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밖 그림 이야기] 용광로 속에서 걸러진 빛깔

by 데일리아트

용광로의 불길을 확인하고 그림을 그리니 색이 걸러집니다
불순물을 용광로에 태워버린 삶의 변주

2051_5016_1935.jpg Fire 불 162*112cm 캔버스 유화,2022


모든 물질은 고유의 특성을 가지는 힘에 의해 이름이 생겨난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인지를 유추하게 되고 상상하게 된다. 이러한 상식은 우리의 통념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공통의 분모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김수수 작가는 모든 물질의 특징을 없애고 본질만 남게되는 용광로에 관심을 갖는 작가이다. 무엇이든 녹이는 용광로의 타오르는 불길은 불필요한 것들을 태워서 불순물이 없는 순도 높은 쇳물을 만든다. 작가는 자유롭고 싶은 성향에 반하는 많은 감정을 용광로에 녹여 맑은 정신을 만들어 낸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용광로에서 걸러지는 이야기들은 미니멀하게 표현한 색채 안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과거의 장면들이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접했을 그림 전시회의 기억도 있고, 유학 시절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뇌의 시간을 보냈던 추억도 포함된다. 그 밖에 걸러진 사유들이 용광로의 쇳물처럼 그의 작품에 용해되어 있다.

2051_5017_1952.jpg 불 Fire, 2023, 117*80.3cm, 캔버스에 유화


색채에 버무려 놓은 많은 이야기를 뒤로 하고, 미니멀하게 펼쳐진 면적의 컬러 대비에 시선이 고정된다. 캔버스에 펼쳐진 면적 대비는 너른 곡창지대의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으로 보이는가 하면, 끝을 알 수 없는 대양에 물이 맞닿은 수평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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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인 형상을 생략한 추상 회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가는 색과 색이 닿는 경계의 긴장감을 높여 작품에 집중도를 배가시킨다. 단색화의 범주에 속하나 기존의 단일 색상으로 이루어진 단색화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미니멀하게 펼쳐진 작품 이미지는 오방색의 변주에 의해 펼쳐지지만 색을 두텁게 쌓아 올려 가볍지 않다. 동서남북과 중앙을 뜻하는 오방색으로 표현한 작품은 인간 중심(휴머니즘)의 사상이 세상에 펼쳐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붉은 색의 강렬함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다른 색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붉은색으로 보이는 용광로의 불빛은 모든 컬러를 포함하고 있는 색의 창고이다. 그림에서 작가가 붉은 색에 집중도를 높이는 것은 붉은색이 갖는 강렬함이 용광로의 불길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펄펄 끓는 쇳물의 상징적 표현이며, 열정, 에너지, 기운을 표현하는 작가의 조형 언어이다.


용광로의 불길을 눈으로 확인하는 작가


작가의 조형 언어가 힘을 받는 이유는 현장성에 있다. 직접 용광로의 불길을 눈으로 확인한 후에 비로소 붓을 잡는 꼼꼼한 성격이 자신의 타오르는 열정과 섞이면서 시선은 캔버스로 향한다. 그리고 마음을 모아 색을 칠한다. 발로 찾는 그림은 작가의 역량을 배가시키는 동시에 시각적인 형상과 오감을 활용한 표현을 불러오고, 생명력있는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런 창작 행위를 반복하는 작가는 어린 묘목이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 훌륭한 성목이 되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김수수란 이름만으로도 경외심이 드는 작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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