 . 지금 이들의 약진은 장년 세대들의 배후에서 이미 ' ing 형 '이다 . 이들의 치열한 삶이 있는 곳 , 문화예술 현장으로 간다 .



오늘은 오은경 시인의 인터뷰 두 번째 시간이다.

2046_5010_2731.jpg 오은경 시인 프로필.



한 사람의 불확실


오은경


지난 밤 당신은 의자처럼 앉아 있었고 의자가 놓인 곳이라면 나는 어디든 앉아 당신의 지난 일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정말 같은 자리였던 적 있었을까 당신은 내게 물었습니다 시소와 그네가 비어 있어 나도 모르게 눈앞의 풍경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한 명의 아이도 보이지 않던 놀이터는 금세 어두워졌고 연인이 떠나면 노숙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서로 같은 사람들 같았습니다


당신은 지난 일들을 내게 들려줬고 고개를 돌릴 때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창문이 나 있었고 창가의 별빛이 두눈에 익숙해지면 이전의 풍경은 남지 않았습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거리를 지나면 놀이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이는 놀이터에서 막 돌아왔던 건지도 모릅니다


나는 가만히 멈춰 선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아이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고 혼자 남은 아이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내가 행방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이가 어째서 어디로도 가지 않는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피곤했고 아이가 나의 존재를 의식하는 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창가에 다가갔습니다 이제는 내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리벽이 사이를 가로 막았기 때문입니다


창가에 비친 나는 아이의 곁에 함께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어릴 때 모습 같아 등을 돌렸는데 당신은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까?


내 방에는 의자 하나먄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집에 오랜만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가 지났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 시에서 공통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집마다 조금씩 바뀌어 왔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저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문장들이 다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게 그 문장만 놓고 보았을 때는 위로가 되는 문장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저에게 필요한 문장들로 마무리가 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불확실’이라는 키워드에서 벗어나 다른 주제로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나?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이 저를 더 불편하게 하거나 혹은 절망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불확실함이 물론 위험이라든지 피로감 같은 것들이 감수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확실함을 통해서 어떤 희망적인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만약 제가 타자라든지 대상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 대상을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지점들을 남겨두었을 때 더 저와 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해서 불확실함이라고 하는 키워드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주제를 통해서 시를 더 잘 써보고 싶다는 바램은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시라는 게 워낙 내밀한 작업이다 보니까 저의 단상이라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개인적인 지점으로부터 시작한 문장들이 시를 만들어가지만, 주제가 주어진다면 제가 또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궁금합니다.


- 이런 불확실함이 시 쓰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시인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인으로 시 쓰기를 지속할 힘은 무엇인가?


저는 시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시를 쓸 때 물론 힘든 일도 있죠. 하지만 저는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읽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만족스러워요. 왜냐하면 일상을 보낼 때도 아무래도 시 쓰기가 익숙하다 보니까 시적으로 생각을 할 때가 많은데 그러한 생각의 방식이 저는 좋습니다.


- 시인의 삶에 장점이 있다면?


저는 시가 나름대로 어떤 면에서 정면승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대결해야 하는 장르라고 여기거든요. 그런데 그 대결을 잘 해낸다면,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부분에 그만큼의 답을 얻어갈 수도 있는 장르이자 작업이 저는 시라고 봅니다.

2046_5011_3351.png 공동 저자로 참여한 오은경 시인의 시집 표지.



- 요즘은 예전에 비해 시를 읽는 독자가 줄어든 것 같다. 특히 현대시는 ‘난해하다’는 인식 때문에 읽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이 시대에 시가 여전히 쓰이고 읽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가 쓰이고 읽혀야 하는 이유는 시라는 장르가 무엇인지 질문과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데요. 저는 예전에는 이런 질문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막연하게 늘 써왔으니까 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시가 본질적으로 무엇이지 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저 나름대로 대답을 찾고 있는 과정 중인데요. 저는 시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이를테면 말이 되지 않는 말이라든지 일상의 언어로만 환원할 수 없는 여러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어로 작업하는 일이면서도 가장 일상의 언어에서 멀리 벗어나고 있는 것이 시라고 보기 때문에 새로운 소통이 시를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보고요. 시의 언어라는 것이 어렵다, 난해하다는 인식이 있는 이유는 일상어로써 해독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는 것처럼 언어로도 담을 수 없는 언어를 써내는 것이 시가 필요한 이유라고 보고요.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시의 재미를 찾을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양한 시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시를 읽는 독자분들이 자긍심을 가지셔도 좋을 것 같다는 부분이 시는 잘 읽히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읽는다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는 것인데. 그런 지난한 시간을, 독서를 위해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다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일인 것 같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음 시집 혹은 산문집 출간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줄 수 있나?


저는 내년에 시집과 에세이집을 낼 것이고요. 그래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잘 준비해서 좋은 글로 여러분을 찾아뵙고 싶습니다.


- 독자에게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나?


진부한 얘기일 수 있지만, 힘이 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시인이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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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 청년들은 모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와 관련해 오은경 시인의 시 「매듭」 속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라는 표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시인으로서,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의 말을 부탁드린다.


저는 늘 어떤 상황이라든지 생각 속에서 빠져 있을 때, 제가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를 대표하거나, 그들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이 당신만의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려움이 혼자 겪는 일이 전혀 혹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꼭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시 읽기와 쓰기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달콤한 과일이나 디저트를 찾아드세요. 감사합니다.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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